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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함께 걸어온 기록인생이 50년을 넘어섰다. 반백년이란 시간에 있어서 소회가 남다를 것 같다.
“50년이란 시간이 중요한 게 아니라 사진을 얼마만큼 했느냐가 중요하겠지만, 난 그다지 많은 걸 하지 못한 것 같다. 음악가들을 보더라도 서른, 마흔에 죽었어도 그토록 많은 작품들을 남겨놔서 지금까지도 남아있지 않나. 또 요절한 문학 작가들도 얼마나 많은가. 난 말로만 거창하게 50년이지, 그만큼 작품을 남기지 못해 창피하다.”
-사학과를 졸업했는데, 사진은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건지 궁금하다.
“물론 나는 사학자가 되고 싶었다. 그냥 우연히 시작하게 된 사진이 좋아서 결국 여기까지 오게 된 거다. 처음엔 호기심에 사진을 시작했는데, 당시 사진하는 사람들을 보니까 열심히 하면 나도 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뛰어들었는데, 사진이 그렇게 재밌을 수가 없더라.”
-‘홀트씨고아원’展은 한국 다큐멘터리사진의 효시라고 불린다. 보기 좋은 ‘예쁜’ 사진이 유행하던 당시 홀트씨고아원 시리즈는 파격적이었다.
“누이가 자원봉사를 하러 가는데, 같이 가자고 하더라. 그곳이 바로 홀트고아원이었다. 원장인 홀트부인에게 사진 찍을 수 있도록 허락해달라고 해 아이들 사진을 찍었고, 그 후 만 3년이 지나고 그때 사진 전람회를 하게 됐다. 당시 신문에서 전람회를 크게 다뤄줬다. 그걸 보고, 앞으로도 쭉 내가 사진을 한다면 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가 아마 1966년, 내가 스물여섯이나 됐을 거다. 우리나라 사진사 기록을 보면 그때의 전시가 꼽히고 있더라. 이건 참 내가 재수가 좋다고 밖엔 설명을 못하겠다.(웃음)”
-전통적인 소재에는 어떻게 관심을 두게 됐는지 궁금하다.
“작년에 ‘마이 마더랜드’란 전람회를 가졌는데, 내용은 1960년대부터 최근까지 찍어온 자연, 집 등 우리나라 풍경이었다. 전시 기자간담회에서 공중파방송 PD가 내게 이런 비슷한 질문을 했다. 내게 어떤 신념을 갖고 이런 사진을 찍어왔느냐고 묻길래 난 신념이 없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는 신념 없이 어떻게 이렇게 오랜 시간 찍을 수 있냐고 했고, 난 그 질문 자체가 이상하다고 했다. 그렇지 않나? 한국 사람이 한국의 자연, 한국의 집을 찍는데 여기에서 신념이 필요해야 하는지…. 내가 전통을 소재로 사진을 찍는 건 당연한 거다. 내가 무슨 신념이 있다는 둥 거짓말을 해야 하냐고 오히려 그에게 반문했었다. 사람들은 당연한 것에도 지나친 의미부여를 하곤 하는데, 그걸 경계해야 한다.”
-‘주명덕블랙’이란 용어가 따로 있을 정도로 흑백사진이 잘 알려져 있다.
“내가 지금껏 전람회에서 흑백만 보여줘서 그렇다. 실은 난 칼라작업도 많이 하고 있다. 물론 흑백의 비중이 더 높긴 하지만, 7:3 비율로 칼라작업도 꾸준히 하고 있다. 흑백 같은 경우에는 내가 직접 작업실에서 프린트를 할 수 있는데, 칼라는 외부에 프린트를 맡겨야 하는 번거로움도 있고 그렇다.”
-지난해 서울시립미술관에 작품 76점을 기증하고, 지난달까지 기증작품전을 열었다. 특별히 시립미술관에 기증한 이유라도 있나?
“서울시립미술관에 사진컬렉션이 그다지 많지 않았던 게 첫 번째 이유고, 또 미술관은 없어지지 않고 영원히 남는 것 아닌가. 내 사진이 그곳에 남길 바란 마음도 있다. 특히 서울시립미술관 측에서 흔쾌히 나의 첫 전시였던 홀트고아원시리즈를 그 순서 그대로, 거기에 실렸던 글도 그대로 모두 남겨줄 수 있다고 해서 오히려 내가 고마운 마음으로 기증할 수 있었다. 미술사적으로도 중요하지만, 내가 20대 때 찍은 사진을 시립미술관에 걸 수 있다는 건 내게도 참 의미있는 거다.”
-기자로도 활동했는데 기억에 남는 작품이 있다면?
“기자생활 한 6년 했다. 지금도 가장 잘했다고 기억되는 일은 ‘우리나라 가족 시리즈’다. 대가족에서 핵가족으로 넘어오는 과정, 한 가정에서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과정 등을 담아 한 달에 한 시리즈씩 내놓다가 11개월만 하고 그만두게 됐다. 당시 안기부의 제재 때문이었다. 비록 완성하지 못한 시리즈이지만 내겐 가장 중요한 작업으로 남는다. 완성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여전하다.”
-작품마다 프린팅은 몇 장씩 하나?
“그걸 에디션이라고 하는데, 원래 사진은 특성상 몇 장이고 한 없이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에디션은 본디 화랑이 작품판매를 위해 작가와 상의해 정하는 거다. 세계 유명 작가들 중에도 에디션을 거부하는 이들이 많으며, 나 역시 에디션을 찬성하진 않는다. 한 작품마다 몇 점밖에 프린트하지 않는데, 에디션은 따로 없다. 에디션 여부는 그다지 중요치 않다. 작가의 신뢰도가 더 중요한 것 아닐까 생각한다.”
-외람될 수도 있지만 지금까지 작품은 얼마나 판매했는지 궁금하다.
“모르겠다.(웃음) 화랑에선 내 사진을 좋아하지 않는다. 너무 어렵다고 하더라. 그래서 내 작품은 대부분 미술관에 많이 가있다. 글쎄, 난 상업작가로서는 그리 성공하지 않은 편이다. 옛날 같으면 내 나이엔 이제 할아버지인데, 요즘엔 100세까지 산다고 하니, 앞으로 20년은 더 일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 이거 아주 끔찍한데.(웃음)”
-지금껏 세 번의 변신을 했으며, 앞으로도 더 변신하고 싶다고 들었는데…?
“지금까지 세 번의 변신을 했는데, 앞으로 두 번 정도 더 변신을 꾀하고 싶다. 다큐멘터리사진 하면서 우리나라에 대한 생각을 담다가 파인아트에 관심을 갖고, 마지막으로는 일명 ‘검은 사진’인 풍경사진을 하며 일종의 회화를 했다고 본다. 앞으로 뭔 변신을 할지 아직 모르지만, 시간이 지난 후 나중에 돌아보면 그땐 알지 않겠나. 앞으로 더 변화하려면 이젠 내 힘만으로는 부족하고 아마 신이 좀 도와줘야하지 않나 싶다.(웃음)”
-수상소감에서 세계적인 대가로 남고 싶다고 했는데.
“세계 어딜 가나 한국에서 사진의 대가가 온다 하는 소리 들으면 좋지 않겠나.(웃음) 그러나 그러려면 나는 아직 멀었고…. 이런 건 본인이 제일 잘 안다, 본인이 어디쯤 와있는지는…. 내 마음만큼은 얼마든지 더 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게 가능할까도 싶고. 젊었을 땐 사진이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 말이 많았는데, 이젠 그저 사람들에게 얼마나 감동을 주는 사진인가가 중요하다고 생각이 든다.”
-일각에서는 여러 매체와 타 장르에 밀려 사진이 점점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다는 말이 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사진이 발명된 지 이제 200년 가까이 되가는데, 사진에 회화가 밀려 회화는 현대회화로 바뀌게 되고, 미술이 추상에서 현대로 가는 큰 역할을 하게 됐다. 사진이 회화를 밀어냈듯이 요즘에는 사진 또한 다른 장르로부터 밀리고 있다. 전람회 아무리해도 소용없고, 차라리 방송이나 인터넷 동영상에 한 번 크게 뜨는 게 훨씬 더 효과적이지 않나. 이제 사진은 동영상에 밀리고 있기 때문에, 살아남기 위해선 다큐멘터리하던 사람들도 파인아트로 돌아서야 할 거다. 사진보다는 영상매체가 훨씬 더 사람들에게 자극적이므로, 사진작가들은 거기에 맞서서 변화해야할 때가 온 것 같다.”
-집 안에 LP와 CD가 가득하다. 또 뒤편의 오디오도 범상치 않아 보인다. 평소에 음악을 즐기나 보다. (기자가 주명덕 선생의 자택을 방문했을 때도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음악은 어릴 때부터 즐겨 들어왔다. 그러다보니 돈 생기면 스피커 바꾸고, 또 더 좋은 걸로 바꾸고 했다. 음악 듣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아주 최상급 스피커는 아니지만, 학점으로 치자면 A-나, B+정도는 된다.(웃음) 이 정도면 난 아주 만족스럽게 듣고 있다고 생각한다. 음악을 즐겨 들어온 이유 중 하나는, 내 사진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거란 생각 때문이었다. 아름다운 음악을 많이 들으면 내가 바라보는 사진 세계에도, 내 눈에도 아름다운 것만 보이게 하는 일종의 훈련이랄까. 작업 중에 내 정신을 맑게 하고 싶기도 하고 말이다.”
-좋은 사진을 찍는 비법이 있다면 알려 달라.
“좋은 작가란 평소에도 항상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세상을 보면 바로 바로 작업을 할 수 있어야 하는 거다. 작업하기 전, 너무 생각이 많으면 안 되고, 또 생각한 만큼 작업이 되는 것도 아니다. 생각이 단순해지고 아무렇지 않고 자연스럽게 찍은 게 나중에 보면 이뤄져 있는 사진이더라. 인위적이지 않아야 하고, 어떤 피사체가 나타나더라도 그냥 곧바로 찍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요즘 젊은 작가들에게 한마디 해준다면?
“특별히 해줄 말은 없다. 그저 젊은 친구들 보면 부럽다. 요즘 세상은 정보도 많고, 자제도 많지 않나. 내가 나이 들어서 이래라 저래라 하는 건 우습다. 그저 부러울 따름이지 뭐.(웃음)”
-앞으로의 전시계획은 어떻게 되는지?
“올해 특히 전시 참 많이 했는데, 내년 1월부터 전시 시작하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