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수의 뒷방이야기] 지적질?
[박정수의 뒷방이야기] 지적질?
  • 박정수 미술평론가(정수화랑 대표)
  • 승인 2013.01.10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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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수 미술평론가(정수화랑 대표)
새해가 밝았다. 남을 잘되게 하는 2013년을 꿈꿔본다. 칭찬보다 흉이나 지적절을 더 사랑하는 세상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세상은 흉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사실 확인도 잘 안한다. 자그마한 근거만 있으면 그것이 사실로 변한다. 이런 것을 너무나 잘 아는 현대사회의 미디어는 노이즈마케팅, 빈티지마케팅이라는 이름을 얻기도 했다. 대중스타가 군 입대를 앞두면 언제나 비슷한 스캔들이 터진다. 전역을 앞둔 스타도 마찬가지다. 가수 비와 김태희의 연애기사는 도대체 누가 공론화 시키는가. 영화나 신곡을 발표하기 두서너 달 전을 즈음해서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난다.

‘뜨고 싶으면 쎈 사람을 씹어라’고 한다. 자기보다 조금 낫거나 엇비슷한 이를 흉봐야 자기만 손해다. 누가 자신의 그림을 도용했느니, 소재를 베꼇느니 해봐야 세상은 관심 없다. 거기서 거기다. 지금은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져 가고 있지만 45억 2천만원에 달하는 박수근의 <빨래터> 위작문제도 있었다. 2007년에 시작된 위작 문제가 2009년 11월에 ‘진품으로 추정 된다’는 모호한 말로 일단락된다. 진위를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기왕 비난을 할 바에는 크게 움직이라는 말을 하고 싶다.  

 

맘에 들지 않는 어른을 욕했다. 젊은 혈기에 그들의 잘못을 반성하지 않는다고 흉과 비난을 했다. 그랬더니 아무런 말도 없다. 욕먹은 어른이 가만히 있는 것은 스스로 잘못을 인정하기 때문이라 이해했다. 지금에 와서 누군가 어른을 욕하고 흉을 보면 작은 갈등이 온다. 젊은 누군가의 말에 맞장구를 칠까 아니면 그러면 안 된다고 설득을 할까. 결국은 그냥 둔다.

젊은 혈기의 사람들은 흉과 불만과 잘못을 지적할 권리가 있다. 무한 권한이다. 언젠가 자신이 그 자리에서 그만큼 흉과 불만과 잘못을 들어야 하기 때문에 지금의 그들은 그러만한 자격이 있다. 잘못을 지적하는 것을 용기라 했다. 여기서 말하는 어른은 기성세대다. 지적이나 충고는 부족한자의 특권이다. 권리를 마음껏 누려도 된다. 다만, 흉과 지적질은 세대나 사회나 집단을 대상으로 해야 한다. 개인에 대한 부정과 지적은 부러워하는 대상일 뿐이다. 지적받은 개인은 가급적 대응하지 않는다. 않음이 아니라 필요를 못 느낀다. 지적받은 개인은 사회나 집단의 지도층이거나 권력이 있는 이다. 어른은 아이가 까분다고 혼내줄 수도 있고, 어떤 위치에서 움직이지 못하게 할 수도 있는 힘이 있다. 그래서 어른이라 한다. 어떤 어른이 용서를 못했다면 다른 곳에서 밥 빌어먹고 있을지도 모른다.

젊은 미술가 꿈을 꾼다. 주변에서 들리는 약간의 칭송이 사회의 대다수인줄 착각한다. 자신있게 주변에 자신의 입장을 설파하고, 자신의 의지와 맞지 않은 경우는 잘못이라 치부한다. 자신의 충고와 지적인 대단히 옳음이라 이해한다. 대다수의 어른은 그것을 그냥 둔다. 젊은 미술가는 사회에 대한 소명의식이 대단히 크다. 소명의식을 주변에 전파한다. 옳음을 행하지 않는 동료들은 시대에 뒤떨어진 이들이라 믿는다. 기성세대의 미술가에 의해 현재가 잘못되었다고 꼬집는다. 잘못된 교육의 피해자라 생각한다. 자신은 다르기 때문에 미래가 달라질 수 있다 믿는다. 어른의 위치에 자신이 갈 수 있음을 이해했으면 좋겠다.
세상살이를 하면서 가장 손쉬운 것이 부정하는 일이다. 남 칭잔하기는 싫어도 흉보기는 간단하다. 하지만 현재의 흉하는 목소리가 미래의 자신에게 들릴 수 있음을 상기하자. 약간의 눈을 돌려 더 많은 세상이 있음을 확인하여야 한다. 미술가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 가만히 있다고 세상이 멈춰진 것은 아니다. 혹 자신의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또 다른 이를 비난하는 것은 아닌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또한 지적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