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들 가슴에 불 지르지 말라”
“작가들 가슴에 불 지르지 말라”
  • 정동용 객원기자
  • 승인 2013.01.10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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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관위, 문인 137명 고발... 작가 박범신, 황석영, 신경숙, 한강 등 항의칼럼 잇달아

제18대 대선에서 서울시선거관리위원회가 한국작가회의 소속 젊은 문인 137명을 선거법 위반으로 검찰에 고발하자 이를 지켜보던 문인들이 키보드를 거칠게 두드리기 시작했다. 작가 박범신이 ‘작가들 가슴에 불지르지 말라’는 항의칼럼을 일간지에 실은 데 이어 작가 황석영, 한강, 신경숙 등도 일간지에 항의칼럼을 잇달아 싣고 있다.

선관위는 제18대 대통령선거를 닷새 앞둔 지난해 12월 14일 젊은 문인 137명이 <경향신문>에 ‘우리는 정권교체를 원합니다’라는 제목을 단 선언문을 담은 광고를 내자 이 광고가 ‘공직선거법 제93조(탈법 방법에 의한 문서·도화의 배부·게시 등 금지) 제1항을 위반했다’며 검찰에 고발했다.

이 조항에 따르면 선거 180일 앞부터 선거일까지 정당 또는 후보자를 지지, 추천하거나 반대하는 내용을 담은 광고를 게재하는 것은 불법이다. 이 혐의가 인정되면 이들 젊은 문인 137명은 2년 이하 징역 혹은 400만 원 이하 벌금을 내야 하지만 이 광고에 참가한 젊은 문인들 대부분은 ‘몸으로 떼우겠다’며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선관위는 해당 일간지에 직접 광고를 싣게 한 소설가 손홍규(한국작가회의 사무처장)를 고발한 상태지만, 검찰 수사가 확대되면 이들 문인들이 줄줄이 소환될 수도 있다. 손홍규는 “광고는 문인들이 모금을 해 낸 것이며, 광고료는 880만 원이었다”며 “광고를 게재하는 게 불법인 줄 몰랐다. 작가들의 진정성을 헤아려 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사)한국작가회의(이사장 이시영)에서도 선관위와 검찰에게 보내는 성명서를 두 차례나 내고, 고발 취소 등을 요구한 바 있다. 선관위는 이에 대해 다른 입장을 지니고 있다. 홍문표 서울시선관위 조사담당관은 “광고 내용이 위중하다고 본다”며 “고발 취소는 계획하고 있지 않다”고 못 박았다.

선관위가 이렇게 거세게 나오자 문인들 반발도 만만치 않다. 작가회의 본회뿐만 아니라 여러 지회에서 이에 항의하는 성명서가 줄줄이 나오는가 하면 인기작가들 항의칼럼도 줄을 잇고 있다. 우리나라 첫 여성 대통령이라는 박근혜 당선인이 집권하는 2013년 새해 들머리부터 불행하게도 문학과 정치가 소매를 걷고 맞붙고 있는 것이다.

작가 박범신(상명대 석좌교수)은 ‘작가들 가슴에 불지르지 말라’(한겨레 1월 2일자)에서 “나는 현실정치와 일정한 거리를 두면서 살려고 노력해왔다. 이번 대선에서도 그랬다”며 “그러나 137명에 달하는 후배 작가, 시인을 범죄자로 몰아붙이는 최근의 사태를 보고는 솔직히 뒷짐 지고 있었던 내가 너무 ‘이기적’인 것은 아니었을까 하고 후회했다”고 말문을 열었다.

박범신은 “현대문학은 고통과 상처를 그 자궁으로 삼고 출발했다. 모든 작가는 시대의 고통에 예민하게 반응한다”며 “윤동주는 심지어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고 쓰지 않았던가. 고통에 반응하지 않는다면 그는 이미 작가가 아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요컨대 137명의 작가들은 마땅히 제 몫의 할 일을 수행했다는 것”이라고 되짚었다.

그는 “지난번 총선에서 나도 투표한 뒤 ‘인증샷’을 보내주면 선착순으로 사인본 책을 보내준다고 했다가 선관위로부터 ‘경고’ 처분을 받았다. 그러나 그 ‘경고’ 처분은 나를 조금도 반성시키지 않았다”며 “단언하건대, 이번 경우도 그럴 터이다. 벌써부터 작가들은 벌금 처분이 나와도 ‘몸으로 때우겠다!’며 벼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137명 모두 한국문학의 내일을 짊어질 유망한 작가들”이라며 “그들이 모두 유치장에 간다면 세계인의 웃음거리가 될 것은 물론이고, 자기성찰의 고요한 시간을 보내고 싶은 나 같은 사람까지도 유치장 문 앞에서 피켓을 들고 서 있게 될지도 모르며, 수많은 독자들도 아마 같은 마음일 것”이라고 적었다.

작가 황석영은 ‘문인에게 표현의 자유 포기하라면… 다시 싸울 수밖에’(한겨레 2002년 12월 27일자)라는 항의칼럼에서 “지난 12월 13일에 137명의 젊은 시인·작가들이 때마침 전국을 휩쓸고 있는 대선정국에 관하여 ‘의사표명’을 했다”며 “이들 젊은 시인 작가들은 용산참사 때부터 독일 문단의 47그룹처럼 ‘비조직적’으로 개개인이 사안에 따라 모이고 흩어지면서 사회적 견해를 표명하기 시작했는데, 거의가 우리 문학의 미래를 끌고 나갈 실력 있는 차세대 문인들”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들이 정권이 바뀌기를 원했다는 것은 현 정부의 참담한 실정에 분노했기 때문이고 저들의 독자이기도 했던 동시대 사람들의 삶에 주목했기 때문”이라며 “서구에서는 문학과 소설이 모든 사회적 교양의 척도이지만 우리네는 정치인들이 서로의 선동적인 거짓말을 비난할 때 ‘소설 쓰지 말라’고 하면서 문학을 하찮은 것으로 모욕하는 나라”라고 꼬집었다.

그는 “문인들에게 사회적 ‘표현의 자유’마저 포기하라면 이제 다시 싸울 수밖에 없다”며 “말로만 사회통합인가. 진정한 통합 의지가 있다면 승자는 자기를 지지하지 않은 절반의 민심을 다독이는 관용과 여유를 보여야 한다. 상처받은 절반을 제대로 끌어안지 못한다면 도대체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새 정부를 인정할 수 있겠는가!”라고 못 박았다.

작가 한강은 ‘질문의 자유가 위협받는 세상에 반대한다’(경향신문 12월 31일자)라는 항의칼럼에서 “대선을 앞두고 137명의 젊은 시인과 소설가들이 정권교체를 바란다는 내용의 선언을 했는데, 그 때문에 성탄 전야에 한 소설가가 선관위에 의해 검찰에 고발되었다”라며 “비록 그 선언에 참여하지 않았지만, 깊은 충격을 받았다”고 되짚었다.

한강은 “그 선언문의 핵심은 인간의 고통을 향해 몸을 기울이는 어떤 태도라고 저는 읽었다. 공감했음에도 제가 참여하지 않은 것은 다만 저의 조심스러움, 현실정치로부터 조금 거리를 두고 싶은 그저 조심스러운 마음 때문”이라며 “이 소식을 들으니, 결국 그 선언은 이런 방식으로 작가들을 고발할 수 있는 권력, 표현의 자유라는 상위의 원칙을 가볍게 저버릴 수 있는 권력에 대해 발언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새삼 아프게 느낀다”고 썼다.

그는 “모든 불가능성을 가로질러 건너갈 비좁은 통로를 더듬어 찾기 위해 끈질기게 서성거렸을 한 인간의 몸짓에 대해 생각한다”며 “그러한 서성거림과 질문의 자유, 몸짓과 언어의 자유가 훼손되어서는 안 된다는 명백한 사실을, 성탄 전야에 들려온 손홍규 작가의 검찰 고발 소식 앞에서 아프게 손아귀에 움켜쥐어 본다”고 적었다.

작가 신경숙은 ‘젊은 작가들에게도 귀 기울여라’(중앙일보 1월 4일자)라는 항의칼럼에서 “서울시 선관위가 지난 대선 기간에 선거법 위반으로 서울 중앙지검에 고발한 건이 3건이라고 한다. 경고는 7건이라 들었다”며 “그 어느 때보다도 격전을 치른 선거 치고는 선거법 위반 사항으로 고발된 것이 겨우 3건이라는 것에 놀랐다. 그런데 그 3건 중에 젊은 작가들 137명이 신문에 낸 시국선언문이 공직선거법 93조 및 255조를 어겨 고발 대상에 포함돼 있다고 해서 다시 한 번 놀랐다”고 입을 열었다.

신경숙은 “3건 중에 젊은 작가들의 일이 경고도 아니고 고발에 포함돼 있다니? 선거 기간 동안 그 시끄럽고 논란 많았던 일들은 모두 법 안에서 진행된 일이었을까”라고 반문한 뒤 “선거의 당선인이 결정된 이 시점에서 젊은 작가들의 표현을 두고 고발까지 한 선관위의 결정에 나는 부정적”이라고 적었다.

그는 “젊은 작가들은 자신들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데 기자회견 같은 방식을 취할 수도 있었을 것”이라며 “하지만 그럴 경우 그들이 전하려고 하는 말들이 요점만 전달될 것을 저어해서 비용까지 각자 출혈해 가며 하고 싶은 말들이 모두 게재되는 광고를 선택했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그들은 자신들의 목소리가 가감 없이 소통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했을 것”이라고 되짚었다.

그는 “작가들은 각각 하나의 정부라고 할 만큼 독립적이다. 남과 비슷하거나 같다는 말을 좋아하는 작가는 한 명도 없다”라며 “그런 그들을 고발하는 대신에, 그렇게 독립적인 그들이 무엇 때문에 그렇게 많은 숫자가 모여서 작품을 쓰는 대신 시국선언의 목소리를 냈는지를 짚어보는 밝는 눈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인가?”라고 되물었다.

그는 “지금은 헌정 사상 첫 여성 대통령이 국정을 도맡을 새 정부가 밑그림을 그리고 있는 때이고 세대 간, 지역 간, 계급 간의 통합을 우선에 두고 있는 때”라며 “선거로 인해 산산이 분열된 것들을 모성적 마음으로 품어야 하는 때에 젊은 작가들의 그 정도의 표현을 받아주지 못하고 벌을 주어 통제하려 한다면 앞으로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라고 마무리지었다.

그렇다. 새 정부는 입으로만 ‘통합’을 앞세우지 말고 진짜 통합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차분하게 되짚어보아야 할 때다. 한 시대 양심을 대변하는 시인 작가들을 ‘선거법 위반’이라는 이상한 딱지를 내밀어 구속을 시키거나 벌금을 내린다면 ‘통합’이 아닌 ‘통제’, 곧 ‘독재’로 걸어가는 길이라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