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문화콘텐츠 체험 여행(7) - 전자책시대에 대비하는 정책 수립 서둘러야
나의 문화콘텐츠 체험 여행(7) - 전자책시대에 대비하는 정책 수립 서둘러야
  • 서연호 고려대명예교수/한국문화관광연구원 이사장
  • 승인 2013.02.01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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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호 교수
 전자책시대에 대비하는 정책 수립을 서둘러야 한다. 서울 시내에서 서점을 찾기 어렵다. 전국 어디서나 마찬가지다. 도시 변두리의 몇 안 되는 고서점들도 파리를 날리는 현상이다. 그저 대도시에 있는 대형 서점 한두 곳이 서점의 빛 낡은 명예를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설살가상으로 출판사들, 인쇄공장들의 폐업이 줄을 잇고 있다. 그간의 빚은 부채로 남고, 창고에 쌓아둔 산더미 같은 책들은 폐지공장으로 헐값에 팔려 나간다. 기성세대인 장노년층은 독서문화가 사라지고 있다고 한탄하고, 전국적으로 독서 권장, 도서관 확장, 독후감 쓰기, 글짓기 대회 같은 운동이 벌어지고 있지만 이러한 국면의 전환은 어렵게 보인다.

  책문화가 종말을 고해가는 오늘날,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그러나 생각해 보면, 이미 예고된 변화였고 지금은 과도기에 해당한다. 21세기는 종이책문화의 세기가 아니라 전자책문화의 세기임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디지털이니, 인터넷이니 하는 말을 자주 사용하면서도 우리는 아직 디지털 북이라는 개념에 익숙하지 않다. 어차피 전자책으로 미래를 살아야 한다면, 하루라도 빨리 출판과 독서, 도서관과 유통에 대한 기업 또는 정부의 새로운 정책적 대안이 수립되어야 할 것이다. 기존의 종이책 체계를 가능한 현명하게 연장해 가면서 한편으로는 전자책의 시대에 대비해야 할 것이다.

  1988년 7월에 싱가포르를 첫 방문하는 길에 필자는 그곳 교수의 안내로 싱가포르국립대학을 견학했다. 남서부지역 켄트리지 언덕에 자리한 1.5 평방킬로의 넓은 캠퍼스를 걸어 보았고, 학교 시설들이며 연구실을 살펴 보았다. 대학의 전면은 평야인데 영국 식민지시절에 파시판장 공군기지로 사용되었다. 1905년 화교에 의해 의학학교로 출발한 이 대학은, 역시 화교가 세운 난양대학과 1980년에 합병하여 11개 학부의 거대한 싱가포르국립대학(NUS)이 되었다. 기숙사에는 3천7백의 개인실과 80의 2인실을 갖추었고, 2010년에는 세계 대학순위 31위로 평가될 정도로 훌륭한 성과를 내고 있다.

  도서관에서 가장 부러운 곳은 중국학 및 화교학에 관련된 귀중서들을 비치해 둔 특별실이었다. 영어가 공용어이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은 중국어를 잘 읽고 말하는 수준이라고 했다. 한 마디로 화교들의 정체성을 말해 주는 명소가 아닐 수 없다. 당시 필자를 가장 놀라게 한 것은 도서관에 가지 않고서도 모든 교수들이 연구실에서 도서관에 있는 대부분의 책들을 찾아서 읽고, 필요하면 마음대로 복사도 할 수 있는 인터넷 시설을 완비해 놓은 것이었다. 즉 종이책을 전자책으로 이미 전환해 놓고 자유롭게 활용하고 있었다. 국내에서는 대학에서 겨우 도서목록 정도를 컴퓨터로 정리하던 시절이었다. 매초 24GB의 네트워크, 3만5천의 유선망, 4백 개의 무선인터넷을 통해 세계의 정보를 거의 실시간으로 얻을 수 있는 수준이라고 했다.

  2012년 현재, 국내 대학도서관을 비롯한 공공도서관들의 실정을 어떠한가. 아직도 전자책으로 읽을 수 있는 자료들은 방대한 종이책에 비해 극소량에 지나지 않는다. 전자책을 전문으로 만들려고 하는 출판인을 만나본 적은 있지만 아직도 미미한 수준일 뿐이다. 실제로 출판된 전자책들에 대한 평가도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다. 정부나 기업이나 대학들이 책에 관해서 어물어물하는 사이에 벌써 우리에게는 전자책의 시대가 오고야 말았다. 필자가 생각하는 상식적인 대안은 대략 이런 것이다.

  책을 내고 싶은 저자의 원고는 전문출판사에서 편집해 DB에 저장하고, 인터넷을 통해 읽고 싶은 독자들은 일정한 값을 지불하고 읽거나 복사하도록 한다. 비용이 많이 드는 귀중서, 희귀서들은 편집해 CD에 저장하고, 서점에서 직접 판매하도록 한다. 각 도서관에서는 수장된 종이책들을 DB에 편집해서 저장해 놓거나, CD에 편집해서 저장해 놓고 독자들의 서비스에 응하면 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장래성이 없고 낭비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종이책에 대한 전자책의 대안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현재 독서를 하지 않는 젊은이들은 장차 전자책 역시 잘 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책이 없는 인간의 문화는 생각하기에도 끔찍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