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Books] 나는 카키색 잠바를 입기로 했다
[New Books] 나는 카키색 잠바를 입기로 했다
  • 이소리 논설위원
  • 승인 2013.01.10 16: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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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맹문재, 네 번째 시집 <사과를 내밀다>를 읽고

ⓒ 맹문재
지난해 끝자락에도 이 땅에서 보리밥이 되지도 않는 시를 마치 쌀밥처럼 짓고 있는 시인들이 펴낸 시집들을 참 많이 받았다. 시집이 팔리지 않는 시대, 시집이 이렇게 많이 나오는 까닭은 무엇일까. ‘이에는 이 눈에는 눈’처럼 시인들이 시집이 팔리지 않는 것에 대한 분풀이로 더 지독한 악다구니라도 쓰고 싶다는 것일까.

그 수많은 시집 가운데 언뜻 눈에 띤 게 시인이자 문학평론가 맹문재가 펴낸 네 번째 시집 <사과를 내밀다>(실천문학사)다. 지난 해 11월 허리춤께 나온 이 시집이 특별히 다가온 것은 어쩌면 시집 표지가 따뜻한 느낌을 주는 주황빛이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하여튼 이 시집을 잡은 이상 맹문재 시인이 내미는 그 사과가 잘 익은 사과인지 어떤 맛인지를 제대로 알고 싶었다.

시인 맹문재 <사과를 내밀다>

시인 맹문재는 이번 시집에서 이 세상살이에 스스로를 비추고 있다. “시간을 읽으면 / 내가 도착할 역이 떠오른다”(시간을 읽으면)거나 “나는 감추었던 사과를 내밀었다, 선물처럼”(사과를 내밀다), “맨손으로 못을 뽑고 있는 나를 / 누가 무시할 수 있겠는가”(못 꿈), “나는 응급차를 부르는 심정으로 / 거리의 끝에 불붙인다”(거리에 불붙이다), “나는 비린내 나지 않는 이끼를 담보로 대출을 신청했다”(이끼를 담보로 잡히다) 등이 그것.

‘시인의 말’도 마찬가지다.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는데 한 승객이 운전사에게 시비를 걸기 시작했다. / 운전사도 지지 않고 응수했지만, 마흔의 나이라고 밝힌 승객에게 위협당하고 있었다. / 곧 폭행이 일어날 것 같았다. / 그런데도 사람들은 못 본 체했”지만 “할 수 없이 내가 나서서 한마디” 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아줌마 아저씨들도 그 승객을 나무”라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시인은 “그가 흉기라도 꺼내 들고 덤비면 어쩌나 겁이 났지만, 나는 아직 젊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설 수 있었다. 사실, 시인 나이는 생각처럼 그리 젊지 않다. 올해 나이가 우리 나이로는 오십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시인이 아직 젊다고 여기는 것은 이 세상은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 아니겠는가.

시인 맹문재가 백일장 심사를 하다가 카키색이 짙은 시 앞에서 눈길이 딱 멈춘 까닭은 무엇일까. 그는 왜 그 시들을 읽고 난 뒤부터 “카키색 잠바를 입기로” 다짐했을까. 카키색은 짙은 황갈색으로 그가 한때 시뻘건 쇳물이 펄펄 끓는 포항제철에서 현장노동자로 일할 때 입었던 그 작업복 빛깔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그 고된 시간을 거쳐 지금은 안양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가 되어 있지만 가슴 한 켠에 켜켜이 끼어 있는 그때 그 시간들을 결코 잊을 수 없다. 그가 “나에게 카키색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라고 하는 것이나 “순응이 아니라 체력으로 / 체면이 아니라 그을린 얼굴로 들어왔다”고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시인은 ‘카키색’(노동자)과 ‘체면’(교수) 사이에서 허둥거리고 있다. 마음은 한때 피땀을 쏟았던 그 고된 카키색이 되어 “천 일 넘게 한데서 떨고 있는 기륭전자”에 달려가고 싶지만 몸은 논문마감에 묶여 있다. 물론 기륭전자로 가는 길도 그리 간단하진 않지만 논문을 포기하고 갔다간 교수 자리마저 잃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가야 할 곳에 가지 못해” 발만 동동 구르며 마음을 졸이고 있는 시인. 그 시인 마음이 오죽 아팠겠는가. 글쓴이도 한때 창원공단 현장노동자로 일했다. 글쓴이 또한 맹문재 시인처럼 노동자들이 온몸으로 싸우고 있는 현장에 자주 가지 못했다. 어떤 때는 원고마감을 핑계로, 어떤 때는 몸이 아프다는 핑계로. 그들에게 죄송하다는 말밖에 더 할 말이 없다.

시인 맹문재가 ‘카키색’과 ‘체면’ 사이에 놓인 징검다리를 놓고 고민하는 시는 이 시집 곳곳에서 진땀을 흘리고 있다. “나는 시를 진실하게 썼다고 주장할 테지만 / 노동자의 길을 철저하게 걷지 못했기에 / 시집은 불태워지지 않을 것이다”(분서), “나는 위안이라도 드리려고 / 작업반장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는다”(어떻게 혼낼 수 있을까), “노조 가입 신청서를 처음 썼을 때처럼 / 갈림길을 지나가기로 했다”(갈림길을 지나가다) 등이 그러하다.

시인 맹문재 네 번째 시집 <사과를 내밀다>는 이 세상을 아우르고 있는 빛과 어둠을 가늠하는 저울이다. 그 저울은 이 세상을 환하고 따스하게 비추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속내는 어둠보다 더 캄캄한 탈을 쓴 빛보다 가난하고 힘든 이들 가슴에 먹물로 꽉 들어찬 어둠에 무게추가 더 기운다. 시인이 아버지처럼 따랐던 시인, “의지” 하나로 “시인의 길을 걸어갔”던 김규동 시인처럼 그렇게.

문학평론가 오연경은 ‘거룩한 속물의 산수(算數)’라는 서평에서 “맹문재 시인의 시는 자기 고백의 시라 할 수 있다”라며 “그는 한때 포항과 광양에서 끓는 쇳물로 밥을 지어 먹은 노동자 출신이지만 현재는 한 대학의 교수가 되어 있다. 이 두 삶에는 어느 정도의 거리가 있다. 이 거리의 긴장감은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계급 간의 긴장감이자 이 시집을 관통하는 시인 자신의 긴장감이기도 하다“고 평했다.

문학평론가 고형진은 “맹문재 시인의 시를 읽으며 글이 주는 감동의 원천이 진정성에 있는 것임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고 입을 뗀다. 그는 “그의 시는 치장이 옅고 기교도 적어 수수하고 무덤덤해 보이기까지 하는데, 그 무표정한 것 같은 민얼굴이 그대로 겉과 속이 완전히 같은 진실한 사람의 모습으로 다가온다”며 “솔직하고 정직한 시심으로 읽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는 그의 시를 나는 ‘투명함의 시학’이라고 규정하고 싶다”고 적었다.

그는 “맹문재 시인은 사회적 약자의 편에 서 있지만,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그들의 생각을 외치고자 하지 않는다”라며 “시인은 다만 그들의 목소리에 조용히 귀를 기울이고, 그들을 껴안고, 어루만지고, 위무하고자 할 뿐이다. 맹문재 시인은 역설적이게도 ‘순수한 참여시’를 쓰고 있는 것이며 그래서 그의 시는 아주 선한 얼굴을 하고 있다”고 썼다.

시인이자 문학평론가 맹문재는 1963년 충북 단양에서 태어나 1991년 <문학정신>으로 작품횔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먼 길을 움직인다> <물고기에게 배우다> <책이 무거운 이유>가 있으며, 시론 및 비평집으로 <한국 민중시 문학사> <패스카드 시대의 휴머니즘 시> <지식인 시의 대상애> <현대시의 성숙과 지향> <시학의 변주> <만인보의 시학> <여성시의 대문자>를 펴냈다.

편저로는 <박인환 전집> <박인환 깊이 읽기> <김명순 전집-시.희곡> <한국 대표 노동시집>이 있으며, 공편으로는 <페미니즘과 에로티즘 문학> <한국 근대여성의 일상문화>(9권) <한국 현대여성의 일상문화>(8권) <한국 현대 대표 시선>이 있다. 1993년 제5회 전태일문학상, 1996년 제6회 윤상원문학상을 받았다. 안양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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