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연재] 한민족의 색채의식⑩
[특별기고-연재] 한민족의 색채의식⑩
  • 일랑 이종상 화백/대한민국예술원회원
  • 승인 2012.12.27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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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색은 곧 한국 색,오방(五方)...오간색(五間色) 종합적 색채관 갖춰

(지난호에 이어)

▲ 일랑 이종상 화백/대한민국예술원회원

(4) 하양(白色系)
전국시대부터 풍화된 조개와 굴껍질로 만들어 썼던 호분(胡粉:蛤粉)과 아연을 산화시켜 만든 아연화(亞鉛華)와 탄산칼슘 성분의 방해말(方解末)과 도자기에 쓰이는 백토(白土) 등이 있다.

의복에서는 주로 옷감의 바탕재를 소색(素色)이라 하여 순도에 관계없이 흰 옷으로 간주했다. 옛날에는 자연광에 표백했기 때문에 순도가 높지 못하고 약간의 바탕색을 유지했으므로 소지색, 미색, 상아색, 유백색, 설백색(雲白色) 등으로 불려졌음을 알 수 있다.

(5) 까망(黑色系)

탄수화물로서 카본의 분말을 채취할 때 잘 정제된 것을 향연이라 하고, 조악한 것을 신연이라 하며 연료의 종류에 따라 유연묵(油煙墨)과 송연묵(松烟墨)으로 나눈다. 그 밖에도 채도는 약간 떨어지지만 감람석(橄欖石), 흑요석(黑曜石), 사문석(蛇紋石) 등을 가루내어 수비한다.
흑색과 회색 계열의 염재로 쪽물에서 흑색과 회색을, 갈매나무 껍질이나 가래나무의 열매에서 회색을, 오배자(五倍子)에서 현색(玄色)을, 밤껍질과 연자각에서 회색을 얻는다. 노목과 양매, 소나무, 대황, 석류피에서 회색을, 흑색 백약(百藥)에서 청조색을, 진피(奏皮)에서 청조색을 낸다. 진달래 가지와 뿌리, 물푸레나무를 태운 숯에서 검정색을 얻고 솔나무 숯검정 등에서 흑색을 얻는다.

7. 서울의 색 

이제 서울에서 2002 월드컵 경기가 열리고 때맞추어 그토록 열망하던 서울시립미술관의 정동시대가 시작되면서 개관기념전으로 <한민족의 빛과 색>이라는 기획전을 마련한 것은 참으로 뜻깊은 일이다. 서울은 정도 600여년 동안 민족 문화의 축을 이루며 색채문화의 주도적 역할을 자임해왔다. 시각적으로 서울의 색을 말하라면 서북간색(西北間色)인 ‘회색계(灰色系)’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전통건축의 배색이 그렇고 서울 주변을 감싼 인왕산, 삼각산, 북한산, 낙산, 도봉산, 수락산, 불암산의 암반색이 그러하며 축석, 조경석과 전돌의 색이 그렇다.

아무리 높은 개와집(瓦家)이라도 구조상 평시점에서도 지붕을 훤히 올려다 볼 수 있게 되어있기 때문에 와가가 밀집된 서울의 색은 필연적으로 거므스름(黑灰色系)한 색조를 띨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울긋 불긋한 육전거리의 모습도 지붕이 모두 개와(蓋瓦)이고 보면 검게 보이기는 마찬가지였을 터이다. 예로부터 시골의 반가촌(班家村)을 ‘고래등같은 개와집’이 모여 있다고 하여 ‘고래무지’ 혹은 ‘거무실’이라 했고 권력에 시달린 서민들을 가르켜 ‘고래등살에 새우등 터진다’고 했다. 이처럼 검은(黑) 개와집은 권위와 부의 상징처럼 느껴졌으며 아직도 그런 잠재적 색채의식이 남아있는데 한국인들이 까만 차(黑色車)에 대한 선호도가 높게 나타난다는 점이 그 실례이다. 요즘은 서울을 감싼 명산의 검은 암벽은 공해 때문에 이끼가 벗겨져서 검은 색을 잃고 운치가 없어졌지만 산업화의 산물로 지어지고 있는 콘크리트 건물과 아스팔트, 그리고 자동차에서 내뿜는 매연을 통해서 보여지는 서울은 역시 암회색(暗灰色) 톤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시각적으로 보여지는 서울의 색 이미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좀 더 미시적으로 접근해 의미론적으로 본다면 서울이 명실상부하게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중심지로서 권위를 상징하는 색상을 선호했다고 보아야 한다. 서울은 왕이 거처하는 주인의식이 지배적이어서 오방색의 관점에서 보면 중앙위의 노랑(黃)이 상징색이 된다. 겹풍수를 자랑하는 서울의 지형으로 보면 좌청래용(左靑來龍)의 산세가 보(補)하고 동출서류(東出西流)의 지세가 강하여 굳이 색으로 말한다면 파랑(靑)으로 상정(上程)될 것이다. 군왕이 백성과 더불어 근역(槿域), 청구(靑丘)의 조선(朝鮮)에 발흥을 기원하는 파랑(靑)과 백성으로 상징되는 하양(白)을 더불어 떠올리게 된다. 서울의 멋쟁이들이 인근과 색조화를 주면서 엷게 물들여 입은 쪽물 모시 치마 저고리가 떠오르기도 한다. 그러나 서울의 색은 곧 한국의 색이 된다. 4대문을 세우고 각 대문마다 인(仁), 의(義), 예(禮), 지(智)라고 오행사상에 의한 문 이름을 붙여준 것만 보아도 서울은 오방(五方), 오정(五正), 오간색(五間色)의 종합적 색채관을 고루 갖추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