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북촌, 당신은 정말 안녕한 건가요?
[기획] 북촌, 당신은 정말 안녕한 건가요?
  • 임동현 기자
  • 승인 2013.02.04 11:2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전통 보존'의 뒤 숨겨진 북촌의 부끄러운 '민낯'

북촌 공방촌에서 벌어진 '믿고 싶지 않은 일들'
자격미달 이유로 예술가가 쫓겨나는 일 생겨… 수입 없이 월세·난방비 걱정

평화롭게 보이는 북촌 한옥마을. 이 곳이 '추악한 민낯'을 가지고 있다면 믿을 사람이 얼마나 될까?


북촌. 조선시대 양반들이 터를 잡고 살았고 지금도 전통예술 보유자 및 문화인들의 터전으로 인식되는 곳. 조선시대 한옥들이 아직도 남아있어 잠시 타임머신을 타고 조선시대로, 우리의 어린 시절로 온 느낌을 갖게 하는 곳. 한옥의 아름다움을 찾기 위해 외국인 관광객도 많이 찾고 주말마다 가족들, 연인들이 손을 잡고 부담없이 거닐 수 있는 그 곳.

우리는 북촌을 그렇게 알고 있다. 조선의 정취와 예술이 살아 숨쉬는 바로 그런 곳으로. 예술인들이 모여 우리의 혼이 담긴 작품을 만드는 바로 그런 곳으로.

지하철 3호선 안국역에 내리면 바로 북촌을 소개하는 안내 광고와 마주친다. 골목마다 한옥집이 붙어있고 그 골목에는 가족들과 연인들, 외국인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현대그룹 사옥을 끼고 들어가는 '계동길'에 이르면 여러 공방들의 안내판이 붙어있고 옛날 간판의 문방구점, 대중 목욕탕 등이 잠시 어린 시절을 떠오르게 만든다. 북촌문화센터를 둘러보며, 한지로 만든 작품들을 내놓은 가게를 보며 북촌의 멋을 조금이나마 느껴보았다. 북촌은 그렇게 우리의 옛 멋을 온전히 보존한, 어쩌면 조선의 멋을 볼 수 있는 최후의 보루라는 생각까지 들게 만들었다.

이 평화롭고 아늑해보이는 북촌에서 사람들의 '이전투구'가 벌어지고 있다고 하면 믿을 사람이 얼마나 될까? 북촌에 있는 한옥들이 예전에 없어졌다가 다시 세워진, 예부터 내려온 집이 아니라 얼마 안 된 과거에 지어진 ‘날림 한옥’이라고 말한다면 또 믿을 사람이 얼마나 될까?

북촌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할 때 맨 먼저 든 의문은 이것이었다. ‘여기도 혹시 개발의 손길이 밀려오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또 하나는 ‘전통을 보존한다고 하지만 오히려 전통을 파괴하는 일들이 북촌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인가?’하는 의문이었다.

'전통 보존'이라는 이름 속에 다시 살아났다고 믿었던 북촌. 하지만 화장 속에 숨겨진 '북촌의 민낯'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과연 북촌은 계속 조선 한옥의 멋을 보여줄 수 있는 장소로 남을 수 있을까? 북촌에 대한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며 계속 생겨났다.

그래서 시작해보기로 했다. 지금 북촌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한 이야기를. 그리고 지금 북촌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말이다. 우선은 북촌에게 안부 인사를 해 본다. ‘북촌, 지금 당신은 안녕하신가요?’

이 글은 북촌에 거주하는 한 예술인의 입을 통해 살펴본 '북촌의 민낯'이다. 그리고 이 글을 시작으로 우리는 북촌의 이야기들을 하나씩하나씩 풀어보고자 한다. 우리의 북촌은 과연 안녕히 잘 지내고 있을까? 우리의 북촌마저 혹시 사람들의 탐욕 속에 서서히 사라지는 것은 아닐까? 그 의문과 근심을 가지고 이야기를 시작해본다. 
 

현재 서울시가 운영하고 있는 북촌한옥은 26곳이다.


'예술가'라면 취미로 예술한 사람까지도 다 받아주니…

전 세계에서 한지 예술을 선보이며 이름을 알리고 있는 김경신 '경신공방' 대표. 인사를 나누자마자 그는 이렇게 물었다. “어떤 이야기를 듣고 싶으세요? 제 작품? 아니면 북촌의 문제에 대해서?” 내가 ‘북촌 문제’에 대해 듣고 싶다고 하자 그는 작정한 듯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마치 오래 묵은 한을 한꺼번에 털어놓으려고 작정한 듯이.

독일에서 작품 활동을 하던 그에게 2007년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다. 서울시가 예술가들을 위해 북촌 한옥에 터전을 마련해주겠다는 것이다. 북촌이 고향이기도 한 김 대표는 독일 생활을 접고 귀국했지만 바로 그를 실망시키는 일이 벌어진다. 서울시가 자격 요건이 안 된다는 이유로 김 대표의 북촌 거주를 막은 것이다.

"자세한 자격은 전혀 없었어요. 그저 '예술하는 사람'이면 된다는 거예요. 그랬더니 무슨 일이 벌어진 줄 아세요? 집있는 사람들이 이 집을 차지하려고 공무원들이랑 짜고 심사를 받아요. 이미 사람이 정해진 채로 심사가 이뤄지는 거지요."

이미 독일 생활을 청산한 상황에서 한국에서 집없이 산다는 것은 정말 막막한 일. 그는 다행히 북촌에 터전을 마련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그것이 시련의 시작이 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가난하고 집없는 예술가들의 터전이 되어야하는 곳인데 돈있는 사람들이 시와 공무원을 매수해서 차지하려고 해요. 그리고는 작품 활동도 하지 않고 가게만 차지해서 싼 물건들을 내놓지요. 어떤 사람은 대놓고 한지 공예를 '취미로'한다고 하는 사람도 있어요. 이런 사람도 예술가라고 시에서 집을 줬습니다. 그리고 최고의 예술가 행세를 하며 돌아다니지요"

이렇게 세밀한 면이 전혀 없이 북촌 거주자들을 선정하다보니 진짜로 들어가야할 예술가들이 들어가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했다. 집을 구하지 못한 예술가들은 보따리 장사 등으로 생계를 이어야하는 처지로 전락했다. 북촌의 우선 입주자가 되어야 할 ‘돈 없고 살 곳 없는 예술가들’은 오히려 북촌이 제일 거부하는 대상이 됐다. 공무원들의 안일한 태도와 심사위원들의 무성의한 심사 때문이었다.

그러다보니 언제부턴가 북촌은 사람들 사이에서 '빽 없으면' 들어갈 수 없는 곳이라는 인식이 퍼지기 시작했다. 김경신 대표도 주변 사람들로부터 '빽으로' 들어왔다는 오해를 받으며 살아야했다. 돈으로 북촌에 집을 산 사람들은 물론이고 심지어 같은 예술인들 사이에서도 그는 눈엣가시가 되어야했다.

“산책을 하다보면 간혹 저를 이상한 눈으로 보는 사람들이 있어요. 돈으로 집을 산 사람들이 그래요. ‘저 여자는 어떻게 여기서 살게 됐지’하는 눈치지요. 이 집마저 차지하고픈 욕구가 가득 담긴 눈초리에요. ”
 

 

북촌한옥은 개량을 통해 옛 모습을 다시 찾았다. 하지만 그 '개량'은 오히려 전통 한옥의 장점이 사라진, 그냥 '오래된 집'으로 만들었을 뿐이라고 북촌 예술인들은 말한다. (사진은 본 기사와 관련없음)


북촌 예술가들의 악순환, 우리는 작품을 만날 수 없다

어쨌든 그는 보금자리를 마련하는데 성공했지만 다시 문제가 발생했다. 서울시가 월세금을 요구한 것이다. 서울시가 예술인에게 집을 제공한 것이 아니라 그들을 상대로 '집 장사'를 하고 있는 셈이다. 작품 활동을 통한 소득은 고스란히 월세금으로 넘어갔고 이마저 못내면 '다른 사람에게 주겠다'며 결국 쫓겨났다. 어렵게 터전을 구한 예술인을 기다린 것은 생활고와 끝없는 법정 투쟁이었다.

"진짜 옛날 한옥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

김경신 대표는 한 예술인의 상황을 이렇게 기억한다. 퇴거 위기에 놓인 예술인은 집을 지키기 위한 투쟁을 하느라 작품 활동을 거의 하지 못했다. 작품이 없으니 당연히 수입이 없기 마련. 결국 그는 쫓겨나고 말았다.

집을 지키기 위해 시 공무원들과 싸우고 거기에 집중하다보니 작품을 만들지 못하고 작품을 못 만드니 수입이 없고 수입이 없으니 월세를 못 내고 월세를 못 내니 결국 쫓겨나는 악순환. 새로운 작품을 접할 기회를 잃어버리는 상황이 지금 북촌에서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겨울 난방비와 집세만 합쳐도 거의 160만원 대. 가난한 예술인들의 수입을 넘는 수치다. 여기에 북촌 예술인들의 겨울이 추운 이유가 있다. 이들이 사는 한옥이 대부분 옛 한옥이 아닌, 최근에 지은 '날림' 한옥이라는 것이다. 그 때문에 돈이 아까워도 이들은 하루 종일 난방을 켤 수 밖에 없다.

"이전에 좋은 나무로 지은 한옥이라면 문이 스스로 열리지도 않고 문 사이로 밖이 보이지 않아요. 그런데 지금 보세요. 문 틈으로 밖이 보이죠. 못 쓰는 나무로 그냥 지었다는 증거예요. 서울시가 개발한다고 한옥을 내부를 부수었다가 한옥을 보존한다니까 날림으로 한옥을 다시 만든 거예요. 이걸 보존이라고 할 수 있는지 의문이에요. 다음에 꼭 고희동 가옥 가시면 한 번 보세요. 진짜 나무가 맞는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 있는 사람들은 이런 집마저 노리고 있다.

"삼청동, 인사동이 죽었고 이제 북촌마저..."

김경신 대표는 지금의 북촌을 '아비규환'이라고 정리했다. 돈있는 이들, 예술과 전혀 무관한 이들이 단지 '취미로' 예술한다는 이유로 예술인 행세를 하며 집을 차지하고 예술인들끼리도 '이 사람이 어떻게 집을 차지했는지' 서로 의심하는 곳. 수입도 없고 작품 활동도 제대로 하지 못한 예술인들이 월세를 내지 못해 쫓겨나는 일이 벌어지는, 예술가가 살기 힘든 곳, 가짜 한옥에서 밤바람을 맞으며 잠을 자야하는 곳이 그가 말한 '북촌의 민낯'이었다.

이런 가운데 지난 연말에는 자수 인간문화재 한상수씨의 전수자로 공방을 운영하던 이 모씨는 결국 쫓겨나고 말았다. 이수자로 인정받지 못해 자격미달이라는 이유라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본 한옥의 매력에 푹 빠져서 한국 예술의 길을 스스로 선택했고 한지 공예를 통해 한국의 멋을 전 세계에 알렸던 김경신 대표. 한국인임을 자랑스러워하고 한국의 미를 알리는 것에 큰 보람을 느꼈던, 대한민국을 그 누구보다 사랑한다고 자신했던 그가 결국 마지막에 한 말은 이것이었다.

"서울시의 안일함이 결국 북촌을 망쳤어요. 삼청동이 죽고, 인사동이 죽고, 이제 북촌마저 가짜가 판을 치면서 죽어가고 있어요. 저는 이제 이 집에, 이 나라에 미련이 없어요. 이 집에서 나가라해도 이제는 버티지 않을 거예요. 예술가는 자기 작품을 인정해주는 곳이 결국 고국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예요." 그러나 한편으로 김 대표는 이 부당함에 맞서기 위해 목숨까지 걸겠다는 불편한 속내도 털어놨다.

북촌의 서울시 한옥이 가진 문제점은 비단 이것뿐 만이 아니다.

믿기 어려운, 아니 '믿고 싶지 않은' 북촌 이야기를 들은 뒤 공방을 나섰을 때 한옥 골목에는 한 외국인 남녀가 사진을 찍으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이 본 한옥이 사실은 이전과 다르게 지어진 날림 한옥이라고 생각하니 정말 마음이 착잡했다.
비단 공방만의 문제가 아니라 게스트하우스 등 서울시가 운영하고 있는 북촌 한옥의 문제점들이 하나 둘 드러나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의 북촌은 과연 부끄러운 '민낯'을 감추며 살아갈 수 있을까? 이제 그 궁금증을 하나씩 하나씩 풀어갈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