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백현순 한국체육대학 생활무용학과 교수] 전통 고유 정서 놓지 말아야 세계무대에 나갈 수 있어
[인터뷰-백현순 한국체육대학 생활무용학과 교수] 전통 고유 정서 놓지 말아야 세계무대에 나갈 수 있어
  • 인터뷰 이은영 편집국장 / 글 윤다함 기자
  • 승인 2012.10.31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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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정신 녹여낸 ‘유림-천추여죄균’, 11월4일 강동아트센터 대극장서 공연

     우리춤 안무가 백현순 한국체육대 교수가 이끄는 백현순무용단이 오는 11월 4일 오후 6시 강동아트센터 대극장 한강에서 ‘유림(儒林) - 천추여죄균’을 무대에 올린다.

     이번 공연은 우리나라는 물론 동아시아 정신문화의 중심인 유교를 모티브로 한 작품으로서, 2010년에 이어 두 번째로 발표하는 신작이다. 유교의 핵심사상인 인의예지仁義禮智와 사랑, 지혜, 발전, 배려, 자연과의 조화, 공존 등을 담고 있다. 또한 우리 문화의 근원을 형성하는 유학과 이를 실천하고자 했던 사람들, 즉 송시열을 통해 시대의 흐름에 타협하지 않고 꿋꿋하게 자신의 길을 간 격조 있는 선비를 표현하고자 한다.

     친근함과 인정 넘치는 그녀의 대구 말씨는 그녀 특유의 캐릭터이기도 하다. 왠지 모르게 그녀와 어울리는 고급 한정식 음식점에서 오는 11월 공연과 더불어 무용가이자 교육자인 그녀의 숨겨진 이야기를 들어봤다.

△1958년 대구 출생 △현재 한국체육대학 생활무용학과 교수 / 생활한국춤연구소 소장 △대구가톨릭대학교 졸업 / 이화여자대학교 교육대학원 졸업 / 경기대학교 대학원 졸업 이학박사 △2007 올해의 예술가상 수상 / 2001 경남무용제 최우수상·안무상 수상 / 창작활성화 지원금 수혜 공연 전국무용제 수상(1995년 우수상, 2001년 은상) / 1994 금복문화상 수상 / 1994 대구무용제 안무상 △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 전수자 / 중요무형문화재 제97호 살풀이춤 이수자 △대표작 : 유림(2010) / 태양새, 고원을 다시날다(2007) / 솔거(2006) / 천고독도지한(2005) / 회룡포 연가(2004) 외 다수

-오는 11월 4일 공연하는 ‘유림-천추여죄균’에 대해 소개해 달라.
“이번 공연은 지난 2010년에 이은 유림의 두 번째 이야기라고 보면 된다. 첫 번째 이야기에서 사랑 이야기를 다뤘다면, 이번 공연에서는 선비의 기개, 지조 등 시대의 흐름에 타협하지 않는 선비 정신을 표현했다. 오늘날 현대인들은 대부분 이익을 쫒으며 살지 않나. 힘 있는 쪽에 붙고, 줄 서며 말이다. 이 작품을 통해 옳은 길을 가는 선비정신을 되새겨봄으로써 부정과 타협하거나 아류를 따르는 세태에 경종을 울리고 동시에 우리 춤의 본질을 읽고, 나만의 스타일을 나타내려고 했다.”

최근 공연계를 포함해 전 분야에 걸쳐 부는 ‘융복합’ 바람은 무용계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에 따라 자연스레 우리 춤의 정서와 테크닉도 서양화돼 가고, 한편으로는 전통 춤과 한국무용의 정체성이 모호해져 가는 것에 대한 우려가 적지 않은 게 사실이다. 백 교수는 이러한 변화 속에서도 우리 춤의 소재만큼은 우리 고유의 것이어야 한국의 정서를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해서 탄생된 게 바로 ‘태양새, 고원을 다시 날다’(2007)와 ‘유림’(2010)이다.

백현순 무용단 '유림'

-작품의 부제가 ‘천추여죄균’인데, 어떤 뜻인가?
“송시열은 역모에 가담했다는 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죽임을 당하고 말지만, 죽기 전, 자신을 모함한 간신들에게 ‘천추여죄균’이란 말을 남겼다고 한다. ‘아무리 시대가 변하고, 시간이 흘러도 네가 지은 죄는 없어지지 않는다’란 뜻으로, 무시무시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첫 번째 ‘유림’과 비교해 감상 포인트가 있다면?
“첫 번째 공연에서는 스토리에 중점을 뒀었다. 개인적으로 무용에서 스토리텔링은 필수라고 생각하는데, 스토리가 없으면 너무 단편적인 이미지만으로 이뤄져 오히려 춤의 흐름을 방해하는 것 같다. 하지만 공연 후, 스토리에 너무 치중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있었다. 이번 공연에서도 스토리가 있지만 첫 번째와 비교해 스토리를 상징적으로 표현해봤다. 각 장에 나타나는 이미지는 상징적이긴 하나 1막부터 4막까지 모두 연결된다. 솔직히 내심 관객이 이해하기 힘들면 어쩌나하는 걱정도 내심 든다.”

-선비정신이라는 소재의 특성상 공연을 올리는 데 있어서 수월치 못한 점들이 있었을 것 같은데….
“그렇다. 좀 특이한 소재라 어려운 점들이 있었다. 남자무용수가 필요한데, 남자무용수들이 귀하지 않나. 여자무용수를 남장을 시켜야 하나 고민도 많았다. 무대에는 남자무용수와 여자무용수가 함께 올라간다. 또한 나는 예술성과 대중성을 지녀야한다고 늘 생각해왔다. 나만이 아는 코드로 춤이 진행되고, 너무 예술적으로 승화되고 그러면 무슨 소용이 있겠나. 자칫 흥미가 떨어질 수도 있을 ‘선비정신’이란 소재를 가지고 한국무용만의 독창적인 예술성과 대중적인 재미를 함께 지키기 위해 애를 많이 썼다.”

‘유림’은 한국 선비의 정신을 담고 있는 작품으로서, 세계 시장을 겨냥해 만들었다. ‘유림’의 첫 번째 이야기는 사대부집 도령과 사당패의 딸의 신분의 차이를 배경으로 한 사랑을 그리며, 이룰 수 없는 사랑에 대한 한을 표현하는 동시에 사당패의 신명을 담아 관객과 비평가들로부터 ‘현재까지 살아있는 우리 유교문화의 현상과 우수성을 아름다운 춤으로 담아냈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백현순무용단 '유림'

-중요무형문화재 97호 살풀이춤 이수자이다. 살풀이춤의 매력과 선택한 계기에 대해 말해 달라.
“제일 처음에는 수건을 들고 즉흥무를 췄는데, 그게 결국 살풀이춤이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춤이고, 살풀이춤에서 내가 한국정서를 가장 잘 이해한다고 느낀다. 하지만 정작 공연에서는 잘 추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살풀이춤은 원래 좀 아담한 체구의 무용가가 춰야 어울리고 보기 좋다고 생각하는데, 내가 키가 작지는 않은 편이라….(웃음) 그리고 본디 살풀이춤은 종류가 수십 가지에 이르렀는데, 문화재로 지정되면서 이매방류, 한영숙류 등 두 가지정도만 남게 됐다. 다시 살풀이춤을 다양하게 개발해내고, 발굴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 또한 이수자이긴 하지만, 나만의 살풀이춤을 만들고 싶은 꿈이 있다. 한국무용가로서 당연히 가져야 할 꿈인 것 같다.”

-살풀이춤에는 흔히들 한恨의 정서가 깔려 있다고 한다. 백 교수가 생각하는 한은 무엇인가?
“살풀이춤에서 일반적으로 말하는 한과 내가 생각하는 한은 좀 다르다. 한이 무엇인가에 관한 건 참으로 중요하다. 난 그것에 대해 논문까지 썼으니 말이다. 내가 생각하는 한은 자신이 속에서 삭히고 녹여서 풀어내는 거라고 생각한다. 누군가 대신 풀어주는 게 아니라, 마치 도 닦듯이 자기 스스로 치유해내는 것 말이다. 즉 화해와 밝음의 과정으로 나아가는 게 한이다. 보통 생각하듯이 부정적이고 어둡고 슬픈 게 아니라 말이다. 오히려 한은 긍정적이다.”

-지난해 남편 육정학 교수와 함께 세계최초 Full 3D 무용영화 ‘均/균’을 만들어 화제가 됐다. 내외 모두 열정이 대단하다.
“함께 작업하면서 싸우기도 엄청 싸웠다.(웃음) 우리가 하는 비디오댄스는 어떻게 보면 리얼리즘에 가깝다. 물이 필요하면 강에서 촬영하는 등 실제로 영화 찍듯이 작업하기도 했다. 어떤 사람들은 좋다고 하지만 또 한 쪽에서는 무용수들이 뭔 저런 걸 하냐는 말도 나오고…. 아직까지도 우리 무용가들에게 비디오 댄스에 대한 인식 자체가 없다. 지금껏 작업해놓은 5~10분짜리 작품, 20분짜리 작품 등 비디오작품이 제법 많다. 극장이 마땅치 않아서 상영은 못 했는데, 좋은 곳을 찾고 있는 중이다. 또한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치유를 해줄 수 있는 ‘힐링’ 영상을 만들어 병원이나, 요양원 등에서 상영하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무용과 졸업생의 취업난, 진로문제 및 무용과 축소·폐지 등 무용전공자의 수난이 끊이질 않는다. 교수이자 교육자로서 어떻게 생각하나?
“무용이 일단 학교정규수업으로 포함돼야 하겠다. 근래 들어 청소년 폭력, 왕따 등의 문제 역시 예체능 수업의 축소 및 폐지로 인해 정서불안정 등에서 불거져 나오는 문제라고 볼 수 있다. 예전에는 무용시간이 꼭 한 시간씩은 필수였는데, 지금은 다 사라지고 독립교과도 아니다. 그런 와중에 예술로 분류돼 체육에 끼지도 못하는 상황이라 입지는 점점 좁아지고, 비교적 무용계의 백그라운드가 다른 예술분야에 비해 든든하지 못한 것도 현실이다. 이럴 때일수록 무용인들이 뭉쳐야 한다. 단순 신체활동에서는 얻지 못하는 정서적인 부분을 무용에서 얻을 수 있다고 내가 소리를 내고 있는 중이다. 예술교과이되 체육교과와 연계해 나가면 어떨까 생각한다. 또한 요즘은 생활무용이라고 하면 대부분 스포츠댄스, 에어로빅 등을 뜻한다. 우리 민속무용은 없어진 거다. 우리 춤 역시 시대에 맞게 생활무용으로 재창작돼 대중 속으로 파고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자연스레 일자리 창출에도 연관이 될 거다.”

-백현순무용단과 학교 무용단을 동시에 이끌고 있는데, 아무래도 둘 사이에 갭이 생길 수밖에 없을 것 같다.
“프로무용수들 데리고 계속 하다가 처음에 학교 왔을 때는 솔직히 좀 불편하고 답답했다. 그렇다고 프로무용수들만 계속 무대에 세우다보니 학생들이 발전하지 못하더라. 그래서 생각을 바꿨다. 학생들도 훈련받고 무대경험이 생겨야 프로무용수로 성장할 수 있는 것 아니겠나. 출전경험이 얼마나 중요한 건데, 연습만 하고 출전할 기회를 못 얻으면 안 되니까…. 그래서 지금은 재학생, 졸업생 등 학생들 위주로 공연을 하고 있다. 이번 ‘유림’에도 학생들 몇이 올라간다. 이렇게 하다 보니 실력 있는 아이들이 우리 무용학과에 진학하려고 하고, 또 학생들의 실력도 향상되고 여러모로 참 뿌듯하다. 앞서 말했듯이 예술무용 따로, 생활무용 따로 하지 않듯이 무용단 따로 하고, 학교 교육 따로 하지 않는다.”

-지난해 최승희 탄생 100주년기념학술심포지엄에서 ‘최승희 작품분석’ 토론자로 참석했는데, 최승희와 특별한 인연이 있는가?
“특별한 관계는 없다. 다만 한때 난 최승희 선생을 과소평가했던 적이 있었는데, 일본에서 배워온 춤이기에 우리 춤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게 내 생각이었다. 신무용 자체가 우리 토속적인 것과는 아예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승희의 춤이 세계적으로 이름을 떨친 건 사실이지 않나. 만약 최승희를 부정한다면 결국 우리나라의 유명한 무용수 하나를 잃는 것밖엔 안 된다고 깨달았다. 우리가 신무용이라고 명명했다면, 신무용을 독자적인 걸로 만들어야 한다. 예를 들어, 명품 브랜드 ‘버버리’의 체크무늬가 스코틀랜드의 정통문양이라고 하더라. 그와 같은 예로 최승희의 신무용을 우리 전통으로 만들어 계승하고 개발하면, 우리 무용계가 세계로 나아가는데 보탬이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무용계에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무용가와 무용 평론가 사이에 서로 상호비판 한다거나, 견제하는 등 서로 싸우고, 고소하는 일들이 사라졌으면 좋겠다. 무용계의 진정한 발전을 위해 겸허히 받아들이고, 건전하게 지면을 통해 토론했으면 한다. 법정으로 가는 게 아니라…. 또한 평론가들 역시 신중하게 글을 써주길 바란다. 그렇다면 자연스레 건전한 무용문화가 형성되지 않겠나. 실은 내가 예전에 경험이 있는데, 성심성의껏 작품을 올렸는데, 어떤 평론가가 무성의하게 글을 쓴 적이 있다. 무용평론의 특성상 리뷰나 평론이 많지 않은 탓에 한 평론가의 글이 사실처럼 굳어지는 경향이 있다. 나는 그에 대해 조목조목 따지고 싶었지만 마땅한 지면이 없어서 내 반론을 제대로 펼치지 못한 것이 계속 아쉬움으로 남는다. 앞으로는 무용인과 무용평론가 모두 함께 견해를 나누는 공론의 장이 마련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