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안창홍 작가] ‘아리랑’展, 기득권자 그늘에 가려진 이들의 이야기
[인터뷰-안창홍 작가] ‘아리랑’展, 기득권자 그늘에 가려진 이들의 이야기
  • 인터뷰 이은영 편집국장 / 글 윤다함 기자
  • 승인 2012.11.12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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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지 속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그리고 싶어

     현실과 실재를 기반으로 인간 내면 깊숙이 숨겨진 본능과 욕망을 거침없이 표현해 온 안창홍 작가가 내달 9일까지 더페이지갤러리에서 개인전 '아리랑'을 발표한다. 이번 전시에서 전복적인 표현방식과 더불어 한층 더 깊어진 여유와 무게감이 깃든 그의 신작 20여 점을 만날 수 있다.

     미술 정규교육을 받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힘으로 터득한 회화방식으로 '미술계의 이단아'로 일컬어지는 그는 정형화된 회화의 주류에서 벗어나 스스로 구축한 새로움을 추구해 왔다. 그만의 독자적인 야성과 천재성은 보는 이로 하여금 불편함을 던져주기도 때로는 깊은 정서적 울림을 안겨주기도 한다.

     이번 개인전에서 그는 보편적이고 역사적인 노래 ‘아리랑’을 바탕으로, 근현대시대 사진 속 인물들을 회화로 구현해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가락을 담아 메시지를 전달한다. 전시오프닝인 지난 7일, 더페이지갤러리에서 그를 만나 이번 전시와 관련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다음은 그와 나눈 일문일답. 

△1953년 경남 밀양 출생 △개인전 : 1981 제1회 개인전(부산 공간화랑, 서울 청년작가회관) / 2003 제1회 부일 미술대상 수상 기념전(부산 코리아 아트 갤러리) / 2010 제10회 이인성 미술상 수상자 초대전(대구 문화예술회관 달구벌홀) / 2012 제29회 개인전 '쿠리에서 고비까지'(서울 갤러리룩스) 외 다수 △그룹전 : 1976 안창홍·정복수 2인전(부산 현대화랑) 외 다수 △1989 카뉴국제회화제 심사위원 특별상(카뉴, 프랑스) / 2000 제10회 봉생문화상 전시부문(봉생 문화재단, 부산) / 2001 제1회 부일 미술 대상(부산 일보사, 부산) / 2009 제10회 이인성 미술상(대구) 수상

-이번 개인전은 울화통과 무력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시작한 작업의 결과물이라고 써놓은 글을 홈페이지 작업노트에서 봤다. 그 울화통과 무력감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나라 다스리는 사람들에게 문제가 있어서 오는 감정이다. 사회적 약자들은 더욱 더 소외받고 힘들어지고, 부도덕한 것들이 그저 당연시되며, 정의는 사라진지 오래됐다. 이런 상황까지 몰고 온 그들을 나는 파렴치한 범죄자라고 말하고 싶다. 사람들 사이에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된다. 정도껏이어야 말이지, 사회적 약자들이 너무나도 소외되고 차별받으니 내가 이렇게 민감하게 반응하게 되는 거다. 이 지옥 같은 현실에서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정신없이 바빠지는 것, 작업에 열중하는 것일 뿐, 다른 방도가 떠오르질 않았다.”

-그렇다면 그런 답답함에서 벗어나게끔 해주는 작품 활동은 본인에게 어떤 의미인가?
“새 화폭을 마주할 땐 늘 막막함이 앞서지만 붓을 잡고 그리기에 열중하다보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그 막막함은 사라진다. 흐르는 시간도 잊어버리고, 작업실 안에는 절대고독과 침묵만이 존재한다. 열중한 채 몇 번의 밤낮을 흘려보내고, 더없이 넓어 보이기만 하던 흰 면 위에 안개가 걷히듯 의도한 형체가 나타나기 시작하면 어깨의 통증도 사라지고 밀려오는 피로감마저 달콤해진다 .예술 활동이란 나에게 인생이며 기억이다. 나는 그림을 그림으로써 새로운 것을 알게 되고 옛일을 기억하며 나의 인생을 완성 시킨다.”

Arirang 2012'16 Drawing ink, acrylic on archival pigment print 255.4x399.6cm

-이번 개인전 ‘아리랑’에서 오래된 흑백 사진을 회화로 재탄생시킨 작품들을 선보인다. 이에 대한 소개 부탁한다.
“과거 속 한 장의 사진에서 얼룩을 통한 가해의 흔적과 인물의 눈을 감김으로써 광기 어린 역사 뒤안길에서 애당초 없었던 듯이 허깨비처럼 사라져간, 아니면 이 순간 노구를 이끌고 생의 마지막 언저리를 더듬고 있을 이들의 지난한 삶에 대한 연민, 한, 상처를 표현했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현재진행형인 이 시대의 야만과 불길한 미래를 이야기하고 싶었다. 작품들은 사진 자체를 작품으로 활용하거나 사진의 모티브를 회화적 방식으로 변용해서 그린 거다.”

이번 전시 작품들은 70년대 후반의 ‘가족사진’, ‘봄날은 간다’, ‘사이보그’, ‘부서진 얼굴’, ‘49인의 명상’ 등의 시리즈들의 연장선상에 있다며, 평생을 투자해 이제 완결을 향해 가고 있는 각별한 주제라고 그는 말했다. 특히 이렇게 ‘기념사진’만을 모아 연작으로 선보이는 전시는 이번 개인전이 최초라고 한다.

-이번 작품들에서 두드러지는 특징은 작품 속 인물들 모두 눈을 감고 있다는 점이다. 시리즈를 통해 인물들의 눈을 도려내기도 했었는데, 이에 어떤 차이가 있나?
“보통 사진이라고 하면 자신을 보이기 위한 것인데, 다들 멋있게 나오려고 눈을 크게 뜨고 찍거나 그런다. 자신을 분명히 드러나게 하기 위해서 아니겠나. 하지만 눈을 감기거나 도려낸 건 자신을 부정하는 행위와 같다. 난 이 행위를 통해 역사적으로 접근하고 싶었다. 역사란 권력자들의 욕망에 의해 이뤄지는 일들, 영웅담들이라고 본다. 그런 역사의 그늘에는 기득권자들과 영웅만 존재하고, 그 역사의 굴곡 속에서 힘들게 버텨온 사람들의 이야기는 없다. 정작 주체인 그들의 이야기는 부재한다. 눈을 감고 있다는 건 부재한다는 것과 같다고 보면 된다.”

-또한 회화 표면 위에 얼룩, 찢기고 긁힌 흔적을 표현했다. 여기에는 어떤 의미가 있나?
“탄압과 격변의 역사가 이들에게 줬을 고통과 상처를 그렇게 표현해봤다. 덩어리로, 때로는 찢어지고 긁히고 뜯어진 모습으로 나타냈다. 구겨지고 손상된 그림들은 세피아, 흑백, 노란 피막으로 거듭나 시간의 흐름과 함께 삶의 단층들을 보여주면서 역사의 흐름 속에 변화되는 과거를 상기시켜 주는 역할을 한다.”

인물들의 눈을 감긴 행위는 우수와 연민, 비애감 혹은 내면으로 침잠된 듯한 시각적 효과와 기억의 환기, 존재에 대한 증명 등 사진이 가진 고유한 정서를 뒤집어 존재의 부재를 의미하기 위함이라고 그는 말했다. 기구한 역사의 삭풍을 모질고 질기게 헤쳐 갔을 지친 영혼들의 상처와 시대의 우울을 아울러 상징할 수 있는 찢긴 흔적, 혈흔자국, 빛바랜, 그을린, 탄흔자국 등을 일차적으로 완성된 흑백그림 위에 가해하듯이 중첩시킴으로써 사진 속 인물들을 그 시대의 현실 속으로 불러내어 이미 경험했거나 경험해야 할 사건들 속으로 끌어들인다.

-가족사진, 학창시절 친구들과의 사진 등 이런 흑백사진들은 어디서 구한 것인가?
“작품에 이용된 모든 사진들은 모두 세상 여기저기에 방출된 사진들이다. 인터넷 경매와 고물상 등에서 우리나라 근현대시대의 사진들을 수집했다. 이는 우리나라의 불안정한 과거들을 뜻하며, 동시에 이런 구입방법은 자기 꺼 조차 지켜내지 못한 역사를 뜻하기도 한다. 더불어 신선하고 새롭긴 하지만 과거의 기품이 스며들어있는 것, 즉 현대적인 아리랑을 노래하기 위해 시작하게 됐다. 또한 시각적으로 거대한 변화를 줄 수 있는 완벽한 구상의 사진적 회회라는 점도 주목할 수 있다.”

-이번 ‘아리랑’ 시리즈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변화를 겪으며, 여러 작품을 선보여 왔다. 다른 작가들과 비교해 유독 다채롭고 다양한 작품들을 해왔는데, 이에 대해 한마디 해 달라.
“작가는 하나의 주제만을 가지고 살아 갈 수도 있겠지만, 내게 있어서 예술이란 새로운 것을 표현 하는 것이며, 끊임없는 자아성찰의 결과다. 나는 하나의 시리즈에 안주하기보다는 새로운 것을 발견하려고 노력하며, 이에 대해 앞으로 내가 무엇을 생각해야하며, 이것을 어떻게 표현 할지에 대해 늘 고민하고 있다.”

-홈페이지 이름부터가 ‘똥’이다. 작품에서 ‘똥’이란 글자를 그리기도 했는데, ‘똥’이란 무엇인가?
“똥은 상당히 중요하다. 단순히 보면 그저 배설물에 불과하지 않지만, 긍정적으로 보면 거름으로써 새 생명과 새싹을 잉태한다. 난 예술가의 작품 역시 똥일 수도 있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긍정적인 측면에서 말이다.”

-여장남자, 반으로 잘린 몸통, 수십 마리의 파리 등 어찌 보면 기괴하고 경악스러울 수도 있는 작품을 그려왔다.
“인간의 끝없는 욕망과 탐욕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다. 특히 파리는 이빨이 없지만 엄청 끈질기지 않나. 그런 걸 빗대서 인간이 욕망을 위해선 끊임없이 달라붙는 모습을 표현한 거다. 세상에는 파리 같은 사람들이 참 많다.”

Arirang 2012'19 Oil, drawing ink on canvas 147.8x103.6cm

-고등학교를 졸업 후 대학에 진학하지 않았다. 대학에 가지 않은 이유는 무엇이며, 누구한테 그림을 배웠는지 궁금하다.
“당시 난 정규교육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미대라는 곳은 내게 너무 한심스러웠기에 배울게 없었다. 난 고등학교 졸업 후 곧바로 세상이란 바다를 맞이한 거다. 실은 어떻게 보면 난 혜택 받은 삶이라고 할 수 있다. 교육을 거부하고 나만의 독자적인 세계를 이뤄낸 것 자체가 혜택인 거다. 지금도 난 대학을 가지 않은 게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미술계에 뛰어든 그때부터 지금까지 난 항상 중심에 있을 수 있었고, 또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었으며, 학교 교육의 틀 속에 갇혀있기보다 훨씬 더 자유롭게 스스로 깨달음을 얻어왔으니 세상으로부터 그림을 배웠다고 할 수 있겠다. 온갖 지혜로운 것들이 세상에 널려있다.”

그저 그리는 게 좋아서 시작한 그림이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그림이 유일한 놀이였으며, 자신만의 대화의 창구이자 스스로의 위안이었다고 회상했다. 당시 사회 분위기는 그림쟁이 되겠다는 아들을 보고 가만히 있을 부모님은 없을 때였다. 집에서 반대가 심했지만, 오히려 고등학교 선생님이 그의 재능을 알아보고 물감과 그림도구를 사줬다고 한다.

-예술가로서 구현하고 싶은 꿈과 개인적인 바람이 있다면 말해 달라.
“개인적으로는 그저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다.(웃음) 작가로서는 앞으로 계속 그림 그리는 삶을 살고 싶다는 거. 스스로에게 실망하지 않는 화가가 되고 싶다. 사회적인 갈등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들, 음지 속의 삶을 살아가는 인간들, 야망의 시대와 그 피폐한 시대를 피해갈 수 없는 인간들 등 인간에 대한 여러 가지 문제들을 그리고 싶다. 원래 위대한 예술가는 인간을 노래한다고 하지 않던가.(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