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대상 수상자 인터뷰-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 ‘문화민주주의’ 이루면, 약탈문화재 평화적 환수 가능하다
[문화대상 수상자 인터뷰-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 ‘문화민주주의’ 이루면, 약탈문화재 평화적 환수 가능하다
  • 인터뷰 이은영 편집국장 / 글 윤다함 기자
  • 승인 2012.12.28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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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헌법9조 ‘전통문화의 계승·발전…’ 하루빨리 행해야…

     올해 8월, 지난 4년간 몇 번이나 개관이 무산될 뻔했던 위기에도 불구하고 천신만고 끝에 개관한 육의전박물관.

     2005년, 건물주가 부지 매입 후 건축공사를 하다가 출토된 유물들을 통해 건물 자리가 육의전 터인 게 밝혀졌고, 문화재청은 즉각 공사를 중단하고 현장을 보존해야 한다는 결론을 냈다. 공사가 중단됨에 따라 건물주는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에게 도움을 청했고, 황 소장은 건물도 짓고 지하에 유적박물관도 만들자는 획기적인 해법을 고안해냈다. 이는 문화유산 관리 정책상 최초로 '개발과 보존'을 동시에 실현하는 박물관으로, 도심 한복판에서 이뤄지는 대규모 개발과 문화재 보존의 상생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렇듯 문화재 관련 일이 생겼다하면, 모두들 가장 먼저 황 소장을 떠올린다. 국내에서 그만큼 우리 문화재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깊은 애정, 더불어 추진력과 행동력을 가진 이가 또 있을까 싶다.

     제4회 <서울문화투데이 문화대상> 문화재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한 그를 만나 천대받고 있는 우리 문화재가 처한 현실과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해 들어봤다.

△1961년 경남 출생 현재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 소장 / 육의전박물관 관장 / 문화연대 약탈문화재 환수위원회 위원장 △고려대학교 환경보건학과·고고미술사학과 졸업 / 고려대학교 대학원 문화유산학 석사과정 수료 △2007 문화재청장상 수상 / 2009 환경재단 선정 '2009 세상을 밝게 만든 사람들' / 2012 제4회 서울문화투데이 문화대상 최우수상(문화재부문) 수상 △문화유산보존운동 사례 : 2000 ~현재 풍납토성 백제유적 보존 및 지역주민 보상대책 운동 전개 / 2009. 9 경복궁 옆 7성 호텔 건립 반대 외 다수

-수상을 축하한다. 헌데, 지난번 밝힌 수상소감에서 수상이 잘된 일인지, 못된 일인지 모르겠다는 투로 말을 줄이던데,(웃음) 이게 대체 무슨 뜻인가?
“일종의 성토였다. 상이란 게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기분 좋아야겠지만, 그 행위 자체를 놓고 봤을 때 주변에서 어떻게 보느냐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모습이 일반인들에게 얼마나 즐거움과 감동을 줄까 생각해보면, 정작 현 정부에서는 전혀 그렇지가 않다는 것에 아쉬움이 있다. 난 누구보다도 약탈문화재 환수운동에 앞섰지만, 정작 이와 관련된 상은 상 받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다 받아갔다. 상에 대한 불합리성을 말하고 싶었다. 그런 맥락에서 서울문화투데이의 이번 상은 내게 의미가 큰 상이다.”

-문화재 환수운동에 앞섰다. 지난해 외규장각의궤가 반환돼 돌아오는 수확이 있었는데….
“엄연히 말하면 완벽한 반환은 아니다. 지난해 우리나라로 갖고 올 당시 5년 후에, 즉 이젠 4년 후에 프랑스로부터 대여를 갱신 받아야 하는 상황이다. 마치 전세 살면서 연장하듯 말이다. 그럴 가능성은 낮지만 그래도 혹시라도 나중에 갱신을 받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 우리 문화재가 해외로 나갈 수 없다는 내용으로 우리나라 법원에 소송을 준비 중이다. 그리고 외규장각 전권이 완벽히 돌아온 것도 아니었는데, 한 권은 프랑스 학예사가 영국에 팔아서 현재 브리티쉬뮤지엄에 있다. 그것도 정식 절차를 통해 영국에 반환을 요청할 예정이다. 또한 외규장각 부속으로 있는 갑옷, 지도 등도 환수할 수 있게끔 더 노력할 거다.”

-외규장각이 중요한 우리 문화유산이라고는 알고 있지만 일반 국민들은 외규장각이 왜 그토록 중요한지 잘 모른다.
“외규장각은 우리 정체성에 관한 기록이다. 우리 선조들의 몸짓, 발짓, 예술적 행위, 국가의례 등이 기록돼 있다. 기록 자체도 중요하지만 작품도 굉장히 뛰어나다. 당시 몇 백 명의 화공들이 일일이 그린 것으로, 회화적 테크닉이 엄청나다. 우리 혼이 담겨 있는 것도 담겨 있는 거지만, 당대 뽑아낼 수 있는 최고의 테크닉이 담겨 있는데 정작 주인인 우린 볼 수 없는 거다. 이런 기록은 전 세계적으로 유일하다.”

-아직 반환되지 못한 우리 약탈문화재가 15만점이나 된다. 노력한 만큼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인데, 문화재환수운동의 문제점이 있다면 말해 달라.
“국내에서 문화재환수운동 하는 곳이 몇 군데 있는데, 포퓰리즘, 명예욕, 쓸데없는 공명심으로 하는 곳이 많다. 또 일부 정치인들이나 지자체에서는 선거 전략으로 내세우곤 한다. 거기다가 간혹 민족주의와 국가주의를 과도하게 불러일으키는 이들도 있는데, 이와 관련한 것들을 모두 방지하고 막으려고 한다. 이런 것들은 물론 바람직하지 않거니와 사람들로 하여금 문화재환수에 있어서 감정적으로 대처하게끔 만들기도 한다. 현재 일본에도 약탈당한 우리 문화재가 많이 있다. 대다수 박물관에 우리 약탈문화재가 있을 정도다. 회화뿐만 아니라 심지어 건물도 뜯어가고, 불상도 훔쳐가지 않았나. 먹고 사는데 지장 없다고 약탈당한 우리 문화재에 대해 다들 신경 쓰지 않고 있는데, 그건 틀린 말이다. 그게 다 우리 문화적 자산 아닌가. 이는 경제하고도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세계적인 관광자원으로 활용할 수도 있을 텐데…. 일본에서는 절대로 돌려줄 수 없다는 입장을 고집하고 있는데, 실은 이럴수록 우린 일본박물관협회원들과 교류하면서 설득하고 마음을 열어야 한다. 직접 찾아가 시위하는 것도 중요할 수 있겠지만, 먼저 그들과 직접 교류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본다. 문화재환수도 공명심이나 명예욕이 아닌 문화적으로 해야 한다.”

육의전박물관에서 포즈를 취한 황평우 소장.

-문화재약탈국에서는 많은 이들이 볼 수 있도록 자국에 문화재를 그대로 놔두자는 의견을 내놓기도 한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계속 문화재 환수운동을 진행하기 위해선 이게 문화민주주의운동이란 걸 인지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빼앗아간 사람들이 빼앗긴 이들의 마음을 이해할 줄 알아야 할 것이다. 문화재는 원산지에 있어야 돋보인다. 아주 사소한 거라 할지라도 만들어진 나라에서 있어야 한다는 거다. 또한 인권이 있듯이 문화에도 권리가 있다. 원산지에 있어야 하는 권리. 문화를 존중하는 게 바로 문화다양성이다. 우리 문화재를 약탈해간 다른 나라들과 감정적으로 싸울게 아니라 문화민주주의적으로 해결한다면 평화적으로 모두 돌려받을 수 있을 거라 확신한다.”

-시급하게 환수해야할 문화재가 있다면?
“모두 다 똑같이 중요하다. 우선순위를 두고 싶지 않다. 문화재 환수를 위한 해외문화재단이 만들어지긴 했는데, 좀 걱정스럽다. 역할이 아주 중요한데 인적 구성이 과연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있을까 생각이 든다.”

-현장에서 직접 지켜보며 느끼는 우리나라의 문화재 관리의 허술함이 많을 것이다. 문제점이 무엇인가?
“내부적으로는 문화재청 내 전통문화를 기획하고 정책하는 곳이 일단 힘이 너무 없다. 획기적인 대안이 있지 않은 한 앞으로도 암울할 것 같다. 이번 대선후보들조차도 문화는 뒷전이더라. 나는 5년 후를 내다보며, 이념적으로 편중되지 않으면서 전통문화가 국가 아젠다로 들어갈 수 있게 노력할 것이고, 그 후 5년 동안 쌓아온 걸 펼치고 싶다. 전통문화가 정책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선 나부터 먼저 현장 속으로 뛰어 들어가야 한단 생각이 든다. 나뿐만 아니라 문화유산을 위해서라도 불 속으로 뛰어드는 마음으로 힘써야겠다.”

-대선을 앞두고 본지가 단독으로 대선 후보들에게 문화정책에 대해서 물었다. 기사를 봤는가?
“봤다. <서울문화투데이>가 문화언론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기도 했지만, 아주 잘한 일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럼에도 TV토론 등에서 후보들이 문화는 언급조차 안한다는 것에 상당히 실망했다.”

-5년 후를 강조하는데, 제도권에 들어가겠다는 얘기로도 들린다. 얼마 전, 본지 칼럼을 통해 문화재 문제 해결방안으로 헌법 9조를 강조하기도 했는데….
“그건 일단 시간이 좀 필요할 것 같다.(웃음) 우선 정부부터가 전통문화는 뒷전이다. 그래서 우리 헌법을 볼 필요가 있다. 대한민국 헌법 제9조에서 ‘국가는 전통문화의 계승·발전과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야 한다.’고 밝히고 있는데, ‘표현의 자유’를 말하는 헌법 제21조보다 서열이 더 먼저임에도 전통문화는 대접을 못 받고 있는 거다. 물론 전통문화도 다른 문화들과 유연하게 소통할 줄 알아야 할 것이다. 아니면 점점 더 배척받게 될 테니 말이다. 문화의 원형은 전통문화 아니겠나. 복지와 정치이념만큼 중요한 것이 문화다. 정부는 먼저 헌법기본정신부터 지켜야할 것이다.”

-이달 공식 개관한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 대해서도 날선 비판을 했다.
“그렇다. 난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아직은 개관하기에 이르다고 본다. 전시내용을 살펴보면 그냥 산업기록만 가득하지 절대로 역사박물관이라 부를 수 없는 지경이다. 차라리 ‘박정희박물관’이라고 부르는 편이 낫겠다. 진보적이고, 사회성이 강한 사람들, 보수적인 사람들 등 객관적인 이들이 모여서 우리나라 역사에 대해 다시 정리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돼야 한다. 현재 관장도, 관장 선임과정에도, 전시프로그램에도, 예산까지도 모두 문제가 많다. 특히 예산이 제일 문제다. 건물 리모델링에 몇 백억 원을 써놓고, 문화재관리구입에는 달랑 몇 십억 원만 썼다는 게 말이 되나?”

육의전박물관 내부 모습.

-지난 8월, 천신만고 끝에 육의전박물관이 개관했다. 개관 이후 잘 운영되고 있나?
“정말 어렵게, 어렵게 개관했는데, 지금까지도 일이 완료되지 않았다. 건물주가 여전히 약속을 이행할 생각이 없는 것 같다. 처음부터 약속했던 학예실, 자료수장실 등을 전혀 만들어줄 생각이 없다. 난 끝까지 독촉할 생각이다. 육의전박물관은 내가 영화를 누리려고 한 것도 아니고, 오히려 사비를 쏟아 부으며 여기까지 온 건, 내가 발언한 것에 대한 약속을 지키기 위함이었고, 문화재를 지키려는 의지였다. 내가 만약 처음에 관여하지 않았더라면 이 문화재들은 모두 소실됐을 것 아닌가. 때문에 난 육의전박물관이 정말 자랑스럽다. 그래서 난 더더욱 건물주와의 일들을 끝까지 마무리할 생각이다. 지금 육의전박물관 홈페이지 구축 중에 있으며, 학생 관람객을 위한 체험학습자료집을 만들고 있다.”

-요즘 가장 큰 관심은 무엇인가?
“요즘 내가 사진을 배우고 있다. 이제 1년 가까이 됐는데…. 사진 배우는 이유도 문화재를 위해서다. 문화재를 찍은 내 사진을 보는 이가 좀 더 느끼는 점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배우고 있다. 내가 찍은 문화재 사진을 보고 마음 한 편이 아련해졌으면 한다. 우리 문화재의 의미를 높일 수 있도록 열심히 사진 찍으러 다니고 있다.(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