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평우의 우리문화 바로보기]대한민국역사박물관을 진단한다.
[황평우의 우리문화 바로보기]대한민국역사박물관을 진단한다.
  • 황평우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 소장
  • 승인 2012.11.29 05:3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현대사의 의미를 총망라하는 역사박물관을 건립하면서 정부는 2008년에 개관 시기를 2014년이라고 밝혔으나, 건립 계획 단계인 2009년엔 2013년 2월로 당겨 잡았고, 지난해 12월에는 개관을 올해 12월로 고친 데 이어, 지난 5월에는 올해 11월22일로 개관일을 다시 바꿨다.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소장

개관일이 앞당겨 진것에 대해 문화관광부 관계자는 "박물관 건물 공사가 일찍 마무리 된데다 국민들에게 조금 더 일찍 개방하려고 개관 일정을 앞당겼다"며 "12월 개관을 목표로 한 적은 있지만, 개관식을 열기에 날씨가 너무 춥다는 지적이 있어 11월에 하기로 했다"고 한 언론사에 밝혔다.

그러나 심각한 문제는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이 한명의 대통령 즉, 박 전 대통령 미화에 치중돼 있다는 것이다.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에 대지 6445㎡, 8층 규모로 개장하는 이 박물관의 4개 전시실 가운데 박정희 정권 시절에 해당하는 제3전시실('성장과 발전')의 면적은 960㎡로, 680㎡ 크기의 다른 전시실보다 40% 이상 규모가 크다. 제3전시실의 전시물 445건 가운데 84.1%(374건)가 새마을운동(48건), 경부고속도로(18건) 등 박 전 대통령의 업적을 다룬 반면, 3선 개헌 반대(5건) 및 유신 반대운동(11건) 등을 소개한 전시물은 71건에 불과하다.

한 국가의 현대사를 정리해서 전시하겠다는 박물관전시계획을 문화관광부는 불과 설립 3개월밖에 되지 않은 회사에 용역을 맡겼다. 이 회사의 대표는 역사문화, 박물관 전문가가 아닌 사진작가 출신이다.

또 "초대 박물관장으로 이명박 대통령의 정책자문위원 출신인 이배용 전 국가브랜드위원장이 내정되어 있다가 국회에서 뉴라이트 경력이 문제가 되었다. 이후 이배용 위원장은 현재 다른 국책기구 책임자로 가있다가 박근혜 후보 선대본부 공동 의장으로 등장했다.

또 2급에 해당되는 박물관 직재를 4급으로 낮춘 것에도 여러 추측들이 가능하게 한다.

장관급(국가브랜드위원장)이 4급(전문직 나 급) 수준의 기관장으로 오려는 의도가 궁금해진다. 2급 기관장(고위공무원단)은 업무수행능력 등을 검정 받아야하고, 급여도 제한적이다. 그러나 4급은 업무 수행 검증도 없고, 급여도 오히려 더 높이 받을 수 있다는 후문이 돌고 있을 정도이다. 문화관광부는 2급으로 관보에 고시를 해놓고는 왜 4급 수준으로 하향했을까.

애당초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은 헌법 전문에 명기된 상하이임시정부를 부정하는 현 정권의 관점에 따라 추진됐다. 24명의 건립위원 대부분은 일제의 병탄과 이승만·박정희 독재와 쿠데타를 미화하는 뉴라이트 계열 인사였으며, 그나마 근현대사 주전공자는 하나도 없었다.

국가주의와 사대주의로 똘똘 뭉친 이들이 전시 구성과 방향을 정했으니 박물관의 성격은 이미 결정돼 있었다. 전시 구성과 방향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일부 위원은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최근엔 여당 후보 선대본 의장인 인사를 박물관장에 내정했으니 더 할 말이 없다.

국정감사 과정에서 드러난 전시 내용은 참으로 황당했다. 전체적으로 태동, 기초 확립, 성장과 발전, 선진화와 세계로의 도약 등 '성공신화'로 구성해 이승만·박정희 독재를 찬양하지 않을 수 없게 했다. 전시 설명 기초자료에 이승만 28번, 박정희 24번 언급되지만, 나머지 국가수반은 모두 합쳐 19번밖에 언급이 없는 것은 그런 까닭이다.

5·16 쿠데타는 장면 정부의 무능 때문에 발생했다고 기술했고, 세계 사법사상 암흑의 날로 지정된 인혁당 사법살인 관련 기록은 단 한 건도 전시되지 않았다.독일 현대사박물관의 경우 헬무트 콜 전 총리가 건립 의지를 천명하고 12년 뒤에야 개관했다.

그 뒤에도 여론을 수용해 두차례나 대대적인 보완작업을 했다. 박물관은 현재와 과거가 대화하는 곳이지, 특정 관점과 해석을 강요하는 곳이 아니다. 강요한다면 그건 국가폭력이다.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은 개관하자마자 뉴라이트와 박정희 기념관으로 전락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선진화는커녕 후진적 작태의 전형이다.

따라서 박물관 개관은 연기해야 한다. 행정부든 국회든 독립된 기구를 설치해, 학계와 시민사회의 의견을 모아 전시 철학과 방향, 내용을 다시 정해야 한다.


육의전박물관 관장
문화연대 약탈문화재 환수위원회 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