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호선의 문화비평] 백남준과 만난 이야기 VIII - 국립현대미술관의 <다다익선>
[천호선의 문화비평] 백남준과 만난 이야기 VIII - 국립현대미술관의 <다다익선>
  • 천호선 컬쳐리더인스티튜트원장/전 쌈지길 대표
  • 승인 2013.02.20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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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호선 컬쳐리더인스티튜트원장/전 쌈지길 대표
1986년 문화예술국장으로 재직하면서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의 건립 현장을 둘러 보는 기회가 있었다. 뉴욕에 오랫동안 근무하였던 나로서는 미술관의 중심 통로 부분이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의 축소판과 같이 나선형으로 디자인되었음이 눈에 거슬렸다. 세계적인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설계로 뉴욕의 명물이 되어있는 구겐하임은 통로를 따라 올라가면서 전시작품을 감상하도록 되어 있는데, 여기는 그냥 통로로만 만들어져 있을뿐만 아니라 그 통로를 꼭 거쳐야 할   필요성도 확실치 않아 훗날 말썽의 소지가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로서는 이 공간 처리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백남준씨 밖에 없을 것으로 판단하였고, 얼마 후 서울에 온 백선생과 같이 다시 미술관 현장으로 달려갔다. 백남준씨 의견도 나와 같았다. 백선생은 즉석에서 러시아 구성주의 작가 타틀린의 나선형탑 <제3 인터내셔날 기념비, Monument to the Third International>와  유사한 구조물 설치를 제안하면서, 제목도 <타트린에게 바치는 송가>가 좋겠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백선생은 실제 설치작업에 들어가면서 제목을 <다다익선>으로 바꾸었다. 백선생은 이러한 작업을 위한 특별예산 마련이 어려운 사정을 충분히 이해하고, 사례없이 작품 제작을 하겠다고 약속하였고, 건축 구조설계도 고등학교 친구 김원씨가 무료 봉사키로 해서 이웅희 당시 문화공보부장관의 결재를 받아 국립현대미술관장에게 작품 제작을 지시할 수 있었다. 작품 제작에 필요한 모니터는 미술관을 건립한 대우에서 기증받으려 했으나, 백선생이 맺은 삼성과의 특별한 약속으로 삼성전자에서 기증 받을 수 있었다.

백선생은 수시로 현대미술관을 드나들면서 <다다익선>을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를 발전시켰다. 결국 건물 공간과의 조화를 위해 뉴욕 휘트니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V-ryamid>와 파리 퐁피두센터 광장에 전시되었던 <Tricolor Video>의 두 가지 요소를 갖춘 작품, 즉 올려 보아도 좋고, 내려 보아도 좋은 작품으로 구성하고, 10월3일 개천절을 뜻하는 1003개의 모니터로  초거대 나선형탑을 새운 것이다.

88년에 건립된 <다다익선>은 88 서울올림픽을 동반한 백남준의 우주오페라 3부작 <손에 손잡고, Wrap Around The World>의 주요 무대가 되었다. 무상으로 <다다익선> 작품 제작을 의뢰하게 된 나로서는 백선생에게 간접적이나마 보상해  줄 수 있는 방법을 찾다가, 현대미술관으로 하여금 백선생을 전속작가로 계약한 뉴욕 홀리 솔로몬 갤러리에서  앤디 와홀 초상화 작품을 구입토록 하였다. 또한 대우그룹의 김우중회장 부인 정희자씨와 한화그룹의 강태영여사를 만나 백선생의 작품을 구입토록 부탁하였다.

백남준의 설치작품 중에서 세계 최대 규모의 <다다익선>은 지난 25년간 그 자리를 지켜오면서 국립현대미술관의 상징이 되어왔다. 그러나 건립 초기부터 비데오아트라는 새로운 미술에 대한 미술계의 반발은 거세었고, 역대 미술관장들은  <다다익선>을 철거하라는 압력에 시달려왔다. 거기에다 브라운관 모니터의 노화문제도  <다다익선>의 계속 존치에 어려움을 초래하고 있다. 과거 2차레 모니터를 대대적으로  교체하였으나, 모니터의 내구연한 10년이 다시 도래하였으며, 이 모니터는 이미 단종된 제품인데다 예비 모니터도 고갈된 상황인 것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작년 11월 ‘다다익선 보존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주제의  학술회의를 열었다. 백남준 작품 설치와 수리 담당기술자 이정성씨는 모니터의 LCD 대체 방안을 찬성하고 있는 반면, 국립현대미술관 정엽학예팀장은 <다다익선>의 해체 보존방안을 제시하였으며, 국민일보의 이광형 미술담당기자는 ‘백남준 다다익선 살리기’ 제하의 기사(2012,12,07)에서 삼성전자로 하여금 <다다익선>을 위하여 브라운관 모니터를 재생산토록 하자는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