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한민족의 색채의식⑥
[특별기고] 한민족의 색채의식⑥
  • 일랑 이종상 화백 / 대한민국예술원회원
  • 승인 2012.10.27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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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방색 정색 노랑 ‘땅’과 ‘영토’ 상징, 곧 ‘황제’ ‘권위’ 상징

<지난호에 이어>

▲일랑 이종상 화백

‘파랑’, ‘푸르다’, ‘풀’, ‘풋-’ 등에서 공용된 ‘ㅍ’은 구순(口脣)의 파열음이다. 《석명(釋名)》에서 말했듯이 봄이 되면 얼었던 땅 속에서 식물의 새싹이 지표를 가르고 그 틈새에서 세상 밖으로 태어나는 소리이며 그래서 생기는 물체가 ‘풀’의 파란색이다.

입술이 열리듯 동쪽에서 천지가 열리고 그 ‘틈새’ 곧 ‘터진’ + ‘사이’ 에서 빛이 밝아오며 하루가 ‘새롭게(新)’ ‘시작(始)’되고 ‘생겨남(生)’으로 해서 ‘사이(間)’에 어원을 둔 ‘새벽’, ‘새참’, ‘새로움’, ‘새파란’, ‘새빨간’, ‘샅바’란 말이 모두 ‘ㅅ’으로 시작된다. 동풍을 ‘샛바람’, 혹은 ‘높새바람’이라 하고 동남풍을 샛바람과 마파람의 중간이라 하여 ‘새마바람’이라고 하는 것은 절묘하게 오방위를 드러낸 언어구조임을 알 수 있다.

‘풀’-‘파랑’의 ‘ㅍ’ 과 ‘사이’-‘새로움’의 ‘ㅅ’에서 동방의 새벽에 파랑과 트임, 새로움과 시작이 연상되어 ‘풋’과 ‘숫’을 명사의 접두어로 미숙하고 순수하며 새롭다는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우리말에 풋내기(未熟者), 풋솜(新綿), 풋잠, 풋내, 풋사랑, 풋김치, 풋나물, 숫되다, 숫처녀 등, 대부분 파란색과 동쪽, 새로움과 새싹을 연상하게 마련인데 알고 보면 일본의 고어에서도 이런 현상이 감지된다. 예컨대 mid?ri -ko(?兒?綠兒), mid?ri -me(緣女)가 그것인데 호적에 3살 미만의 아기를 일컫는 말이라고 한다.

파랑은 만물이 ‘생성’, ‘발원’하는 ‘근원’적으로 ‘어진(仁)’ 기운이므로 이 기운이 쇠퇴해 가게 되면 ‘소생’시키는 방법으로 청색의 물건이나 의상을 입었다. 이처럼 파랑은 영육간(靈肉間)에 ‘성장’과 ‘번식’을 관장하는 토속신앙의 벽사(?邪)와 주술(呪術)로 많이 쓰여왔다. 동방위는 ‘파랑’으로 ‘봄’을 상징하며 만물의 ‘시작’을 의미함으로 ‘청년’, ‘청춘’ 등과 같이 청색과 짝짓기를 한 어휘가 많다. 또한 서울의 동문인 동대문을 가보면 동(東)자 대신 흥인문(興仁門)으로 쓰여 있어 동즉인(東卽仁)의 오행사상을 읽을 수 있다.

우리의 생활과 밀접한 의생활을 살펴보면 선비의 웃옷으로 입었던 도포의 길복(吉服)이 남청색이었고 일반 서민들에게도 흰 옷 대신 파란색 물을 들여 입도록 권장하였다. 성종 이전까지만 해도 백궁(白宮)이 아청(雅靑)이며 중전과 대비의 치마가 남대란이었으며 왕세자가 녹색 옷을 입었다.

(3) 노랑(黃) - ( ‘ㄴ’ + ‘ㄹ’ )

‘노랑’이라고 부르는 요즘 우리말도 순수하고 고유한 우리의 색 이름이며 삼원색의 하나이고 전통적인 오정색(五正色)의 하나로서 명사이다. 형용사로는 ‘노란’이 있고, 부사로는 ‘노랗게’가 있어 간단한 어미변화만으로 명사와 동사를 수식할 수 있는 완벽한 색 이름이라고 할 것이다.

오방색의 정색인 노랑은 ‘땅’과 ‘영토’를 상징하므로 곧 ‘주인’이며 ‘황제’의 ‘권위’를 상징한다. ‘황금’은 변치 않는 ‘신용’을 의미하고 ‘광명’과 ‘부활’이다. 노랑은 ‘중심’을 가리키고 ‘신덕(信德)’을 드러내며 ‘안정’과 ‘번영’의 표징으로서 천자만이 곤룡포를 입을 수 있었다. 그래서 서민들은 단일색의 황색옷을 입지 못했으며 이전까지만 해도 자황색까지 입을 수 있었던 우리의 조선조 왕들의 복장에 있어서 비로소 고종 황제에 이르러서야 황색 단독의 곤룡포를 입을 수 있게 된다.

‘노랑’은 ‘노란색’의 함의(含意)로 쓰이는 말로서, 본래는 흙에서 얻는 금(노다지)이나 놋쇠를 이르는 어원에서 비롯되었다.

땅, 토지, 들(野)의 이미지로 넓다는 뜻과 농경문화에서 노동의 연속인 놀이(휴식, 유희)개념으로 발전한 것을 알 수 있다. 이처럼 공간개념으로는 땅(地)과 관련되면서 시간개념으로는 항상, 일상의 항속성과 장시간의 경과로 오는 현상, 즉 노쇠(老衰)하거나 중고품(中古品)으로 헐어지는 의미를 내포한다.

《두시언해(杜詩諺解16-65)》에 보면 ‘느리다’를 ‘놀외다’로 썼고 이것이 ‘날외다’로 변형되면서 ‘날(日)’이라는 시간개념으로 발전된 듯 싶다. 지금까지 ‘노랑’에 대한 어문학적 연구가 미진한 데다가 여기서는 전문적인 언어연구가 목적이 아니므로 다만 추론할 뿐이다.

이렇게 보았을 때, 노랑(黃)은 ‘ㄴ’ + ‘ㄹ’의 어근을 유지함을 알 수 있으며 《천자문(千字文)》에도 천지현황(天地玄黃)이라 하여 ‘하늘은 아득하고 검으며 땅은 누르다’라고 풀이하였다. <다음호에 계속>

 

*필자약력:서울대동양화화 교수/초대 서울대미술관장/국전초대작가 및 심사위원/5천원권·5만원권 화폐도안 작가/독도문화심기운동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