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문화콘텐츠 체험 여행(6) - 독서와 토론, 리포트를 위주로 한 학교교육
나의 문화콘텐츠 체험 여행(6) - 독서와 토론, 리포트를 위주로 한 학교교육
  • 서연호 고려대명예교수/한국문화관광연구원 이사장
  • 승인 2013.01.10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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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호 교수
2013년 새 정부가 수립되면 교육정책도 새로워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청소년들이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가 자립하면서 독창성을 발휘하도록 하는 교육, 아울러 도덕적인 인격자로 처신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 이것이야말로 산교육, 참교육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실현하고, 스스로 완성하도록 하는 교육과정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사람에 따라 성숙기간에 차이가 있으므로, 정부는 다양한 과정을 마련해 놓고, 청소년들이 자신에 알맞은 과정을 자유롭게 선택해 실력을 쌓도록 하는 것이 교과진행의 요체다. ‘물고기를 주지 말고, 물고기 잡는 방법을 가르치라’는 유명한 말씀도 있지 않은가.

필자는 1993년 10월 30일, 미국 버지니아에 자리한 토마스 제퍼슨 과학기술고등학교를 방문했다. 때마침 연구학기라서 카나다와 미국 여러 지역을 견문하고 있던 참이었다. 이 학교는 미국에서 입학시험을 통해 학생을 선발하는 최고의 우수한 공립으로 유명하다. 이런 공립은 미국에서도 매우 드물다고 한다. 대체로 반경 40마일 이내의 학생들이 지망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으며, 학비는 전액 무료이고, 통학 버스를 제공한다. 또한 학교에서 이수한 학점의 일부를 대학에서 인정 받는 특별과정(대수, 미적분 등)을 운영한다. 따라서 특별과정을 이수한 학생들은 대학을 3년만에 졸업할 수 있다.

버지니아에서는 필자의 처남집에 머물게 되었는데, 평소 미국의 학교교육에 관심을 두었던 터라서 그곳을 방문하게 되었다. 학교에는 내 조카 제니퍼(Jennifer, 김정선)가 재학했고, 교내의 주도적인 필드학키 선수로 활약하고 있었다. 현재 그녀는 인터넷으로 의류를 파는 회사 토비컴의 사장으로 활약중이다. 학교는 대체로 오전에는 필수과목을 공부하고 오후에는 각자의 필요에 따라 선택과목을 이수했다. 멀쩡한 대낮에 학생들이 운동장에서 땀을 흘리며 필드학키를 하는 광경을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한국에서 대학입시 준비에 쫓기고 있을 학생들과 너무 대조적인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이 학교가 우수한 인재를 배출하는 명문으로 전통을 쌓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 복잡한 내용을 요약하면, ‘창의성을 육성하는 과정에 충실하다’는 점이라 할 수 있다. 어느 학생이 무엇을 전공하든, 독서와 토론, 리포트를 가장 중시한다. 미리 정해진 진도에 따라 매시간 책을 읽고나서 토론에 참가해야 한다. 아울러 교사가 요구하는 리포트를 수시로 작성해 제출하고 평가 받아야 한다. 만약 인터넷에서 과제와 관련된 내용을 그대로 베끼면 학점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교사는 주입식 입시지도자가 아닌, 토론과 리포트를 차원 높게 지도하는 지혜로운 인도자들이다. 이 학교는 교과서를 학교에 두고 다니며, 토론과 리포트를 준비할 수 있는 모든 교과 관련 책들은 동내 도서관에 완비되어 있다.

필자는 르네상스에 관한 토론을 준비하는 과정을 지켜 보았는데, 내 조카는 10여 권의 책을 빌려와서 열심히 읽고 있었다. 저자마다 ‘왜 다른 해석을 해 놓았는가’ 하는 점을 탐구하는 독서이다. 이런 방식으로 3년의 모든 과정을 이수하고나서 학생들은 원하는 대학을 선택하게 된다. 학교측은 재학시절의 모든 과정에 대한 학생의 적응 및 실천 능력에 대한 평가를 종합해 대학의 입학원서를 작성해 준다고 한다. 학교가 발행하는 ‘입학추천서’야말로 해당 학생에 대한 최고의 신용장에 해당하는 것이다. 이렇게 훌륭한 교사들이 있고, 교사를 신뢰하는 사회가 부럽기만 했다.

최근 국내 대학들이 하나 둘 논술고사를 폐지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기왕에 어렵게 만든 제도를 ‘독서하고 토론하고 글쓰는 인재를 양성’하는 바람직한 과정으로 발전, 정착시키지 못한 채, 도깨비 방망이 휘두르듯이 어느새 폐기처분하는 것이 우리 교육개혁의 현주소이다. 오늘날 우리 교육은 필자의 이런 말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앞서 지적한 참교육과는 거리가 멀게 점점 시험위주의 주입식으로 치닫고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