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두식 홍대교수 타계, 미술계 큰 충격
이두식 홍대교수 타계, 미술계 큰 충격
  • 이은영 기자
  • 승인 2013.02.23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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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미술계를 위해 더 할 일 많은 사람인데...”

◆장례식장 강남성모병원 31호

이두식 홍대교수(서양화가)가 오늘 새벽 타계했다. 향년 66세. 사인은 심장마비로 알려졌다.

미술계는 현재 크나큰 충격에 빠졌다.

고인은 불과 어제와 그제 제자들이 마련한 퇴임축하연회와 퇴임기념 전시에서 예의 쾌활한 웃음으로 선후배, 제자, 지인들에게 “앞으로도 죽을 때까지 평생 그림과 함께 하겠다”고 다짐했었다.

▲지난 21일 고인이 된 이두식 교수(가운데)의 정년퇴임식에서 친구들과 케잌커팅을 하고 있다.손진책 국립극단예술감독(좌측 첫번째), 가수 김세환(좌측 두번째), 가수 조영남(이두식 교수 옆), 정경연 홍대디자인학과 교수(우측 두번째), 가수 이장희(우측 첫번째) 

고인은 지난해 본지 서울문화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국내작가들, 크게 멀리 넓게 보고 다작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처럼 퇴임축하 자리에서도 “내 그림은 높은 빌딩에서 걸리는 것도 좋지만 시골 농가에도 걸려서 많은 사람들이 위안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평소 자신의 그림관을 피력했었다.

박래경 한국큐레이터협회 명예회장은 "우리 미술계를 위해 앞으로 할 일이 참으로 많은 분인데...갑작스런 타계소식이 믿기지 않는다"며 안타까워 했다.

▲이두식 작, 잔칫날

고인의 제자이자 홍대여성미술인협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서양화가 이금희씨는 "어제 전시 끝나고 뒷풀이 식사자리에서 즐겁게 담소하고 9시 쯤 자리를 파하고 나왔었는데..."라며" 믿기지 않는다"고 기자와 통화에서 재차 고인의 타계를 확인했다.

고인은 1947년 경북 영주 출생으로 홍익대 미술대학과 대학원을 나왔다. 1960년대 이후 40여 년간 한국 추상화의 대가로 꼽혀왔다. 일본 교토조형예술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지난해 5월 선화랑에서 열린 이두식 교수 초대전시회에서 작품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1984년 모교 회화과 교수로 부임한 이래 29년간 후학을 양성했다. 홍익대 미술대 학장, 제17대 한국미술협회 이사장, 외교통상부 미술자문위원, 한국 대학배구연맹 회장 등을 지냈다. 2007년부터 부산비엔날레 조직위원장을 맡아왔다.

고인은 오는 28일 정년퇴임을 앞두고, 22일 홍익대 현대미술관 2층에서 정년퇴임 기념전인 ‘이두식과 표현·색·추상’ 전시를 개막했다.

이와함께 오는 5월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전관에서 그의 미술인생 회고전이 예정돼 있다.



장례식장은 서울건대병원에 임시 안치한 후 서초구 반포 강남성모병원(31호)으로 옮겼다. 유족으로는 아직 미혼인 2남 이하린(미술인), 이하윤(자영업)이 있다. 발인은 26일 오전 7시. (02-2258-5940)

참고로 아래는 지난해 5월 선화랑 전시 중 본지 <서울문화투데이>와 가진 인터뷰의 발문 부분을 소개한다.

(운동화)를 신고 등장했다. 여전히 ‘씩씩한 열정’을 가진 ‘팔팔한 청년 이두식’(66세)이었다.

“삼매경에 들어가지 않으면 작업할 수가 없죠. 거의 매일 4시간 이상은 작업에 몰두합니다”

그러나 그는 전날 과음을 하거나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은 작업을 하지 않는다. 작품에 들어가기 전 명상을 통해 영과 혼을 정갈히 한 다음 작업을 한다는 철칙을 한 번도 그른 적 없이 묵묵히 실천해 오고 있다. 그는 또 뭔가 하고자하는 열망이 있으면 그를 위해 한 번도 흐트러짐이 없었다고 한다.

이 교수는 대학 시절, 대한민국 미술대전 특선, 신상전 최고상, 제7회 문공부 신인예술전 장려상 등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데뷔했다. 초현실주의 화풍 ‘생의 기원’으로 오리진 멤버로 활동하며 당시 한국미술계에 신선한 돌풍을 몰고온 것이다. 그의 작품은 음악적 요소와 춤을 추는 듯한 리듬감이 생생하게 느껴지며, 화면 대부분을 청·적·황·백·흑의 화려한 오방색으로 장악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처럼 화려한 작품은 관람객에게 신명과 흥을 북돋아주고 잠시나마 어려운 현실을 잊게 해준다.

2000년 이탈리아 로마의 지하철 플라미니오(Flamonio)역에 동양인으로 유일하게 그의 그림이 벽화로 제작되기도 했다. 이렇듯 그는 한국을 넘어 아시아의 대표적인 추상표현주의 작가로 인정받으며, 미술계뿐만 아니라 문화예술계 전반에서 문화외교관, 미술교육자, 행정가, 국내외 미술자문위원 등으로 종횡무진 활동해 왔다. 현재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교수로서 후학 양성과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