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연재]한민족의 색채의식⑦
[특별기고-연재]한민족의 색채의식⑦
  • 일랑 이종상 화백/대한민국예술원회원
  • 승인 2012.11.16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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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망은 모든 만물의 낳고 죽음을 관장

<지난호에 이어>

▲일랑 이종상 화백

하양은 바탕색(素色)으로 내용의 질료까지도 포함하여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다. 가장 자연색에 가깝기 때문에 순결과 진실, 의(義)로움, 조락(凋落)을 의미하고 가을(秋), 금(金)과 서방위(西方位)의 백호(白虎)를 뜻한다. 백의종군(白衣從軍)이란 말은 기득권을 버리고 아래로 내려가 함께 봉사한다는 말이다. 서민이 평상시 흰 옷을 입는 것은 강제된 것이든, 아니든 간에 자연 속에서 순수하고 정결하며 의롭게 살고 싶어하는 소망의 뜻이 내포되어 있다. 상중소복(喪中素服)은 탈속의 의미이며 경천사상과 맞물려 하늘로 돌아가 내세를 소망하는 기원의 뜻이 담겨 있다.

서울의 서방위를 지키는 서대문은 간데 없고 문이 아닌 지명만 남아있다. 그러나 오행사상으로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는 일이다. 우선 경복궁의 서문을 보면 역시 같은 맥락으로 서즉추(西卽秋)이므로 영추문(迎秋門)이라고 명명되어 있다. 이런 이치로 지금의 서대문 네거리 어디쯤 서있어야 할 수문의 이름도 서즉의(西卽義)이므로 돈의문(敦義門)이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오랜 농경문화의 영향을 받아왔기 때문에 하늘을 우러르며 기원했고 광명의 원천인 태양을 신성시하며 인내천(人乃天)의 합일사상을 바탕으로 한 백색 선호사상을 지녀왔다. 백색을 하늘의 ‘해’로 보고 우리가 얼마나 하늘의 광명신과 그 빛을 상징하는 하얀색을 좋아했는지 알 수 있다. 그래서 하늘에 가깝고자 하고 높고자 하는 염원에서 백두대간(白頭大幹), 태백산(太白山) 등의 이름을 붙였다.

의복에 나타난 색채의식을 살펴보면 흰옷을 소의(素衣)라 하여 물(染色)들이지 않고 무색(無色)의 바탕색 옷을 가리켰다. 흔히 노인들이 ‘무색옷’이란 말을 쓰고 있는데 여기서 말하는 무색이란 물색, 즉 ‘물감들인’, ‘염색한’이란 말이 되므로 무색옷은 물들인 옷이라는 뜻이 된다. 양원제편요(梁元帝篇要)에 서방위가 하양이기 때문에 이 두 가지를 결부시켜 소추(素秋:迎日素秋)라고 했다. 또 동방위가 파랑이며 봄을 상징하고 시작을 의미하기 때문에 청춘(靑春)이라고 짝짓기한 것을 보면 이런 색채의식이 밑바탕에 깔려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아름다움에 대해 공자가 말하기를 회사후소(繪事後素)라고 했다. 소(素)자를 놓고 색을 말한 것이냐, 아니면 인격적인 사람의 바탕을 말하는 것이냐를 놓고 해석이 분분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동양인의 종합적인 언어인식의 연계성을 생각했을 때 소(素)의 함의(含意)는 두 가지를 다 아우르는 종합적 개념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5) 까망(黑色系) - ( ‘ㄱ’, ‘ㄲ’, ‘ㅋ’+ ‘ㅁ’ )
까망은 북방위로서 겨울에 해당하며 풍수(風水)로는 현무(玄武)이고 오행으로는 수(水)를 상징하면서 지혜를 나타낸다. 모든 만물의 낳고 죽음을 관장하여 북두칠성에 치성들여 낳고, 죽어서는 북망산천에 묻히게 되므로 무시무종의 분기점이다. 까망은 빨강을 내포하고 다시 빨강은 노랑을 내포하면서 상생 순환하는 색 고리를 형성한다. 까망은 이 세 가지 색이 감산 혼합된 합색이므로 쉬지 않고 삼정색이 그 안에서 순환해야 색가를 유지한다.

까망은 지혜를 상징하여 지금도 서울의 북문으로 홍지문(弘智門)이 건재해 있어 북즉지(北卽智)를 나타내며 전공별로는 생사를 다스리는 의술(醫術)이 이에 속한다. 

조선시대의 복색으로는 흑색(黑色)·감색(紺色), 오색(烏色)·현청색(玄靑色)·구색(鳩色) 등이 있고 흉례(兇禮) 때는 주로 흑백색(黑白色)만 허용되었으며 황색(黃色)은 아주 부분적으로만 사용되었다. 이런 관습이 지금까지도 아무런 불편없이 이어져오고 있는 것을 보면 서민의 생활과 일치하는 색채의 합리성을 얻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평시에도 오방색 중에 흑백의 무채색만 서민에게 허용되고, 적, 청, 황의 유채색(有彩色)을 포함한 오방색 전부는 상층계급에만 사용하도록 하였다. 이 때문에 한국의 민중들은 자유롭고 원만한 색채생활을 하지 못하고 백(白), 회(灰), 흑(黑)의 무채색만을 사용하게 된 불운을 경험하게 된다.
까망(黑)은《훈몽자회(訓蒙字會)》에서 ‘감다’가 ‘검다’로 교체되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 말에서 까망을 표현는데 ㄱ+ㅁ(k+m)의 어근뿐인 것 같으나 흰말(白馬)을 ‘설아말’ 검정말(黑馬)을 ‘가라말’이라고 했는데 제주도에서는 지금도 ‘가라말’이라고 쓴다.  <다음호에 계속>

*필자약력:서울대동양화화 교수/초대 서울대미술관장/국전초대작가 및 심사위원/5천원권·5만원권 화폐도안 작가/독도문화심기운동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