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수의 뒷방이야기]예술가가 사는 법
[박정수의 뒷방이야기]예술가가 사는 법
  • 박정수 미술비평가(정수화랑 관장)
  • 승인 2012.10.12 0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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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박정수 미술비평가
주는 대로 먹고, 시키는 대로 하고, 가라는 곳 가고, 있으라면 있었다. 무엇하나 반감 없이 소중한 자신의 의지를 지켰다. 그런데 세상을 그를 두고 바보라 한다. 고지식하다 말한다. 시키는 대로 했는데, 하라는 대로 했는데 겨우 죽지 않을 만큼만 먹여준다.

그러면서도 그를 향해 목숨을 바친다. 자신의 의지가 생겼다. 요즘 인기 끌고 있는 ‘광해, 왕이 된 남자’에 나오는 ‘도부장’이야기다. ‘왕가에는 법도가 있습니다.’만을 따르다가 자신을 알아주는 이를 향해 목숨을 버리고 만다.

우리네 미술가들은 도부장보다 더 고지식하다. 언젠간 세상이 자신을 알아줄 것이라는 믿음하나로 오늘도 그림을 그린다. 그러나 이제는 본인 스스로 나서야 할 때다. 길이 막히면 뚫어야 한다. 개인전이거나 초대전이거나, 화랑이거나 아트페어이거나 우선 접촉을 시도하여야 한다. 울어야 젖 준다. 아이의 울음소리는 생존이다. 미술가는 성인이기 때문에 울면 무시당한다. 당당하게 다가서야 한다.

의미가 있는 미술작품을 제작할 때 부정하는 것이 편리할까 아니면 의미를 수용하는 것이 용이할까? 미술작품이 아니더라도 사람들은 부정과 거부가 훨씬 쉽다는 것을 잘 안다. 다만 자신에게는 지나칠 정도로 긍정적일 뿐이다. 친구니까 충고하고, 친하니까 싫은 소리 한다. 그것을 거부하면 친하지 않음으로 되기 때문에 기분이 나빠도 수용해야 한다.

정치에도 반대를 위한 반대가 횡횡한다. 잘못되었거나 그름이 아니라 정당이 다르기 때문에 함께 섞이지 않는다. 부정과 거부가 많은 세상이기 때문에 요즘에는 예쁘고 아름다운 미술작품이 보고 싶어진다.

미술작품을 보고 슬며시 미소를 날린 적은 몇 번 있지만 미술작품을 보고 진심으로 즐거워 해본 기억은 거의 없다. 슬프거나 고통 받거나 화나거나 짜증나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

고흐가 귀를 자르면서 자신의 고통과 자학에 시달릴 때 살바도르 달리는 스스로의 고통에 몸부림 쳤다. 옆에서 구경하던 뭉크는 자폐증 환자와 같은 절규로 삶을 노래한다. 여기에 샤갈은 사랑과 희망 고혹과 같은 양념을 슬쩍 버물어 맛 나는 비빔밥을 만든다. 이웃동네에 사는 클림트는 헤어진 여성과의 추억에 참기고, 그의 제자 에곤쉴레는 광란의 밤을 위한 자조 섞인 성담론을 드러낸다.

피카소가 전쟁과 죽음을 이야기하고, 잭슨폴락은 아무 생각 없는 물감뿌리기로 사람들의 뇌에 의미 없음의 종양을 심는다. 돈이 최고라는 앤디워홀과 세상을 거꾸로 바라보겠다는 바셀리츠가 세상을 고민할 때, 우리는 여전히 장미꽃의 향기에 취해 있었고 바이올린이나 첼로를 든 여인의 초상 앞에서 조용한 묵상을 진행하였다.

어릴 적 반대말 시험을 본 적 있다. 하얀색의 반대말은 검정색, 높음의 반대말은 낮음 이라고 배웠다. 시간이 지나고 세상이 이렇게 움직이는 구나를 조금씩 알아가는 지금에 와서는 그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희고 검다를 옳고 그름으로 이해하는 방식을 배워왔다. 흰 것은 좋은 것이고 검은 것은 나쁜 것으로, 높은 것과 낮은 것은 사람의 지위와 사회적 계급으로 이해하면서 그것은 반대말이 아니라 상반된 개념을 확인하는 수단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그래서 미술의 언저리에서 새로운 반대말을 배우기 시작했다.

미소의 반대말은? 썩소(썩은 미소)가 아니라 당기소다. 지구의 반대말은 이기구, 눈사람의 반대말은 선사람, 딴소리의 반대말은 잃은소리, 죽이다의 반대말은 밥이다. 그렇다면 “대통령 선거”의 반대말은 무엇일까? 대통령 앉은거. 그래서 미술작품에 나타나는 반대말이 성공하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