[천호선의 문화비평] 백남준과 만난 이야기 IV
[천호선의 문화비평] 백남준과 만난 이야기 IV
  • 천호선 컬쳐리더인스티튜트원장/전 쌈지길 대표
  • 승인 2012.09.28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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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호선 컬쳐리더인스티튜트원장/전 쌈지길 대표
KBS의 문화부 기자로서 <굿모닝 미스터 오웰> 제작 PD 역할을 맡았던 이동식 씨는 당시 시청지들의 충격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1월 2일 졸음을 쫓느라 눈을 비비며 기다리다 KBS-TV 화면을 지켜본 전국의 시청자들은  백남준이 히치코크처럼 적어도 한시간 동안의 생방송 예술제에서 단 한두 장면에서라도   얼굴을 보여줄 것을 기대했으나, 그 기대는 충족되지 않았다. 그 대신 시청자들은 더욱 변화무쌍한 백남준의 얼굴을 볼 수 있었으니, 그것은 새로운 현대 첨단예술에 대한 상면이며, 새로운 감각, 새로운 소재, 새로운 표현으로 특징지워지는 종합예술에 대한 개안이었다”. 이외에도 각 언론들은 ‘예술의 힘찬 생명력을 보여준 획기적 잔치’, ‘과학과 예술의 결합을 보여준  문화사적인 충격’, ‘예술의 새로운 차원을 열어 보여준 행사’, ‘기술문명을 인간의 삶의 즐거움에 이용한 좋은 본보기’ 등등의 반응과 찬사를 보여 주었다.

84년 6월23일 백남준은 35년만에 귀국하였다(우리나라 최초의 해프닝 작가로 알려져 있는 정찬승은 60년대 서울에서 백선생을 본 적이 있다 하였고, 백선생의 경기중학교 동기로서 주한미국대사관에 근무했던 최훈씨도 백선생이 1960년대에 귀국한 적이 있다 하였으나, 백선생 자신은 기자들에게 35년만에 귀국한 것으로 말하였다). 백남준은 원래 1986년에 귀국할 생각이었는데 그 이유는 재미동포  한의사로서 사주에도 뛰어난 박동환씨가 55세에 귀향하면 대길할 것이라고 예언했다는 것이다. 신문, 방송, 잡지 등 인터뷰 신청이 쇄도하면서 일부 예술인 사이에서 괴짜, 기인으로만 알려졌던 백남준은 세계적인  스타가 되어 나타났다.

이때 6월26일자 조선일보의 정중헌기자 인터뷰 기사는 “예술은 사기”라는 구절 때문에 전국민적인 화제가 되었다. 그러나 그가 한 말의 진정한 의미는 일반 대중들이 받아들인 것과 상당한 뉴앙스의 차이가 있는데 백선생의 말은 다음과 같다. “어느 시대건 예술가는 자동차로 달린다면 대중은 버스로 가는 속도입니다. 원래 예술이란 반이 사기입니다. 속이고 속는 거지요. 사기중에서도 고등 사기입니다. 대중을 얼떨떨하게 만드는 것이 예술입니다. 엉터리와 진짜는 누구에 의해서도  구별되지요. 내가 30년 가끼이 해외에서 갖가지 해프닝을 벌였을 때, 대중들은  미친 짓이라고 웃거나, 난해하다는 표정을 지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것의 진실을 꿰뚫어 보는 눈이 있었습니다.”

백남준의 귀국을 계기로 KBS-TV는 <백남준의 비디오아트 세계>라는 특집 프로그램을 방영하였다. 고려대학교 불문과 김화영교수를 모더레이터로 하여 김정길 서울대 음악대학교수, 정병관 이화여대 미술사학과교수, 박영상 한양대학교 교수, 이미재 청주대학교 교수, 박현기 비디오 작가 등을 초청하여 백남준과의 대담을 마련한 것이다. 백남준은 각 분야 전문가들의 질문에 가끔은 엉뚱하게, 가끔은 질문을 무시하면서 자기 특유의 예술관을 피력하였다.

“세계에서 제일 큰 사기꾼은 마르셀 뒤샹이다. 그는 사기를 철학화했다”
“예술 자체에는 양심이 있을지 몰라도 예술가들은 실업가들과 마찬가지로 서로 비양심적이다”
“내가 처음 TV를 샀을 때는 무엇이 나올지 전혀 몰랐다. 주사선만을 조작했는데도 펑펑 새로운 그림이 쏟아져 나왔다”
“내가 비디오 무용을 만들 때는 꼭 무용가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세상만사 아무거나 찍어서 이으면 무용이 된다”
“굿모닝 미스터 오웰은 세계 최초의 쌍방 방송이다. 나는 이것을 염라대왕 앞에 가서도 자랑할 수 있다”
“우리나라가 국제적으로 팔아먹을 수 있는 예술은 음악, 무용, 무당 등 시간예술뿐이다. 이것을 캐는 것이 인류에 공헌하는 것이다. 우리민족은 오랫동안 유목민이었으며, 유목민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을 주어도 가지고 다닐 수가 없다. 즉 무게가 없는 예술만이 전승되고 발전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