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리뷰] 현대미술가 아니시 카푸어의 ‘강남스타일’… 보이지 않는 저항
[전시리뷰] 현대미술가 아니시 카푸어의 ‘강남스타일’… 보이지 않는 저항
  • 박희진 객원기자(과천시설관리공단)
  • 승인 2012.12.07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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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희진 객원기자 / 과천시설관리공단
서울 한남동 삼성미술관 리움에서 영국의 세계적인 현대미술가 아니시 카푸어(58,Anish Kapoor)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아니시 카푸어는 인도 출신의 영국 조각가로 올해 런던올림픽의 기념 조형물 ‘궤도(Orbit)’를 선보이면서 세계적인 예술가로 인지도를 확대하였고 주목할 만한 영국의 대표 작가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이번 전시는 카푸어의 아시아 최초이자 국내 첫 대규모 전시답게 그의 작품세계를 엿볼 수 있는 거대규모의 주요작품 18점이 전시되고 있다. 현대미술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는 ‘반드시 봐야 할 전시’로, 염원하던 카푸어의 거대 작품을 체험(?)해 볼 수 있는 반가움으로 리움 전시를 꼽고 있다.

카푸어의 작품세계는 기본적으로 조각가의 기질이 발휘된 맥락에서 온전히 조각으로만 동시대 미술을 포용하지만은 않는다. 가장 큰 매력은 회화와 건축의 성격이 짙다는 점. 그가 영감을 얻는 작업에서도 동서양의 사상과 종교를 기반으로 인간 자체를 종교적인 존재로 해석하기 때문에 시공을 넘어선 보편적이고 원천적인 문제로 접근하고 있다.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닌, 겉으로 나타나는 것이 모든 것을 말해주는 것은 아니다”

기자들과 함께하는 자리에서 그가 작품에 대해 풀어낸 이야기이다. 거대한 그의 작품은 인간의 본능을 자극하며 끌어당기는 힘을 발휘하고 그 속에서는 작가가 의도적으로 설치해 놓은 반사되는 소재들에 시선을 뺏앗기게 된다. 거울이나 금속에 비춰지는 혼돈이나 아찔함이 바로 그 것이다. 카푸어가 말하는 ‘눈에 보이는 작품 이면에 자리 잡은 보이지 않는 공간에 주목’하는 방법이 그의 작품에서 온전히 체험 할 수 있는 것이다.
   
오늘 필자가 말하고 싶은 것은 카푸어의 작품도, 리움의 전시도 아니다. 카푸어가 최근에 예술계 거물들과 말 춤판을 벌인 데에 작가의 의도를 평하려 한다. 최초, 최고, 최다 기록에 전 세계가 싸이의 ‘강남스타일’에 주목하고, 최근 한 언론사에서는 싸이가 달성한 기록들을 정리해 보도하기도 했었다. 싸이 열풍이 세계를 뒤흔들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현대미술가 카푸어가 ‘강남스타일’ 패러디 동영상(http://www.youtube.com/watch?v=tcjFzmWLEdQ))을 만든 진짜이유는 무엇일까. 표면적으로는 중국 반체제 예술가 아이웨이웨이(艾未未)를 지지하기 위함이라 했으나 여느 예술가가 자신의 예술세계를 무시하고 작업을 할 수 있을까. 필자는 ‘강남스타일’ 동영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카푸어에게 맞춰보기로 했다. 그가 작품을 통해 내세우는 ‘보이지 않는 것에 주목’ 하기로 한 것이다.

카푸어의 ‘강남스타일’은 여느 패러디 동영상과 크게 다를 바 없이 한국어 가사 그대로를 사용했다. 그래서인지 조금은 어설프고 약간은 불편함이 있다. 아이웨이웨이 지지를 표하는 텍스트를 배경으로 수갑 찬 손을 추켜세워 말 춤을 춘다. ‘갈 때까지 가볼까’라는 한국어 노래가사에 맞춰 섹시레이디를 대역한 발레리나가 주저앉고, 고개 숙인 예술가들 가운데 카푸어가 ‘표현의 자유’를 상징하는 팻말을 들고 있다. 보여 지는 것은 여기까지이다.

이제 보이지 않는 것에 주목해보자. ‘강남스타일’에서 한국사회에서 속물인 ‘강남’의 이미지와 동영상에서 보이는 어설픔과 촌스러움, 우스꽝스러움을 자신의 의도대로 잘 이용했다. 그러나 동영상의 이미지만이 다가 아니다. 전 세계인들이 즐겨 부르고 따라서 춤을 출 수 있을 만큼 트렌드를 앞서간 공 들여진 음악예술임을 인지했을 것이다. 이것이 그가 말하는 ‘보이지 않는 것’을 담아내는 카푸어의 의도라고 짐작한다. 수위조절도 잘했다. 자칫하면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비판이나 권력에 저항하는 풍자로 정치적, 사회적 민감한 소재로 해석될 수 있었으나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정치적인 해석보다는 ‘자유분방한 강남’의 이미지가 더욱 강하게 남는다.

매우 흥미로운 작가이다. 전시실에 그의 작품을 보고 있자니 미술사 행보를 되짚어 보고 싶은 궁금증이 생긴다.그의 작품의도가 심오하지만 무겁게만 느껴지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필자는 언제나 대중들과 소통이 가능한 작품과 전시를 기대한다. 이 점에서 그는 이 시대를 대표하는 기대주이다. 단순히 트렌드를 읽어내는 것 이상으로 그것을 적절히 이용할 줄 아는 현명한 예술가이기에 주목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