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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신응수 대목장(중요무형문화재74호)] “숭례문 복원, 전통 기법 그대로 따라”
모양새 꼼꼼히 잡아주고, 장기보존에 신경 써
2013년 02월 21일 (목) 11:50:58 인터뷰 이은영 편집국장 / 글 윤다함 기자 press@sctoday.co.kr

     2008년 2월, 방화사건으로 소실된 숭례문의 복원공사가 어느덧 끝을 보이고 있다. 지난 14일 기자단에게 공개된 숭례문은 공정률 96%로, 주변정비사업 및 관리동 건립만을 남겨놓은 상태이다. 일반에는 오는 4월 공개될 예정이다. 화마에 허망하게 무너져 버린 숭례문을 다시는 못 볼 것 같았지만 지난달부터 공사 가림막이 철거되면서 숭례문은 그 고운 자태를 드러냈다.

     이렇듯 예전 모습 그대로의 숭례문을 다시 볼 수 있는 건 신응수 대목장(중요무형문화재74호)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숭례문 복원 중 치목, 건설, 감리 등 나무로 하는 모든 일을 총괄한 그는 숭례문과의 인연이 깊다. 열아홉의 나이로 숭례문 중수 공사에 참여하며 첫 인연을 맺어 그때를 계기로 목공은 단순 밥벌이 수단에서 그의 평생의 업이 된다.

     그가 없었다면 오늘날 우리가 보는 궁궐, 사찰 등 문화재와 한옥의 대부분은 아마 제대로 된 형태를 갖추고 있지 않거나, 전통방식을 벗어나 있을지도 모른다. 그의 타고난 손과 장인정신으로 우리 문화재는 옛 방식 그대로 복원, 중건 또는 신축될 수 있었다.

     종로구 창성동에 위치한 그의 사무실에서 50년 목수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1960 대목 이광규의 문하생으로 봉원사 요사 및 종각 공사 / 1962~1963 숭례문 중수 공사 / 1985~1986 창경궁 문정전 및 정전, 회랑 복원 공사 / △1989~1990 청와대 대통령관저 신축 공사 / △1996~2000 창덕궁 인정전 외행각, 진선문, 숙장문, 회랑 복원 공사 / 2007 경복궁 광화문 권역(광화문, 수문장청, 영군직소 외 2동) 공사 / 2008 충남 부여 무량사 보수 외 다수 △2007 제10회 일맥문화대상 나라빛냄상 / 2004 파라다이스상 문화예술부문 / 2002 옥관문화훈장 / 2001 대통령표창 / 1999 만해예술상 수상

-숭례문 복원공사가 거의 완공돼 가고 있다. 최종 공개는 오는 4월 중에 한다고 들었다. 방화라는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거의 전소되다시피 했었는데, 복원하면서 가장 신경 쓴 점은 무엇이며, 달라진 점이 있다면 알려 달라.
“뭔가 바뀌었다기보다는 1963년에 준공되고 50년 넘게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은 흐트러진 모양을 튼튼히 잡아놨다고 보면 된다. 무르거나 처진 처마선을 잡아주고, 보강했다. 특히 장기보존에 신경을 썼는데, 상층 같은 경우는 90프로 이상이 탔기 때문에 거의 새나무로 지었다. 나무는 교체됐지만 기법만큼은 모두 전통 기법을 그대로 따랐다.”

-1962년 숭례문 중수 공사에 참여했다. 2008년 숭례문 방화사건 때 마음이 어떠셨나.
“전소되는 모습을 직접 다 목격했다. 그걸 어찌 말로 설명할 수 있나. 모든 국민이 똑같은 심정이었을 거다. 숭례문 공사할 때, 지붕에서 선생님께서 호통 치시던 모습이 더해지며, 마치 선생님이 불길 속에 계신 것과도 같았다. 활활 타는 모습을 5시간동안 지켜보는데, 순식간에 와르르 무너져버리더라. 지금도 생각하면 너무나도 참담하다.”

-2010년 광화문 현판이 균열돼 부실공사, 책임전가 문제 등 논란이 많았다. 이에 대해 당시 설명 부탁드린다.
“당시 나는 나무만 제공하면서 현판을 어떻게 짜야하는지만 말해줬다. 이미 건조된 나무를 줬지만, 굉장히 큰 현판이기 때문에 다시 한 번 인공건조를 거쳐야 했다. 하지만 문화재청에서는 공장에다가 그냥 치수에 맞춰서 만들라고 달랑 주문을 넣으니, 공장에서는 그게 어떤 현판이고,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를 어찌 알겠나. 그리고는 각자장이 그 큰 나무를 본드로 이어붙인 거다. 애초에 나무를 제공하면서 문화재청 측에 현판 짜는 법을 말해주니 듣는 둥 마는 둥 관심이 없더라. 그래서 난 나무만 제공 후에 발을 뺐다. 그리고 막상 사단이 나니까 각자장은 나무가 나빠서 이렇게 됐다고 내 탓을 하는데, 그게 말이 되나. 장인이라면 책임을 질 줄 알아야 하는 법인데, 책임을 지지 않고, 나무 탓을 하고 있는 거다. 오늘(1월17일) 오전 현판 관련 회의에서 결국 다른 각자장이 맡기로 결정이 났다.”

   
신응수 대목장이 직접 만든 광화문 목조 모형.

-대목장님의 손을 거쳐 간 문화재의 수는 엄청나다. 그 중 가장 애정이 가는 게 있다면 무엇인가?
“20년 동안 진행한 경복궁 공사 중에서도 광화문 복원에 가장 신경을 많이 썼다. 일제강점기 당시 광화문이 해체될 때 일본인이 그려놓은 도면을 봤는데 상식 밖이었다. 치수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고 봤다. 큰 무게를 이고 있어야 하는 기둥의 둘레가 너무 얇다거나 하는 식이었다. 참고해야할 도면이 잘못됐으니 일이 아주 복잡해질 수밖에 없었다. 측량이 잘못된 부분을 하나하나 살펴가며 바꿔가야 했다. 기둥도 세 번씩이나 키우고, 서까래도 바꾸는 등 손을 안 댄 곳이 없을 정도다. 또 짓다보니 처음 참고한 사진이 본래 동대문이었다고 밝혀져 다시 공사하고…. 그러니 시간이며, 돈이며 얼마나 들었겠나. 그렇다고 공사비가 더 나오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처음 지급된 공사비 내에서 완공하느라 너무 힘들었다. 만약 다른 도편수가 했다면 나중에 다시 지어야 했을지도 모르겠다. 잘못된 도면만 보고, 확인도 안 하고, 도면대로 만들었더라면 편했는지는 몰라도 장인이라면 그러면 안 되는 거다. 이렇게 내가 애착을 갖고 힘들게 만들었는데, 마지막에 현판 때문에 마무리가 잘못 지어졌다. 참으로 안타깝다.”

-전통 건축에 어떻게 관심을 갖게 됐으며, 어떻게 시작하게 됐는지도 궁금하다.
“처음에는 단순한 밥벌이 수단으로 일반 한옥 짓는 걸 배웠다. 그저 단순 기술이었다. 그러다가 봉원사 공사에서 이광규 선생님을 만나게 돼 숭례문 공사에도 참여하게 되면서 큰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좋은 스승님을 일찍 만난 걸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문화재 복원 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점이 있다면?
“말 그대로 복원이다. 복원은 짓는 것과는 다르다. 옛날에 했던 걸 연구하고 그대로 지어야 한다. 복원과정에서 작은 무언가라도 잘못됐다면 다시 원형대로 고쳐야 한다. 원형보존이 최고이기 때문이다. 뒤늦게라도 새로운 자료가 발견돼 이미 해놓은 게 잘못된 경우일 때는 다시 해야 한다. 아니면 복원의 의미가 없지 않겠나. 경복궁 복원공사에서도 그런 경우가 있었다. 이 모든 걸 알아야하고 행해야하는 데는 모두 장인의 몫이다. 그리고 신축할 때는 오래토록 남을 수 있게 지어야 하는 게 중요하다. 본디 집이란 건 화재나 자연재해가 아닌 이상 계속 남는다. 목재는 본디 천년을 간다고 하는데…. 내가 지은 집이 없어지면 내 이름도 없어지는 거다. 건물이 오래 남아야 내 이름 역시 후대에 남을 것 아닌가.”

-신축한 대표적인 건물이 있다면 알려 달라.
“사찰들 많이 했다. 단양 구인사 사천왕문, 청태종 구인사 대조사전, 분당 대광사 대불보전 등…. 특히 대광사 미륵보전은 200평으로, 190평인 근정전보다 더 크다. 그게 3층으로 올라갔으니 큰 건물이다. 또 뉴욕 한마음선원 등 해외에도 지었다. 일반인들 집도 여럿 했다.”

-의뢰고객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의뢰비용이 어마어마할 거란 생각이 드는데….
“평범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돈이란 일을 열심히 하다보면 따라오는 거라고 생각한다. 무조건 비싼 비용을 받거나 하지 않는다.”

-지난해 ‘대목장 신응수의 목조건축 기법’ 책을 출간하셨다. 책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눈물을 흘렸다고 하셨는데, 책에 대해서 말씀해 달라.
“오래전부터 생각하고 있던 일이었다. 전통 기법에 대해 상세히 기술해놓은 책이 없더라. 간헐적으로 다룬 책은 있었지만, 전체를 아우르는 건 없었다. 책 출간에 대해 생각은 계속 갖고 있었지만, 그게 생각처럼 쉽지가 않았다. 더 나이 먹기 전에 해야겠다고 다짐하고 몇 년에 걸쳐서 원고를 준비해 나온 거다. 나오기까지 너무도 힘든 과정을 거쳤다. 내가 이 책만 붙들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일하는 와중에 틈틈이 준비했다. 거기다가 원고 감수 볼 사람도 나밖에 없었고 말이다. 이 책은 우리 목조기법이 집대성된 책이다. 내 목수인생, 장인인생에서 기념비적인 책이니 어찌 눈물이 안 흐를 수 있겠나.” (책 표지는 신응수 대목장이 1980년대에 직접 연필로 그린 그림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편집자주)

-강릉에 목재소를 직접 운영하고 계신다. 지난해 말 기자가 가서 둘러보기도 했는데, 250년 이상 된 나무 등 좋은 목재가 많더라. 목재소를 직접 운영하시는 까닭은 무엇인가?
“20여 년 전부터 운영하고 있다. 복원하고 신축해야하는 중요 건물, 문화재는 많은데 그만한 나무들이 부족하고, 또 그런 나무를 키울 수 있는 곳이 없더라. 당시 청와대 관저 신축 공사를 맡았는데, 거기에 들어갈 쓸 만한 나무가 부족했다. 거기에다가 몇 년 후에 경복궁 복원공사까지 한다는 얘기가 나오길래 안 되겠다 싶어서 목재소를 차린 거다. 직접 벌찰 다니고, 문화재관리국이랑 산림청이랑 얘기해서 벌목해오기도 하고 그런다. 가장 오래된 나무는 300년 된 것도 있고, 100년 된 건 아주 많다.”

-그렇다면 좋은 나무란 어떤 나무인가?
“좋다고 말하려면 아무래도 곧아야 한다. 건물에 들어가는 목재도 대부분 직재다. 또 수령이 오래돼야하고 나이태가 촘촘하니 좁아야 좋다.”

-요즘 한옥 열풍이다. 정부에서도, 일반에서도 한옥에 관심을 갖고 개발에도 힘쓰고 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며, 또 오늘날 한옥이 어떠한 형태로 자리 잡아야 한다고 생각하나?
“한옥을 무조건 전통 그대로 따르라고 말하고 싶진 않다. 그래도 변화가 있되 기본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본이 없으면 그건 한옥이 아니다. 몇 십 년 후에 신한옥은 쓰레기에 불과하게 될 거다. 겉만 흉내 내서는 한옥이라고 부를 수 없다. 어느 정도 기본 틀은 갖춰야 한다. 나무도 제대로 써야하고, 기와도 그렇고, 벽에는 진흙을 발라야 하는 법인데, 값싼 수입목으로 기계로 집을 짓고 있으니 그게 될 일인가. 한옥의 기본은 갖추고, 실내 난방시설 등을 현대식으로 손보는 거야 상관없지만, 겉껍질만 한옥 비슷하게 흉내 내고는 신한옥이라 부르는 것도 거북하다.”

   
직접 제작한 숭례문 목조 모형 앞에서 포즈를 취한 신응수 대목장.

-국내에서는 여전히 문화재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고, 홀대받고 있다. 이에 대해 한 말씀해 달라.
“홀대받는 거 맞다. 전문가를 홀대하니 안 되는 거다. 장인들에게 자문 받고 얼마든지 활용할 수 있는데도 그런 게 전혀 이뤄지지 않으니까…. 모든 문화재는 장인들 손에서 이뤄지는 거다. 정부는 장인들의 말을 귀담아듣고 활용할 수 있어야 할 거다.”

-앞으로의 꿈은 무엇인가?
“황룡사9층목탑을 복원하고 싶다. 9층 목탑이라는 중요성이 있으니까 이를 잘 살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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