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2013년 1월 10일부터 15일까지 한국공연단(비영리단체 디온, 최창주 대표)의 실행위원장 자격으로 일본을 다녀왔다. 양국의 대표적인 전통예능인들은 「한국과 일본이 자아내는 전통예술의 항연」(紡ぎ合う日韓の古典藝能)이라는 제목으로 두 차례의 공연을 가졌다. 12일 오후에는 도쿄의 기요이홀, 13일 오후는 요코하마의 노악당에서 각각 공연했다. 한국측의 김선국과 김신아, 일본측의 무토 마코토(武藤誠)와 사토 시즈에(佐藤靜惠)가 실무를 맡았다. 한국에서는 양성옥의 최승희 무용 3편 및 ‘비나리’ 무용, 나영선(피리), 류경화(철현금), 김영길(아쟁), 김해숙(가야금)의 연주, 일본에서는 후카미 사토미(노래, 소), 도키와즈 모지베(샤미센), 하기오카 쇼인(소), 미즈키 유카의 무용 2편, 그리고 마쓰리곡(축제)의 양국 합주 등, 2시간에 걸친 공연이었다. 일본언론들은 이번 공연의 의의를 대서특필해 주면서 양국의 변함없는 우호를 북돋아 주었다. 공연을 후원해 준 문화체육관광부와 일본의 오구라 카즈오(小倉和夫, 전국제교류기금이사장, 현일본올림픽추진위원장) 실행위원장에게 감사한다.
이번 공연은 일찍이 일본에서 일어난 대지진과 대쓰나미에 희생된 분들을 위로하려는 데서 발단되었다. 필자가 근무했던 동북대학 센다이의 동북지방에서 많은 희생자가 나왔는데, 필자는 그들의 영혼을 조금이라도 위로해 주고 싶었다. 아울러 지난 10여 년간의 한류를 지켜보면서 양국인의 이해가 매우 피상적이라는 데 허전함을 느꼈다. 문화의 양이 서로 폭주하는 데 비해, 문화의 질에 대한 이해는 아직 너무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필자는 문화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고전과 전통을 능가하는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특히 대중적인 공연예술이 범람하는 이 시대에 한일 고전예능만큼 문화의 깊이와 독창적인 양식을 일깨우는 것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국내보다 일본에서 더 유명해진 최승희의 무용을 재공연한 것도 이런 의도였다.
세계 어느 곳이든 이웃나라 사이에는 갈등과 분쟁이 끊일 날이 없었다. 오늘날 한국과 일본, 한국과 중국, 남한과 북한의 관계도 예외가 아니다. 국가외교야말로 이런 문제를 조정, 타협, 해결하는 공식적인 수단이다. 정치지도자에게 국민들이 기대하는 것은 바로 외교능력이 아니던가. 그러나 민간외교 또한 국가외교보다 무력하지 않았다. 경우에 따라서는 민간외교가 국가외교를 능가하는 효과를 거둔 경우도 적지 않았다. 특히 문화외교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가장 첨단적이고 효율적인 역할을 해왔다. 필자는 오랜 세월 외국인들과의 비공식, 공식의 문화교류를 통해 이런 사실을 깊이 깨달았다. 이번 공연에 대하여, 아사히신문에서 ‘양국의 정치를 초월한 문화교류’라는 표현을 쓴 것을 새삼 음미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우리의 고전과 전통예술이 장차 한류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임을 다시 한 번 강조해 두고 싶다. 대중예술은 동시대의 사람들을 위해 즐겁고 유익한 문화임에는 틀림 없지만 쉽게 통속화되고 빨리 사라지는 속성을 지녔다. 이런 속성에 훌륭한 가치관과 건전한 인간성을 북돋고 오랜 감동력을 유지시키는 요소가 바로 고전과 전통예술이기 때문이다. 고전과 전통예술이야말로 민족적인 정체성의 표본이다.
저작권자 © 서울문화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