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평우의 우리문화 바로보기] 친일행적의 그림이 문화재인가?
[황평우의 우리문화 바로보기] 친일행적의 그림이 문화재인가?
  •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 소장
  • 승인 2013.01.10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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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황평우 소장
얼마 전 문화부 주최의 표준영정제도 공청회가 있었다. 공청회의 주제는 문화다양성을 주창하는 현재의 의미에서 과거 역사적인 인물의 영정을 제작할 때, 인물의 얼굴모습을 전혀 형태를 모르는 상태에서 그려야 하는데, 이때는 작가의 상상력과 역사적 의미가 재해석된다. 이러다 보니 영정은 여러 모습으로 나타났고, 심지어 화가 자신의 모습을 그리는 경우가 허다했고, 고증되지 못한 왜곡된 형태로 표현되기도 했다. 결국 정부는 표준영정제도를 만들었으나, 이 심의제도는 형식적이고 파벌주의가 만연하여 반발들이 많았다. 또한 역사적 인물에 대해 표현하고자 하는 문화적 행위를 국가가 통제하고 강제해야 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었다. 이날 공청회는 영정을 그린 사람의 친일 행적 때문에 영정 제작이 옳지 못하다는 주장과 일제강점기 당시에 친일을 안 할 사람이 누가 있었냐는 억지스럽고 황당한 주장이 넘치면서 최근 우리 사회의 극단적인 수구보수의 입김을 대변하는 공청회에 그치고 말았다.
 
한편 일제 강점기에 친일을 할 수 밖에 없었다는 수구보수세력의 주장이라면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윤봉길, 안중근, 유관순 열사 등 이 땅의 독립과 해방을 위해 목숨을 바친 수많은 열사와 3.1운동의 주도적 역할을 했던 민중과 학생들은 바보 멍텅구리였다는 말이 된다. 그분들은 친일을 해서 편안하게 살수 없었던가! 아니지 않은가? 개인의 안녕과 영화보다는 나라의 독립과 민주, 평화를 위해 고난의 길을 택한 것이다.

정신과 자존심을 버리고 일제에 적극적인 찬동과 협력을 한 반역에 대해서 어떻게 친일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이라고 친일행위들을 합리화 하는 것일까?
 
또 다른 황당한 사건은 작년 12월 18일 문화재청은 우리나라 1920~30년대 미술사와 예술적으로 가치가 있는 작품 중 노수현의 <신록>, 이상범의 <초동>, 이영일의 <시골소녀>, 배운성의 <가족도>, 김환기의 <론도(Rondo)>, 오지호의 <남향집> 등 근대회화 작품 6건을 문화재로 등록 예고했다. 필자는 근대 회화가 문화재가 되는 근본적인 방안에는 적극 동의한다. 하지만 문화재청이 등록 예고한 6건에 대한 근거에 필자는 동의할 수 없다.

먼저 문화재청의 주장에 따르면 <신록>(1920년대)은 근대 화단의 대표적인 화가인 심산 노수현(1899~1978)의 초기의 작품으로, 그 규모나 표현에서 역사적 가치가 높은 작품이라고 했으나, 친일인명사전에 따르면 노수현은 대표적인 친일 화가이다. 그는 일제의 시국시책인 ‘전시국민생활체계 확립기준안’ 을 위한 만화를 그려냈고, 적극적으로 독려했다. 즉 미술과 만화를 통해 내선일체와 황국신민화 시책을 가장 효과적으로 홍보한 친일파이다. 또 황군위문 부채그림을 그려 조선총독부에 헌납했고, 조선남화연맹 전람회에 출품하여 판매수익금을 일본 육해군에 헌납한 전력의 소유자다. 더 큰 문제는 <신록>은 조선의 전통화풍도 아니다.
 
청전 이상범의 <초동>은 1926년 제5회 조선미술전람회에서 특선을 수상한 작품으로, 청전이 조선미술전람회에 출품했던 작품이지만, <초동>은 결정적으로 일본 수묵화풍에 불과하다. 황량한 분위기의 풍경, 짧게 반복한 갈필의 언덕이나 산 처리, 나무와 안개의 표현 등은 일본 남화풍과 같다. 또 미술을 일본 군국주의와 황국신민화의 선전도구로 악용했으며, 특히 매일신보에 게재한 삽화 ‘나팔수’는 징병제를 적극 활용하는 그림이다.

<시골소녀>(1928년)를 그린 춘천 이영일(1904~1984)은 1920~30년대에 채색화 분야에서 활동했던 화가로, 1925년 조선미술전람회에 3등 상을 받은 이후 연속 7회에 걸쳐 특선을 차지한 작가이며, 그가 그린 <시골소녀>는 일본 채색화에 불과하다.
 
<가족도>(1930-35년)는 우리나라 최초로 독일 베를린과 프랑스 파리 화단에서 활동한 배운성(1900~1978)의 가족초상화이며, 한옥 마당에 대가족이 아기를 안고 앉아있는 할머니를 중심으로 배열된 작품으로 근대기 가족사진을 연상시키지만 <가족도>는 과학적인 감정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을 정도로 진위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다시 말해 위 4인은 일제강점기 군국주의에 부역한 그림을 그린 친일화가들이며, 1920년~30년대 미성숙한 청년기의 작품으로 작가의 개성이 뚜렷하게 드러나 있지 않다. 위 4인의 작품은 일제강점기 시대상과 우리의 역사를 아우르는 작가정신 읽을 수 있는 주제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문화재로 등록하는 것에 재론이 필요하다고 본다.
 

- 황 평 우 -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 소장
육의전박물관 관장
문화연대 약탈문화재 환수위원회 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