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문화 콘텐츠 체험 여행(5) - 창조문화 대통령을 바란다
나의 문화 콘텐츠 체험 여행(5) - 창조문화 대통령을 바란다
  • 서연호 고려대명예교수/한국문화관광연구원 이사장
  • 승인 2012.12.20 14: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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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호 교수

2012년 12월 20일 아침에 제18대 대통령 박근혜 당선자에게 축하의 인사를 보낸다.

유권자의 한 사람으로서, 창조문화의 대통령을 바란다. 대학과 문화예술계에 종사해 온 필자로서는, 선거운동기간에 여당과 야당의 두 후보자가 문화분야에 대하여 ‘단 한 마디의 언급’도 없었던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사정이 그럴 수밖에 없었던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으리라는 생각도 든다.

문화분야 참모들이 선거공약을 제안했지만 보다 화급한 공약들이 쇄도하다보니 우선 순위에서 뒤로 밀렸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TV토론위원회에서 제안한 항목에 따라 숨 가쁘게 자신들의 의견을 개진하다보니 문화에 대한 언급 자체가 불가능했을 가능성이 있다.

또한 창조경제론을 주창한 당선자이고보니, 넓은 의미에서 문화도 창조의 영역에 든다는 일념으로 별도의 언급을 자제한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이유야 어디에 있었든, 필자만이 아니라 문화예술계 사람들의 의견을 들어보면, 두 후보자의 선거공약에 대한 불만의 수위가 높았던 점을 지나칠 수 없다. 문화선진국들을 순방하며 필자가 들은 몇 가지 사례를 여기서 소개해 두고 싶다. 대통령이나 국무총리, 국회의원이 되려는 사람들은 평소에 가족을 동반하고 극장이나 음악회를 자주 찾는다.

그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시민생활과 국가적인 문제에 대한 대화를 나눈다. 시민과 만날 수 있는 가장 좋은 장소이기 때문이다. 모든 문화시설을 보존하거나 보수 및 건설하는 일에는 언제나 앞장 서서 참여한다. 여유가 있다면 자신의 출자로 시설을 만들고 그곳에 이름을 남기는 것을 명예로 생각한다.

외출중 국내외 관광객을 만나면 어디서든 서비스의 질에 대한 의견을 듣고 외국의 발전에 대하여도 깊은 관심으로 대화한다. 글을 쓰거나 연설을 할 기회에는 최근에 읽은 작품이나 공연을 참신하게 언급하며, 자신이 꿈꾸는 문화예술의 비전을 설득력 있게 밝힌다. 참모나 비서들과 회의를 시작할 때는, 먼저 문화나 예술에 관한 화두를 펼치면서 유연하고 즐거운 사고를 이끌어낸다.

다시 부탁하지만, 박근혜 당선자는 창조문화의 대통령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문화와 예술은 본래 창조를 본질로 한다. 창조가 곧 문화와 예술인 것이다. 그러나 뒤를 돌아보면, 현재 우리의 방향이 창조와는 거리가 먼 곳으로 치닫고 있고, 우리의 행동은 저질이며, 우리의 사고는 매우 병들었다는 사실을 성찰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현실은 문화가 아니라 문화를 가장한 반(反)문화이고 문화를 위장한 비(非)문화 사회인 것이다. 문화와 예술에서 썩은 냄새가 진동하고 구더기가 들끓고 있는 사회이다. 사이비 문화인, 지도자, 가짜 예술인들이 판치는 세상이다. 이제 그들은 문화권력, 문화업자, 문화투쟁가, 문화기관의 유착자가 되어 우리 사회를 멋대로 주름잡고 다닌다. 정말 문화와 예술을 하고 싶은 사람들이 설 곳은 이땅에 별로 남아 있지 않다.

대통령이 먼저 창조문화의 실천적 선도자가 되고서야 우리 문화예술이 진정으로 올바른 방향을 찾을 수 있다. ‘문화와 예술은 당신네들이 잘 알아서 하라’는 철학은 원론적으로 옳지만, 우리 문화예술의 현실은 그렇게 태평성대가 아니라는 말이다. 외형적으로 우리는 ‘문화의 세기’, 이른바 ‘한류의 세계화 시대’를 열고 있지만, 내면적으로 우리는 문화의 위기를 방치하며 자위에 급급하고 있는 측면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지난날 문화를 운운하며 과장했던 역대 지도자들이 결국 엄청난 비리와 부정에 얼룩졌던 쓰라린 경험을 우리 국민들은 가슴에 안고 있음을 투시해야 한다. 문화를 모독한 사람들의 인생 말로와 비극의 무덤을 우리는 바라보고 있지 않는가.

새 정부에서 쇄신해야 할 문화정책, 새로 내세워야 할 문화정책은 적지 않게 쌓여 있다. 새누리당이 정부를 계승했으니까 이전 그대로 해 나가면 되지 않는가, 적극적으로 선거를 도와 주었으니 주변의 문화인들을 기용하면 그만이 아닌가, 현상을 타파하려다가 기존의 문화예술 체계에 타격을 입히지나 않는가 하는 등, 근심과 염려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필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은 분명 개혁과 전환의 시대이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낡고 비뚤어진 체계를 쇄신할 수 있는 기회는 오직 현재뿐임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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