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대상> 수상자, 장인정신 열정 투혼이 오늘 있게 했다
<문화대상> 수상자, 장인정신 열정 투혼이 오늘 있게 했다
  • 김지완 기자
  • 승인 2012.11.30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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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수상>, <젊은예술가상> 수상자…오늘과 내일 빛낸다

▲문화대상 수상자 프로필 및 선정 이유

전통 대상 송순섭 (사)동편제판소리보존회 이사장·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적벽가 예능보유자

운산 송순섭명창은 송흥록→송광록→송우룡→송만갑→박봉래→박봉술→송순섭으로 이어지는  동편제  판소리 유파의 적자이며 현재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예능보유자로 활동 중인 사람 중 남자는 유일한 명창이다. 송 명창은 일생동안 판소리만을 고집하며 외길인생을 살아온 집념 강한 사람이다. 성품은 강직하여 불의와 타협할 줄 모르고 생활은 검소하여 청빈낙도의 기품을 지닌 올 곧은 국악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국악진흥사업을 위해 국악의 불모지라 할 수 있는 부산시국악회관 건립자금조성을 위해 1974년부터 1977년까지 본인이 직접 서화 수집을 전개, 전시회를 개최해 3,000만원의 기금을 조성했다.부산에서 창극공연 제작 감독을 시작으로 광주 서울을 오가며 “열사 류관순”을 비롯 백범 김구에 이르기까지 민족의식과 역사의식을 고취시키는 창극공연을 수십차례 사비를 털어서 올려왔다. 후학양성에도 힘을 쏟아 서울대와 한국예술종합학교 등에서 제자양성을 위한 국악교육에 심혈을 기울여 왔다. 판소리는 구전음악으로 가사전달이 불분명 오전되기 쉬우므로 정확한 가사전달과 자구해석(주석)을 위하여 수궁가 흥보가 적벽가 등의 판소리 창본 발간, 예산문제로 무산될 뻔한 제2회 국창 임방울 전승 전국학생 판소리 경연대회를 개최해 오늘날 임방울 국악제의 초석을 세웠다. 스승들의 업적을 기리는 사업에도 적극 나서    구례군에 건의해 국비와 시비에 자신의 사비를 보태 국창 송만갑선생 동상건립,         박봉술선생 묘지 이장과 공적비 건립, 송만갑선생 재조명 학술발표회 개최   송만갑선생 70주기, 박봉술선생 20주기 추모공연 등에 앞장섬으로서 국악인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주요 수상으로는 △화관문화훈장 (화관문화훈장 제183호)△대통령상 (전주대사습 명창부 장원)△눌원문화상 등이 있다.

전통 대상 이애주 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 예능 보유자(승무)·서울대학교 교수·한국전통춤회 대표·동방문화진흥회 부회장·서울대 민주화 교수협의회 회장 역임. 김보남 한영숙  이근성 이용우 조한춘 박송암 박상화 선생 사사

87년 민주화 운동의 현장마다 불을 붙였던 춤꾼. 서울대 교수이면서 맨발로 마당춤을 마다 않았던 민주화 운동의 상징. 1984년에는 우리 옛춤의 보편성을 오늘의 춤으로 발전시키는 작업을 위해 '춤패 신'을 창단해 〈나눔 굿〉·〈도라지꽃〉을 공연.1987년 6월 민주화 항쟁 때 〈바람맞이>(연우소극장) 공연으로써 민주화와 인간화에 대한 의지를 춤으로 내보였다.  이후 이 공연은 전국의 여러 집회에서 공연되었다. 특히 이 교수는 이한열 열사의 서울시청 광장 노제에서 그의 넋을 달래는 춤을 추며 민주화 투쟁 때 산화한 열사들의 정신을 기리며 아픔과 고통의 역사를 상생평화의 미래로 승화시키자는 메시지를 전했다. 그 외 정신대, 4.3항쟁 희생자 등 민중의 한을 온몸으로 받아 풀어내는 작업을 해왔다.
이 교수의 춤은 ‘학예굿’으로 명명되는데 학술과 굿이 결합된 형태의 학예굿은 문자와 구술 언어를 넘어 몸짓과 소리의 형상과 육감으로 예술과 문화 세계를 밝히는 학술행위로 평가받고 있다. 아시아, 미국, 유럽 등 30여 나라에서 수백 회의 공연을 하며 한국의 전통춤을 세계에 알렸다.
학위 논문「고구려춤의 상징체계」,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저 서 『강의실밖에서 배우는 민속학』,「경기도당굿, 서울굿, 동해안별신굿」등 수 권, 학술지 논문 및 학회발표논문 100여편에 달한다. 『진혼의 춤』, 광복50주년 윤동주시인 50주기 추모, 윤동주시인 추모위령제, 후쿠오카 형무소 앞 백도서 공원 공연,『이애주 춤-승무 觀』,<도당굿 樂, 예의 춤, 지전춤(남도, 동해안), 태평무, 태평춤, 본살풀이, 승무>, 등의 개인발표회 50여회, 협연 및 그 외 공연 수 백회.  1994. 3.  <이애주 춤이야기 한판>을 시작으로 올 해 11월 「학예굿, 한국춤의 생성론과 이애주의 춤세계 」,까지 수 백회에 이르는 강연활동, 학회 및 심포지엄 개최  수십회, 기타 방송 신문 잡지 등을 통해 우리춤 보급과 발전을 위한 칼럼기고,인터뷰 등 활발하게 해 왔다.
주요 수상△‘신인예술상’ 최우수상 수상△문화공보부중요무형문화재 전수평가 발표회 ‘1등’수상△ 만해대상 수상(예술부문)

현대 대상 주명덕 사진작가·대구사진비엔날레 조직위원회 위원장(2005)/전 민족사진가협회 회장·중앙일보 기자

한국 사진계의 거장이자 한국현대사진 시작의 물꼬를 튼 다큐멘터리 1세대 사진 작가로 불린다.  중고등학교 시절, 산악 사진가 김근원 선생을 만나 사진에 눈을 떴다. 61년 경희대 사학과를 수료하고 66년 서울 중앙공보관 화랑에서 첫 개인전 ‘포토에세이-홀트씨 고아원’을 열어 6·25가 낳은 혼혈고아들에 국내 최초로 주목했다. 이후 소외된 계층의 삶을 카메라에 담기 시작해 사진의 사회적 기록 가능성을 열었다. 
 그의 ‘한국의 가족’ 시리즈는 한국현대사진의 변화가 시작되었던 1970년대에 제작된 현대적 의미에서의 첫 기록사진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이 시리즈는 사회인식을 표출하는 것은 물론, 보는 이의 감동을 끌어내는 주제작업이기도 하다. 지난해 서울시립미술관에 작품 76점을 기증하고 이 달에 시립미술관 분관 남서울미술관에서  ‘주명덕_시작과 시작’전을 열었다. 「1966 섞여진 이름들」, 「1968 용주골」, 「1971 운천」, 「1963~68 서울」 그리고 「2011~2012 사진 속의 추상」 등 총 5개의 파트로 작가가 천착해온 사람과 일상의 실제를 담아낸 작업을 선보였다.
'특히1966년경 제작된 포토 에세이 시리즈 「섞여진 이름들」은 외국인 참전 군인들과 한국인 여성들 사이에서 태어나고 버려진 혼혈고아들의 모습을 담은 작품을 통해 작가는 사진의 사실성과 기록성을 바탕으로 6.25 전후 15년 동안 소외된 채 그들만의 전쟁을 계속하고 있는 혼혈 고아들의 문제를 당시 사회가 함께 고민하고 해결해야 하는 공동의 문제로 제시했다.이 후 이어지는 「1968 용주골」, 「1971 운천」에서도 작가는 전후(戰後) 분단국으로 남겨진 우리의 현실에서 기인한 미군 주둔 지역을 찾아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혼혈고아 문제의 잠재적 가능성을 작품 안에 담아내며 현실참여적인 발언을 이어나왔다. 수상:2010년 파라다이스상 문화예술부문

메세나 대상 유항수 석주문화재단 후원회장

유항수 회장은 1959년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졸업후 중소기업인 (주)우진물산 을 경영하면서 미술계 발전을 위해 자신의 사비를 털어 젊은 작가들의 후원을 시작했다.
1969년~1999년까지 무려 30년간 사단법인 구상전 후원회 회장을 역임하면서 해마다 구상전이 열릴 수 있도록 묵묵히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로인해 우리나라 구상미술 작가들의 역량을 키우는데 크나큰 공헌을 해왔다.
지난 2002년부터 2012년 현재까지 10년이 넘는 시간을  석주 문화재단 후원회 회장으로 서 작가들을 작품활동을 돠왔다.. 석주미술상은 홍익대 미대 1회 입학생이자 한국현대조각 여성의선구자인 조각가인 윤영자 현 이사장이 1989년 목원대를 정년퇴임하며 받은 퇴직금 등을 털어 석주문화재단을 설립제정한 상으로서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작가들만을 위한 상이다.

글로벌 대상 이수경 도쿄가쿠게이대학 교수
현재 일본 교원양성대학인 국립대학법인 도쿄가쿠게이대학교수(역사사회학)을 가르치고 있다.
리츠메이칸 대학교 대학원서 석박사 후 역사사회학 전공으로 박사 취득(사회학 박사) 후 도쿄가쿠게이대학교에서, 한국 사회, 문학, 교육은 물론, 한일 근대사의 수업에도 힘을 쏟으며 한류 문화의 장점과 일본 사회의 특성을 논하는 논객으로 활동하고 있다. 올  8월에는 대학 내에 처음으로 한국학 연구소를 설립해 일본을 비롯한 외국대학과 한국 대학을 오가며 한국 문화 및 한국 사회 교육에 대한 포괄적인 한국 알리기를 학술적, 학제간 협력활동을 펼치고 있다. 학교내 태권도 동아리 고문교수를 맡아 한국의 태권도정신을 심어주기 위해 학생들을 이끌고 와 한국체대에서 교육시켰다. 이에 앞서 조선 총독부 초대 총독의 땅인 야마구치 현립대학교 첫 한국인 교수로 부임. 2005년 3월까지 한국 사회 문화론은 물론, 일본 학생들을 매년 몇 십명씩 이끌고 한국 문화 안내 연수를 담당했다.
야마구치대 재직시에는 야마구치 및 히로시마 로타리 클럽에서의 한국 문화 강연 수 차례, 히로시마 JR각 역장, 야마구치현 시민 강좌, 야마구치의 초중고등학교 대학교, 야마구치 NHK 방송,야마구치 라디오 방송, 야마구치 EU협회 강연 등을 통해 적극적인 한국 문화, 교육, 전통, 음악, 음식, 의상, 역사 , 스포츠, 한류 문화 등을 몇 십회에 걸쳐 소개해왔다. 이외에도 일본내 여러 대학 강좌를 통해 일본인 뿐만아니라 유럽 등의 대학생들에게도 한류의 다양성은 물론, 장점과 더불어 한반도의 역사와 문화, 사회, 교육사정, 유교적 특징과 스포츠 문화, 한국어 배우기와 인삿말, 한류 문화 알리기를 해 오고 있다.
특히 일본 근대사 속의 재일 동포와 1923년에 일어난 관동대진재 속에 희생된 동포들에 대한 연구 발표를 비롯 현재까지 약 30권의 책, 약 60 여편의 논문 등을 집필했다. 그 중에서 7-80% 이상이 한국 문화 사회 역사 전통 및 한국 교육 사정을 알리고 국가 발전 동력이 된 장점과 향후의 방안에 대해 집필했으며, 재일동포의 활약 및 한국 문학의 소개, 한류 문화의 분석 등을 행한 책을 꾸준히 발표하며 한국문화와 역사 알리기에 혼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 2005년에는 외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제9회 일본 여성문화상을 수상했다.

문화경영 대상 송상수 낙안읍성민속보존회장

송상수 낙안읍성민속보존회장은 1983년 6월3일자로 낙안읍성이 국가 사적 제302호로 지정되어 복원되기 시작하면서 우리 선조들이 지켜왔던 우리 고장의 전통문화를 발굴하고 보존하는 일과 옛 생활용품을 수집하는 일에 힘을 쏟았다. 이후 낙안읍성 민속마을 보존회를 열어서 홍보위원장직을 맏아 낙안읍성을 알리는 일에 힘써왔다. 지금 현재는 (사)낙안읍성보존회를 열어 회장으로서 낙안읍성을 지키며 살고 있는 토박이다.
주요 활동사항은 지역에 전해져오던 대중놀이인 낙안읍성 큰줄달이기를 복원하고 관원상제중 하나인 전통혼례를 옛 모습 그대로 복원하여 전통혼례를 계속 이어왔다 낙안읍성을 관광농촌으로 만들어 보겠다는 의지속에 본인 사비로 충민공 임경업 장군 탄신 400주년을 기념하는 제1회 낙안읍성 “민속문화축제” 를 기획 추진하고 올해로 19회를 맞았으며 2회에는 전국 10대 축제로 부각되는 계기를 만들었다 낙안읍성의 3.1절 기념행사가 오래전부터 단절되었던 것을 1995년부터 본인 사비로 기념행사를 5년간 계속 이어오다가 그 이후로 순천시 주최로 3.1절 기념행사가 계속 이어져 오도록 했다.
2005년부터 서울 인사동에 낙안읍성 홍보관을 만들어 순천지역을 홍보하고 있으며 매주 상경해 남인사 마당에서 옛 모습 그대로 전통떡매치기 체험 행사를 재연하고 우리나라를 찾는 외국인에게도 한국문화를 알릴 수 있는 자리를 지금까지 지켜오고 있습니다.
지금껏 우리곁에서 사라져버린 역사를 되찾아 낙안읍성을 역사적인 마을로 만들고 후손들에게 부끄럼 없이 대물림 할 수 있도록 자부심을 가지고 노력해 오고 있다.

 

▲최우수상 수상자 프로필 및 선정 이유

문화재 부문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시민운동가

현재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 소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황평우 소장은 외규장각 도서 반환, 정릉앞 재건축 반대, 숭례문 화재 대안 제시 등에 앞장서며 우리 문화의 보존과 연구에 열정을 쏟고 있는 사람이다.
2000년부터 문화재행정모니터로 참여하며 전국 문화재의 훼손, 보존 상태를 알게 된 그는 2002년 문화재 반환 촉진 및 불법거래 방지 국제전문가회의 한국 문화유산 NGO대표로 참석하면서 본격적으로 문화재 반환과 보존에 앞장서기 시작한다.
2004년 근대문화재 보존운동과 문화재보호각 철거운동을 펼쳤고 2006년에는 프랑스에 있는 우리 문화재를 반환하자는 취지로 만든 MBC TV '느낌표 - 위대한 유산 74434‘를 진행하면서 시청자들에게 문화 유산의 소중한 가치를 알림과 동시에 약탈문화재를 환수하자는 의식을 고취시켰다.
2008년 숭례문 화재 때는 복구 자문위원으로 활동했으며 4대강 사업 ‘문화재 지표조사’의 허구성을 지적했고 정릉앞 재건축 반대, 송현동 7성급 호텔 건립 반대 운동 등 우리 문화재가 훼손될 위기가 있는 곳에서 문화재 보존의 불길을 당겼다. 그의 노력으로 지난 8월 30일에는 육의전박물관이 개관해 문화재 보존과 개발의 상생에 대한 큰 해법을 제공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는 지금도 문화재 보존 운동과 함께 프랑스 정부를 상대로 한 외규장각 반환 소송도 진행 중이다.

미술 부문 이정재 서양화가·남서울대 교수

이정재 작가는 2009부터 독도를 소재로 하여 첫 개인전을 연 후 독도 단독 작품으로만 14번의 개인전을 열었다. 특히 지난해에는 『경술국치100년 그 극복을 위한 독도 100호 100점전』을 열어 국내외의 관심을 모았고 독일, 프랑스, 미국 등지에서 독도가 한국영토임을 알리는 독도 개인전시회를 열어 독도 사랑을 전 국민은 물론 전 세계인들에게 알리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는 2007년부터 21C국제미술문화교류협회를 이끌면서 서울, 아제르바이잔, 미국, 일본, 터키 등에서 7년 동안 14회의 국제교류기획전을 개최했으며. 45회의 개인전과 10회의 부스전, 그리고 국내외 단체전에 참여해 왕성하게 활동해왔다.
또한 남서울대학교에서 15년간 후학을 양성하고 있으며 대한민국 미술대전 심사위원 등을 역임하기도 했다.

문화경영 부문 조매정 거창국제연극제 사무총장
1983년 7월 당시 세무서 직원이었던 조매정 거창국제연극제 사무총장은  이종일 거창국제연극제 집행위원장과 10여명의 거창지역 교사들과 함께 극단 ‘입체’를 창단한다. 이후 1989년 ‘거창연극제’를 시작하고 이 연극제는 차차 발전하여 마침내 국내외 극단의 우수 연극을 한데 모은 세계적인 야외연극축제로 발전하게 된다.
거창국제연극제는 지역축제와 예술축제의 성공적인 결합을 일궈낸 국내공연예술계 축제 중 하나로, 올해는 총 관객 20만5,920명을 동원하며 매회 매진사례를 기록하는 등 해마다 큰 폭의 관객확대를 이뤄내면서 다양한 대중 관객들과 함께 하는 공연예술로 업그레이드됐다.
조매정 사무총장은 극단 ‘입체’와 ‘거창국제연극제’를 함께 창립한 주역이면서 이를 통해 거창실버연극제, 거창전국대학연극제, 청소년 연극제인 거창겨울연극제 등 사계절 연극 프로그램을 만들어 문화불모지였던 거창을 일약 연극예술의 메카로 만들었고 연극축제의 관광자원화를 이끌어낸 인물이기도 하다.
또한 2002년부터 젊은 연극인들의 자유분방한 실험을 지원하기 위해 총 2,400만원의 상금이 수여되는 국내 경연참가작(KIFT OFF)을 마련해 차세대 한국연극을 이끌어갈 주자들을 만들어내고 있으며 세계초연 제작을 위한 희곡응모, 국내외 순회공연 배우오디션, 연극아카데미, 초청강연회, 학술세미나, 후배 배우들의 야외연극 레퍼토리 제작시스템 지원 등으로 세계적인 야외연극을 개발하는데 그 몫을 다하고 있다.

국악 부문 왕기철 판소리명창·국립창극단 부수석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심청가’이수자인 왕기철 명창은 16세에 판소리에 입문, 향사 박귀희 선생에게 가야금 병창을 공부했고, 1978년 국악예술고등학교(현 국립전통예고)에 입학해 가야금과 판소리를 전공했으며 무형문화재 제5호 정권진 선생에게 판소리 심청가를 사사받았다.
완판 창극 ‘춘향전’, ‘심청전’, ‘흥보전’, ‘수궁가’, ‘적벽가’ 등 20여 작품에 주연으로 활동했고 금년 국립창극단 정기공연 ‘장화홍련’에서는 도창 역을 맡았다. 2001년 전주대사습 판소리 명창부 장원(대통령상), 2002년 kbs 국악대상(판소리 부문)을 받았으며 전주 MBC '왕기철 명창의 얼쑤! 우리가락‘의 진행을 맡은 적도 있다. 올해에는 전주MBC가 주최한 대한민국 최초 판소리 명창 서바이벌 ‘광대전’에서 우승하는 등 최고의 기량을 선보이며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1985년 서울국악예술고등학교 판소리 전임교사로 13년간 제자들을 양성했고 1999년 국립창극단에 입단해 현재 국립창극단 부수석으로 있다. 국립창극단의 주역으로 대중에게 전통예술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으며 실기와 이론을 겸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무용 부문 김종덕 창작춤집단 木 예술감독·한국예술종합학교 겸임교수
무용가 김종덕은  90년대 초반 프리랜서 창작 무용가의 길을 걸은 이래 작가 정신이 돋보인 춤을 추구해 왔으며, 한국춤의 쇄신된 모습을 완성도 높게 제시했다고 평가받고 있는 사람이다.
서울시립무용단을 나와 작가의 길을 선택한 그는 ‘사계’, ‘아빠의 청춘’, ‘위망매영재가(爲亡妹營齊歌)’ 등의 다양한 창작 한국춤을 선보이며 한국의 전통적 춤결을 현대적 감각으로 짜임새있게 표현해 섬세한 질감의 현대 한국춤을 만들어냈다. 지난 11월 19일에 종료된 제 33회 서울무용제에서 김종덕씨는 직접 안무를 담당하고 주역 남자무용수로 출연한 ‘제망매가’를 선보이며 중견 무용수의 힘을 보여줬다. 이외에도 2004년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 2008년 디자인올림픽 개막공연, 2010년 국군의 날 기념공연 등 각종 행사에서 안무 및 연출을 맡기도 했다. 
김종덕씨는 현재 ‘김종덕창작춤집단 목(木)’의 대표로 있으면서 한국예술종합학교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젊은 춤꾼들을 발굴하고 기용하면서 물심양면으로 후원하는 등 후진 양성에도 정성을 기울이고 있다.
 △대한민국 무용대상 시상식 -솔로 & 듀엣 부문 Best 5- 수상△제1회 전국차세대 안무가전 [묘비명] 최우수상 △ 제11회 KBS무용콩쿨 창작부문 은상 △한국문화예술진흥원 장학생

 

▲젊은예술가상 수상자 프로필 및 선정 이유

연극 부문 권은아 극단성좌 대표·연출가
극단 성좌의 대표인 권은아씨는 故 권오일 연출가의 차녀로 이윤택, 황인뢰 감독 밑에서 7년간 연출 공부를 했고 아버지의 뒤를 이어 극단 성좌를 이끌여 지속적인 공연활동을 펼쳤다.
2001년 퇴계 이황 선생 탄신 500주년 기념공연 <퇴계선생 상소문>의 연출을 시작으로 <달의 뒤쪽>(2004),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2008), <블랙코미디> 등을 연출했다. 2011년에 연출한 <느룹나무 그늘의 욕망>은 세계국립극장페스티벌 국내초청작에 선정됐고 올해 연출한 <허풍>은 거창국제연극제에 초청받았다. 
권은아씨는 특히 연극의 저변확대를 위해 국내 대기업들과 연계해 각 기업의 특성에 맞는 감성교육공연을 진행하면서 연극인들의 일자리 창출과 다양한 수요를 생산해냈다. 뿐만 아니라 문화소외지역인 농어촌과 군부대 등에서 공연을 펼치면서 연극의 저변을 넓히는 역할을 계속하고 있다.

미술 부문 이진준 미디어설치작가

이진준은 미디어, 조각, 드로잉 등 시각예술 장르를 넘나들며 다양한 작업을 하고 있는 작가다. 서울대 조소과 출신 작가이자 서울대 경영학과에서 광고를 공부한 독특한 이력과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그는 미디어와 도시 그리고 자연 생태계에 관한 사회 시스템의 권력 작용에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이를 다양한 매체를 통해 반영해 문제의식을 더욱 심도있게 드러내고 있다.
2008년 국립현대미술관 젊은 모색전에 참여했고 서울 상암동 디지털미디어시티(DMC)랜드마크가 될 조형물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았다. 올해는 서울시립미술관 기획전 SEMA BLUE 의 12명 작가 중 한 명으로 선정되어 작품을 전시했고 인도한국문화원초대전을 비롯해 국내외 대표적인 미술관 기획전 등에 작품을 출품했다.
장르를 굳이 구분하자면 영상을 바탕으로 한 설치작품을 위주로 작업하는 이진준은 우리 삶의 다양한 현상에 깔려있는 역사적, 사회적 함의를 관람자들에게 환기시키고자하며 미디어 아트를 바탕으로 공공의 공간에서 관람객과 소통가능성을 실험하는 연출가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는 매체의 형식보다 개념을 중시하는 태도를 가지고 있으며 그를 통해 드러나는 메시지를 관람객과 같이 나누려한다. 그 점이 최근 미술계가 그를 주목하는 이유다.

무용 부문 이인수 현대무용가·영남대 교책교수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실기과의 예술사와 전문사를 졸업하였고 2012년2월 영남대학교 교책교수로 임용좼다. 네델란드의 Emio greco&Pc무용단에서 활동했으며 현재 LDP현대 무용단의 정단원 및 EDx2현대무용단의 안무가이자 대표로 활동 중이다.
안무작으로는 <Moredn feeling>,<벽> 등이 있으며 독일 ‘no ballet' 콩쿠르 안무가상, Bejing international ballet & choregraphy competition에서 1위를 수상했다. 미국 폴란드 스페인 독일 네델란드 쿠바 멕시코 영국 대만 말레이시아 등 15개국의 나라에서 초청 공연을 해 한국 현대무용계에 큰 반향을 가져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