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칼럼] 라스베가스에서 얻어낸 선건축, 후이론이 끼친 현대건축의 새로운 파라다임
[건축칼럼] 라스베가스에서 얻어낸 선건축, 후이론이 끼친 현대건축의 새로운 파라다임
  • 최혜정 국민대 건축학과 교수/건축가
  • 승인 2013.02.20 12: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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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당시 예일대학교 대학원에서 재직 중이었던 건축가 부부 로버트 벤츄리(Robert Venturi)와 데니스 스캇 브라운(Denise Scott Brown), 그리고 그들의 협력 파트너였던 스티브 아이즈너(Steven Izenour)가 공동으로 이끌었던 설계스튜디오의 주제는 ‘라스베가스’였다. 한 학기 동안 라스베가스를 분석하고 탐구하는 것이 스튜디오의 핵심인 것. 하나의 건축물을 설계하고 완성시키는 전형적인 설계 스튜디오와는 다소 다른 ‘리서치 중심’의 스튜디오가 그들이 제시한 형식이었다. 그들은 학생들과 함께 라스베가스에 답사를 다녀온 후, 학기 내내 연구를 했던 모든 자료와 결과물을 1972년 책으로 발간하게 되었는데, 이 책은 현대건축에 한 맹점을 찍는 책이 된다. 이름하여 ‘라스베가스로부터의 교훈’ · Learning from Las Vegas.

미국의 도시 중 라스베가스가 갖는 위치는 다소 특별하다. 사막 한 가운데에 마치 오아시스처럼 솟아나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호텔, 모텔, 쇼핑몰, 카지노들이 그러하며, 온전히 쇼핑, 도박, 여가 등 자본과 소비의 정점들을 집약시켜 놓아 그 자체가 문화화 된 장소라서 더더욱 그렇다. 사막의 기후로 인해 모든 시설이 최첨단 냉방시설과 실내이동이 가능하게 설계된 것도, 자동차의 이동과 주차가 중요하고, 교회는 종교적 의식이 아닌, 다른 지역에서 허락되지 않는 결혼을 하기 위해 존재하는 예식의 공간이며, 돈의 보유가 사회적 지위보다 더 중요한 것도 이 도시가 가지는 ‘유별남’이다. 오랜 시간과 공간을 거쳐 형성된 우리가 상상하는 도시사회와는 분명히 다른 원리들로 겹겹이 쌓여있는 이 도시공간은, 수직적 사회구조가 아닌 돈이 매개가 되어 수평적 구조를 갖추고 있으며, 라스베가스라는 사회와 그 문화, 그리고 그 안에서 물질적으로 드러나는 현상 안에는 건축을 포함, 분명 그 특유의 성격들이 내재되어 있다.

당시 벤츄리 부부와 학생들은 라스베가스의 주요 카지노와 호텔들이 밀집되어 있는 메인 도로 - ‘스트립(Strip)’에 대한 관찰과 분석에 집중하였다. 1972년 출판된 이 책의 공식적인 제목은 ‘라스베가스로부터의 교훈 - A&P슈퍼마켓 주차장의 중요성’(Significance of A&P Parking Lots)이었고, 이후 이 책은 1977년 추가되어진 내용과 함께 재판이 발행되면서 ‘라스베가스로부터의 교훈 · 건축형태의 잊혀진 상징성’(Forgotten Symbolism of Architectural Form)으로 수정되었다. 바뀌기 전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아름답고 세련된 건축물 대신, 주차장, 카지노, 모텔, 드라이브-쓰루(drive-thru), 도로 옆의 퇴폐적 간판 등의 “어글리(Ugly)”하고 보편적인 것에 대한 관찰이 주 내용을 이루고 있다. 이 책은 크게 두 파트로 나뉘어진다. 첫 번째 파트는 라스베가스의 스트립에 대한 관찰과 분석을 통해 도시공간의 공간구조를 드러내고자 하는 도큐멘테이션(documentation)이고, 두 번째 파트는 현대의 건축유형을 크게 두 부류 - 상징성을 지닌 건축물과 장식된 간판(“Duck” vs. “Decorated Shed”) 으로 나누면서 이 둘의 비교를 통해 현대건축의 실상에 대해 고찰해보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의 근본적인 관점은 라스베가스의 스트립을 공간이 아닌 하나의 ‘현상’으로 보았다는 점이다. 스트립에 세워진 건축물들, 간판들, 주차장 들…을 직접적인 건축으로 보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유형과 형태들이 소통을 담당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의된 공간으로의 건축이 아닌 소통으로의 건축, 즉, 건축의 역할이 공간의 제공대신 소통과 전언의 수단과 기호로 작동하고 있는 현상이 바로 라스베가스에서 그들이 목격한 단상이다. 화려한 스타일과 베껴진 양식들과 장식들은 바로 이러한 소통을 위한 상징적인 것이고, 공간자체의 완성이나 구현을 위한 것은 아니다라는 것이다. 항상 공간을 물질적으로 정의하고 구현하는 작업과 진행에 익숙한 건축가들에게 이러한 현상이나 해석은 생소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벤츄리가 이 책을 통해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은, 건축이 구현하는 다양한 역할들이 분명히 존재하고 있고, 건축의 물성과 속성에 천성적으로 내재되어 있는 이러한 복합적 성격을 건축가들이 이해, 인지 하고 작업에 응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두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건축을 책임지는 건축가들이 스스로 익숙한 것들로 인해 간과하는 것들에 대한 일침이며, 그 뒷면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것들, 혹은 암묵적으로 무시되었던 것들에 주의깊게 관찰을 해보고 사유해 보자는 메시지가 남는 책이다.

결과적으로 이 책은 라스베가스라는 산물과 현상을 목격하고 분석하여 이론과 원리를 도출해내고 케이스를 만들어내는 선건축-후이론의 선두적 케이스가 되었다. 선이론-후건축으로 귀결되어지는 이전 건축작업의 양상에 대한 파라다임의 전환을 야기시켰으며, 현재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현대건축가들의 작업 또한 이러한 선건축-후이론의 스토리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어쩌면 점점 더 복잡해지고 다원화 되어가는 현대사회와 공간에 대한 이해와 그 고찰이 그만큼 중요해지고 있다는 뜻이며, '어떻게 바라보는가'의 문제가 '무엇을 만들 것인가'의 질문에 대한 틀을 다지고 그 의미와 가치를 가중시키는 것이 건축의 사회적 역할임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 건축가 최혜정, 미국 렌슬리어 공과 대학과 콜럼비아 건축 대학원을 졸업하고 뉴욕과 서울에서 활동 중이다. 현대 국민대학교 건축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며, 2011 광주 디자인 비엔날레 큐레이터 등의 프로젝트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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