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ue기획]낙산에 문화예술인들 몰린다
[Issue기획]낙산에 문화예술인들 몰린다
  • 이은영 기자
  • 승인 2012.10.13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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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인들 게스트하우스 공방 통해 주민들과 공생공존 전략 모색

‘1박2일 이승기 날개벽화’로 유명해져 주말이며 수백 명 관광객 몰려

골목을 들어서자 어디서 어린아이가 떼를 쓰며 우는 소리가 들린다. 도심에서 어린아이 울음소리를 듣는다는 것이 조금은 생경한 풍경이다. 동네를 돌아보니 할머니들이 삼삼오오 동네 구멍가게 앞 평상에 앉아 도란도란 얘기꽃을 피우고 있다.

▲꽃그림이 그려진 벽화마을의 벽화계단. 옥탑방왕세자''오직그대만' 등의 영화촬영지로 유명한 벽화계단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와서 사진을 찍고 가는 곳이기도 하다.
방문할 곳을 찾기 위해 이 동네의 랜드마크라 할 수 있는 동숭어린이집을 물으니 할머니들이 일제히 오른 쪽 편을 가리키며 한 목소리로 대답을 하신다.

높은 옹벽 위에 올라 아래를 내다보니 할머니 몇 분이 평상에 앉아 나물을 다듬으며 담소를 나누고 있다. 또 골목 한 쪽에는 중년의 남자 두 명이 과자를 안주로 놓고 맥주를 마시며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나누고 있다.

길 옆 모퉁이 집에서는 부직포로 가림막을 해놓고 내부수리 공사가 한창이다. 그들의 일상과는 상관없이 카메라를 들고 출사를 나온 한 무리 사진동호회 팀이 지나간다. 그 뒤를 할머니와 손자까지 삼대가 벽화계단에 올라앉아 흐뭇하게 사진을 찍는다. 또 다른 벽화 앞에는 번갈아 가며 또는 커플이 다정히 서서 핸드폰카메라로 자신들을 담아낸다. 이렇듯 골목 곳곳에 그려진 벽화를 사진으로 기록하거나 자신들의 추억을 남기는 인증샷을 만들고 있다.

이렇게 생활인과 관광객의 상반된 모습이 공존하는 이 동네는 하늘아래이자, 낙산아래 달동네 이화동, 그 속의 통칭 ‘벽화마을’이다. 여전히 주민들조차 달동네라 칭하는 이 마을은 몇 년 전 문화체육관광부의 공공미술프로젝트로 인해 환하게 밝아졌다. 곳곳에 재치 있고 아름다운 벽화와 조형물로 많은 외지인들이 찾아오면서 점차 활기를 되찾고 있는 것이다. 특히 1박2일의 이승기의 ‘날개벽화’로 더욱 폭발적인 관심을 가져왔고, 드라마 ‘옥탑방왕세자’(SBS), 영화 ‘오직그대만’ 등의 영화촬영지로도 알려지면서 동네에 대한 친근감이 더해진 곳이다.

▲낙후된 이 지역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골목길.오른쪽 건물 창문에 곶감을 만들기 위해 매달아 놓은 감이 정겹다▲서울고등학교 학생들이 그린 영화 캐릭터 ‘어벤전스 ’▲벽화계단에서 사진을 찍고 내려가는 가족과 연인들▲예전에 봉제공장을 운영했던 집으로 담쟁이 넝쿨로 뒤덮인 그 집 창문에서 내려다본 마을 풍경(사진은 좌측부터 시계방향 순)

그러나 이 마을의 사정을 좀 들여다보면 겉면의 화려한 벽화와는 달리 오랫동안 제대로 된 집수리를 못해 불편함을 감내하며 살아가고 있는 주민들이 대부분이다. 몇 몇 집은 빈집인 채로 방치된 곳도 있다.

이 지역은 10여 년 전 도시계획에 의해 재개발 지구로 지정됐다. 그러나 10년이 넘도록 재개발은 답보상태였고 재개발에 대한 기대심리로 대부분 4~50년 된 집들을 수리도 안하거나, 또는 못하면서 살아온 것이다. 그 와중에 문화재청에서 이 지역은 서울성곽이 있어 5층 이상은 건축할 수 없다는 심의결과를 통보했다. 당초 7층~12층으로 허가가 날 것으로 생각했던 주민들에게는 청천벽력이 아닐 수 없다. 층고가 낮아지면서 입주할 주민들의 부담금액이 최소 2억 이상이 되기 때문이다.

10년간 재개발에 묶이고 문화재에 걸려 건축행위 함부로 못해

시정개발연구원에 따르면 이화동은 65세 이상 기준 고령인구가 전체 가구의 11%를 차지한다. 서울 전체에서 고령인구 비율이 높은 편에 속한다. 더구나 낙산 서울성곽 바로 아랫동네인 이 지역130여 가구에는 노인 분포도가 더욱 높다. 이런 노인들에게 2,3억이란 돈은 어마어마한 숫자로 다가온다. 설사 재개발을 추진한다 해도 그동안 방 한 칸, 한 층을 세를 받아 생활하고 있는 이들에게는 수입원마저 끊기게 되는 실정이다. 그래서 이제는 마을주민들이 재개발지구 지정 무효청원까지 넣고 있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화동 벽화중 여성들이 가장 좋아한다는 ‘내 안에 너 있다.

침체를 겪고 있는 마을 내부에 조그마한 움직임이 일고 있다. 몇 년 전부터 마을을 조용히 지켜보던 지역의 한 문화예술인을 중심으로 지금은 10여 명의 그룹이 형성돼 원주민들과 함께 살아갈 고민과 궁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의 고민은 마을에서 적게는 30년 이상 4, 50년을 살아오며 정을 나누며 살아온 주민들의 정서를 그대로 살리면서 어떻게 ‘공존공생’하며 살 수 있을까?이다. 그 결과 가칭 ‘지역재생프로젝트’를 통해 문화공동체를 만든다는 것에 이들의 궁극적인 목적과 목표를 세웠다.

▲재생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처음 개조된 집. 수작(酬酌)이란 간판을 달고 앞으로 게스트하우스로 활용될 예정이다.

이제 이들은 낡고 허물어져 가는 집을 개조해 쾌적하게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그 곳에서 자신들이 원하는 작업을 하고, 노인들과 마을 주민들에게 크지는 않겠지만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일을 만들기 위한, 계획과 실행을 위해 조심스럽게 한 걸음씩 떼어가고 있는 중이다.

이들은 문화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기존의 집들을 수리해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게스트하우스나 공방, 찻집 레스토랑 등을 구상하고 있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급증하면서 서울시내는 숙박시설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 우리문화를 직접 체험하고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자는 취지다.

게스트하우스가 들어서면 외국인들에게 필요한 잠자리뿐만 아니라 머무를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주면 숙박문제 해결뿐만 아니라 노인들이 할 일도 무궁무진하게 많아진다는 판단을 내렸다.

예를 들어 게스트하우스가 10 곳만 되더라도 그곳의 침구 손질을 비롯해 반찬 만들기, 외국인들을 위한 김치 만들기 체험 등을 통해 우리 문화팔기를 하자는 것이다. 더 나아가 유휴인력을 활용해 된장 간장을 직접 담궈 브랜드화 시켜 시중에도 내다 팔아 수익을 올려드리자는 구체적인 구상도 내비쳤다.

게스트하우스도 특별히 잘할 필요 없고 이부자리 깨끗하고 화장실 깔끔하고 지붕의 물만 안 새면 얼마든지 관광객 유치 가능하다고 확신했다. 개인여행객이 늘면서 고급관광을 원하는 사람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나라의 삶을 느껴보고 싶어 하는 여행객들이 많기 때문이라 한다. 일례로 자신들도 우리도 외국 나가면 호텔을 갈 수 있지만 굳이 뒷골목 낡은 공간에 가서 투숙한다고, 그 나라 사람들의 일반적인 생활을 접해보는 것이 더욱 흥미롭기 때문이라고 덧붙인다.

▲수작의 2층 창에서 바라본 대학로 풍경. 멀리 북한산이 보인다.

그래서 이 마을은 더더욱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고 확신했다. 높은 곳에 위치하고 주변 전망이 빼어나고 각각의 집의 특성에 맞춰 그에 알맞은 문화공간으로 만들면 편의성과 다양성을 갖출 수 있다는 것이다.

벌써 마을의 모델하우스라 할 만한 집이 탄생했다. 길 가에 수작(酬酌이란 아주 자그마한 간판을 걸고 있는 2층집이다. 대문은 길을 향해 나있는 것이 아니라 골목을 한 참 돌아가야 하는 독특한 구조를 가졌다. 수리된 집 내부를 들어가 보면 이 마을에 이렇게 깔끔하고 예쁘게 단장된 집이 있을까? 싶다. 2층으로 된 공간은 각 층의 창을 작게 내서 작은 창을 통해 바깥 뷰를 감상하는 쏠쏠한 감동도 느낄 수 있게 만들었다. 깜짝 놀랄 정도로 공간을 변모시켜 이 마을의 재생 가능성을 충분히 뒷받침하고 있는 것이다.

집 주인인 최홍규 쇳대박물관장은 앞으로 외국인 전용 게스트하우스로 활용될 것이라 한다. 이들은 이렇게 조용하고도 내밀하게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었다.

▲수작의 2층 게스트하우스로 꾸며진 거실
그러나 이들은 자신들의 프로젝트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몇 사람만의 힘으로만 되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문화마인드를 지닌 사람들이 들어와 지역주민들과 협업하고, 동네 일손을 쓰고, 새로 들어오는 사람들이 기존 주민들을 위한 배려를 우선순위에 둬야한다는 철칙에 방점을 찍었다.

그래서 투기목적으로 이 지역에 들어오려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상당한 거부감을 가진다.

이들이 집을 매입한다는 소문이 들리자 어디선가 소문을 듣고 찾아온 외지인들이 하나둘 집을 구매하기 시작했다. 그저 투기 목적으로 들어올 요량인 사람들도 개 중에 있는 듯하다. 마을주민들과 공존공생을 모색하고 도모하고자 하는 이들의 마을공동체 취지와는 맞지 않는 의도를 가졌기에 그들에게 불편한 속내를 솔직히 드러낸다.

이들은 '주민들이 있는 것들이 동네를 휘저어 놓는다’는 생각이 들지 않게끔 들어올 사람들이 마을주민들과 어울리며 마음을 나누며 사는 아름다운 문화공동체로 만드는데 동참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프로젝트를 실현하기 위해 낙후된 이 지역에 서울시가 우선 지붕과 화장실 개조 지원만이라도 해주기를 건의할 생각이다.

서울시에서 지붕과 화장실 개조공사는 지원해 줬으면

이러한 변화를 마을 사람들은 정작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지 궁금했다. 마을 중심에 자리한 구멍가게 앞에 계신 할머니 몇 분들에게 물었다. 사람들이 많이 찾아와서 동네가 어수선하고, 차들도 많이 다녀서 성가시지 않으시냐고. 할머니 들은 마치 입을 맞춘 듯 이구동성으로 “복잡한 것도 있지만 동네만 좋아지고 발전만 된다면 좋다”라고 대답했다.

▲“우리 이대로 살게 해달라” 며 활짝 웃음 짓는 유오형(74세) ?조순득(74세) ?최영숙 할머니(76)

문화예술인들 들어오는 것에 대해서는 벽화로 인해 마을이 활기가 생기는 순기능을 봐서 그런지 마을도 더 예쁘게 가꿔지면 '사는 사람들로서는 환영할 일'이라고 반기는 분위기였다.

최영숙 할머니(76세,40년 거주)동네가 북적북적해야 좋지, 그래야 사람 사는 맛이 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조순득 할머니(74세 40년 거주)는 공기 좋고 없는 사람 이웃 모아서 나눠먹고 없는 거 채워주고 이렇게 살면 따뜻하니 얼마나 좋나. 불편함은 있어도 (구애받음 없이)내가 사는 집이 있고 행복하다고 진심어린 눈빛으로 말했다.

그리고 이 들은 그동안 진행되던 재개발에 대해 묻자 “ 절대 해서는 안 된다”고 손사래를 쳤다. 이유는 노인들이 대부분인 이 동네에 현재 상황으로 5층으로 재개발된다면 2,3억이나 되는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데 그걸 부담할 능력들이 대부분 안 된다는 설명이다. 그저 “지금 파삭파삭 삭아가는 집들을 제대로 수리라도 해서 살 수 있도록”만 해주기를 바랐다. 할머니들은 기자에게 “제발 우리 이대로만 살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 (조순득 할머니)

▲이화동 로타리에서 벽화마을 입구를 지나 마을 중심으로 올라가기 위한 다리밑 벽화. 마을이 위치한 높이를 짐작할 수 있게한다.

유오형 할머니(74세. 50년 거주) 는 "무조건 재개발되면 안 된다. 이 동네는 달동네처럼 행복하다. 여기 살아서 너무 행복하다. 이대로 사람이 많아야 동네가 활성화되지, 아파트는 절대 싫다. 아파트 들어오면 들어갈 여력이 안 되고 세도 없어지고 몇 억 들어가는데, 죽어도 안 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더 나아가 현재 재건축 조합 설립돼서 10년 끌어왔는데 이번에 시장님이 다 묶어 놓지 않았나? 그냥 묶어만 놓을 것이 아니라 이번 기회에 아예 재개발 못하도록 확정을 지어줬으면 좋겠다고 쐐기를 박았다. 유 할머니는 얼마 전 재개발 반대를 위해 70여명의 서명을 받아 종로구청에 제출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재개발 반대 “우리 이대로 살게 해주세요”

취재를 마치고 내려오려는데  나이 드신 한 남자 분이 다가와 기자에게 말을 건다. “혹시 이 동네에 뭐가 들어서나요? 이 동네에 뭔 일이 있는 건가요?” 그 질문에 기자가 되레 반문했다. 이 동네에 사세요? 이 동네와 연관이 있으신가요?

그 분은 10여 년 전 막 재개발 발표가 나자 이 동네에 집을 몇 채 샀다고 했다. 지금도 가지고 있지만 집이 워낙 낡아 세는 받지 않고 그냥 사람이 살도록 뒀다는 것이다. 그 당시 시세가 한창 오를 때 산지라 지금 시세보다 훨씬 높게 샀지만 처음 7~12층으로 올라갈 줄 알고 샀던 이지역이 5층 이하로 도시계획이 정해지면서 지금은 재개발에 대한 꿈(?)은 접었다고 한다. 당시 투자 목적으로 되팔 생각으로 샀다며 솔직하게 속내를 털어놓기도 했다. 그는 어쨌든 동네에 변화가 오기를 간절히 바라는 사람 중의 하나였다.

일제강점기 근대화 과정 무분별하게 개발된 이곳이 봉제, 원단, 의류 산업이 경제를 이끌던 70~80년대에 동대문시장, 창신동 봉제공장지가 인근에 존재하는 이화동은 그야말로 경제발전의 중심지였다. 도시공공프로젝트에 의해 봉제공장 간판도 예쁘게 달아 지고 삭막한 컨테이너가 화려한 색상으로 입은 건물로 변모되고 이곳과 인근 충신동까지 2000여 개의 봉제공장이 아직도 가동되고 있다.

머지않아 이곳에는 눈앞이 탁 트인 풍경을 볼 수 있는 게스트하우스와 아기자기한 찻집, 그리고 공방들이 속속 들어설 것으로 보인다. 현재도 ‘한국의 몽마르뜨’라고 불리는 이화동 벽화마을.

주민들과 공존공생 하겠다는 '재생프로젝트-문화공동체‘가 주민들 속으로 제대로 스며들어 아름다운 ’몽마르뜨로‘로 재탄생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