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칼럼] 부다와 페스트의 아름다운 앙상블 부다페스트
[여행칼럼] 부다와 페스트의 아름다운 앙상블 부다페스트
  • 정희섭 글로벌문화평론가
  • 승인 2012.12.27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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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희섭 글로벌문화평론가/숭실대 글로벌통상학과 겸임교수
부다 지구 언덕 위에 있는 어부의 요새에서 아름다운 도나우 강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반나절이 후딱 지나가 버린다. 눈앞에 펼쳐지는 장관을 뒤로한 채 그 곳을 떠나기 싫어지기 때문이다. 화창한 봄날이든 눈이 오는 겨울이든 상관이 없다. 강렬한 햇빛을 반사하는 도나우 강, 눈꽃이 휘날리는 도나우 강 모두를 유럽 최고의 광경이라 해도 반대할 사람이 없을 정도니까. 강 건너편 평지인 페스트 지구에 웅장한 모습으로 서있는 국회의사당이 보이고, 두 지구를 연결하는 세체니 다리가 수려함을 뽐낸다. 이 다리가 도나우 강의 양쪽을 연결하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부다페스트라는 도시를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다리가 건설되기 전에 두 지구는 부다라는 도시와 페스트라는 도시로 존재했을 뿐 전혀 왕래가 없었다고 한다. 흔히 말하는 부촌이었던 부다 지구, 상대적으로 낙후되었던 페스트 지구는 세체니 다리를 통해 아름다운 앙상블을 만들어 낸 것이다. 하나의 다리가 한 도시의 운명을 좌우할 줄은 그 누구도 몰랐을 것이다. 다리를 건너는 사람들이 만들어 낸 작은 대화는 소통의 시작이었고 소통은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낸 것이다.

▲ 세체니 다리

페스트 지구에서 올려다보는 부다 왕궁의 자태와 부다 지구에서 굽어보는 국회의사당 건물은 마치 피아노의 낮은 음과 바이올린의 높은 음이 멋지게 어우러진 것처럼 잘 조화를 이룬다. 하나 더하기 하나가 둘이 아닌 열 개의 의미를 만들어 내는 것 같은 모습. 국회의사당이 헝가리 건국 천 년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페스트의 가슴이라면 부다 왕궁은 끊임없는 외세의 침략과 전쟁으로 파괴되기를 반복한 부다의 아픔이라고 할 수 있다. 부다라는 아픔을 페스트라는 가슴으로 느끼는 도시가 부다페스트이기도 하다. 실패 없는 성공이 감동이 덜한 것처럼 아픔이 없는 도시는 왠지 그 의미가 크게 반감되는 것 같다. 부다페스트의 아픔은 그 자체가 역사가 되어 후세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고 있다.

▲ 부다페스트 국회의사당

헝가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이었던 마차시의 이름을 딴 마차시 교회에서 겔레르트 언덕까지 걷고 나면 사바차그 철교가 남성적인 매력을 물씬 풍기며 나타난다. 약간은 지친 발로 철교를 건너 수많은 상점이 꼬리를 무는 페스트 지구로 들어선다. 오랫동안 걷고 난 후에 노천카페에서 마시는 진한 에스프레소 커피 한잔이 마치 등산을 마치고 내려와서 마시는 막걸리의 느낌이 나는 것은 왜일까. 커피를 마시면서 막걸리를 떠올리는 생뚱맞은 생각은 헝가리를 건국한 마자르 족이 동방에서 이동한 기마 민족이기 때문이라는 아전인수 해석으로 나를 이끈다. 실제로 헝가리를 대표하는 음식 중 하나인 굴라쉬(Gulash) 수프의 맛은 육개장과 비슷한 것이어서 한국 음식에 대한 향수를 달래기에 충분했다. 굴라쉬 수프를 맥주 안주 삼아 홀짝 홀짝 떠먹던 기억이 새롭다. 중앙아시아를 호령하던 유목민들이 부다와 페스트에 정착했을 당시의 모습을 상상하는 막간의 망중한만으로도 나는 행복했다.

▲ 마차시 교회

부다페스트는 화합과 소통의 의미를 다시 일깨워주었다.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의 화합, 구시가와 신시가의 소통은 도나우 강의 진주라는 별칭을 부다페스트에게 안겨주었으며, 이 도나우 강변의 아름다운 진주를 찾아 수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오고 간다. 진정한 소통의 의미를 알고 싶은 사람에게 부다페스트 여행을 권한다. 소통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모습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소통에 실패한 가정, 회사, 국가의 미래를 상상해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단절과 반목의 이름에서 상생의 모습으로 다시 탄생한 부다페스트를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