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정부 마지막 청사 '경교장' 국민 품으로
임시정부 마지막 청사 '경교장' 국민 품으로
  • 권지윤 기자
  • 승인 2013.03.04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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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 서거 당시 총탄자국, 속옷 밀서, 혈의 등 아픈 역사 고스란히 전달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마지막 청사이자 백범 김구가 약 4년여 간(1945.11.23~1949.6.23) 거주하며 통일운동을 하다 서거한 역사적 현장인 경교장(京橋莊)이 64년 만에 국민 품으로 돌아왔다.

복원된 경교장 전경

서울시는 사적 465호인 경교장을 3년여 간에 걸쳐 원형 복원해 지난 2일부터 국민들에게 무료 개방했다.

경교장은 1945년 11월 중국에서 환국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청사로 사용하던 곳으로, 김구 서거이후 미군주둔지, 주한 대만대사관저 등으로 사용되다 1967년 고려병원(현 강북삼성병원)이 매입해 병원 건물로 사용해왔다.

이후 역사적인 유적인 경교장을 복원해야 한다는 여론과 시민사회의 문화재 지정운동이 본격화 되면서 서울시와 삼성병원이 오랜 협의를 거쳐 소유는 그대로 두고 전체 공간만 복원하는데 합의, 경교장 내 모든 병원시설을 이전 완료하고, 각계 전문가로 구성된 복원자문위원회의 자문을 거쳐 복원 설계 및 문화재청 현상변경 허가를 완료했다.

시는 복원된 경교장의 공간 복원을 통해 당시의 생활 모습은 물론 김구 서거 당시의 총탄자국까지 생생히 재현했을 뿐 아니라, 속옷에 빼곡히 쓰인 밀서나 암살 당시 입었던 혈의(血衣)까지 전시해 뼈아픈 역사까지 후대에 고스란히 전달하고자 했다고 밝혔다.

다만 오랜 기간 대사관 및 병원시설로 사용되면서 변형된 내부 평면을 철거했다.

1층 귀빈응접실(국무위원회실)
 
이를 위해 시는 관련 사료 및 지적도, 사진은 물론 증언, 전문가 등의 자문과 고증 등을 꼼꼼히 거쳤다.

예컨대 원형이 남아 있지 않은 부분은 ‘조선과 건축(『朝鮮と建築』1938년 8월호)’에 수록된 경교장 도면과 『LIFE』지의 사진을 근거로 원형 복원했다.

또한 각 실 전시의 핵심을 이루는 가구와 커튼 재현에 있어서도 경교장에 거주했던 유족 증언(김구 차남 김신)과 전문가 자문을 거쳐 색상, 문양, 재질까지 꼼꼼히 결정했다. 직물도 기성제품을 사용하지 않고 새롭게 제직(製織)하는 과정을 거쳐 원형으로 복원하고자 했다.

경교장 전시 역시 전시복원자문위원회의 자문을 통해 『LIFE』지의 사진을 근거로 임시정부에서 사용하던 당시의 모습대로 재현하는데 역점을 뒀다.

이렇게 복원된 경교장은 총면적 945㎡로 건물 1동에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다.

경교장 입구로 들어서면 바로 연결되는 지상 1층에선 임시정부의 공식적인 공간을 엿볼 수 있다. 1층은 각 실 천정부가 건축 당시의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어 원형을 훼손하지 않고 보존처리를 거쳐 그대로 되살렸다.

국무위원회 등 임시정부의 회의가 개최됐던 '응접실', 임시정부의 대외 홍보관계 등을 담당했던 '선전부 사무실', 공식적인 만찬이 개최됐던 '귀빈식당'으로 구성됐다.

입구에서 왼편에 자리한 응접실은 환국 후 임시정부의 첫 번째 국무위원회가 개최됐던 곳으로 당시의 회의 장면을 사진을 통해 전시했다. 또, 천정에서 발견된 2층 벽난로 흔적도 그대로 볼 수 있다.

오른편엔 임시정부의 대외적인 홍보를 담당하던 선전부가 주로 활동하던 선전부 사무실이 자리한다. 여기엔 김구와 엄항섭(선전부장), 선우진(비서) 등 경교장에서 오랫동안 활동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 전시했다.

이곳은 임시정부 청사가 들어서기 전인 1938년 건립 당시 당구실로 조성, 1945년 임시정부 환국 직후에도 ‘당구실’로 불렸으나 기능은 선전부 활동이 주로 이뤄졌기 때문에 선전부 사무실로 이름했다.
 
오른쪽 안쪽에 자리한 귀빈식당에선 1945년 12월 2일 김구 주석과 광복을 맞아 고국에 돌아온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들이 드디어 한자리에 모여 따뜻한 저녁식사를 했던 장면을 요인들의 음성으로 재현, 역사 속 한 장면을 오늘의 현실처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도록 했다.

한편, 1층 중앙부에서는 콘크리트에 묻혀 있던 대리석 계단의 흔적이 발견돼 원형부분은 잘 보존하고 훼손된 부분은 당시의 모습대로 복원했다.

복원된 경교장 내 김구 주석이 생활하던 거실 및 서거장소(창가 책상)

1층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가면 김구 주석의 집무실과 침실, 서거한 공간, 임정요인들의 숙소 등을 볼 수 있다.

김구가 서거한 2층 집무실 복도에는 창문에 서거 당시 총탄 자국을 재현해 당시의 아픔이 전해진다.

집무실 옆에 있는 임정요인 숙소에는 디지털 액자를 설치해 1945년 광복부터 우리 현대사를 되짚어볼 수 있도록 했다. 이 공간은 향후 임시정부 및 독립운동 관련한 특별 강연회장이나 기획 전시 공간 등으로 활용하기 위해 비워 놓은 상태다.

속옷밀서

지하공간은 원래 보일러실과 부엌 등으로 쓰였으나, 사진자료가 남아 있지 않아 재현이 어려워 총 3개의 전시실로 나눠 ‘경교장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역사’를 종합적으로 조망하는 전시공간으로 조성했다.

특히 경교장의 건물 및 복원의 역사와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경교장에서 수차례의 국무위원회를 개최하고 신탁통치반대운동과 남북통일운동을 위해 노력했던 활동을 중점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또한 환국한 백범 김구와 임시정부 요인들의 모습을 패널과 유물, 영상 등을 통해 전시하고 있다.

지하 제1전시실에선 ‘경교장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경교장이 일제강점기 광산업으로 큰 부를 축적한 최창학에 의해 건립되고, 1945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환국하자, 이들을 환영하기 위해 조직된 임시정부 환국봉영회에서 최창학의 저택을 임시정부에 제공한 사실 등 경교장 건축의 역사에 대해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지하 제2전시실에선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걸어온 길’을 당시의 신문기사, 관련 자료 등을 통해 고스란히 전달한다.

전시유물 중 특히, 속옷에 빼곡히 쓰여진 밀서가 눈에 띈다. 이 속옷밀서는 1948년 2월 3일 북한 내 민족진영 비밀조직원들이 김구, 이승만 두 정치지도자에게 소련의 지원 아래「민주조선인민공화국」을 수립하려는 북한 내 동향을 보고하고, 두 민족지도자가 협력해 남북통일정부 수립을 위해 노력해 줄 것을 탄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이것은 김구와 김규식 등에 의한 남북협상의 시작을 상징적으로 증언해주는 유물이다.

이 속옷밀서는 당초 김구가 경교장 문갑에 보관하다가 사후 유실된 유물들 가운데 하나로, 국립중앙박물관이 1970년대에 고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에 의해 매입, 소장하게 된 유물로 알려져 있다.

지하 제3전시실은 ‘백범 김구와 임시정부 요인들’을 주제로 임시정부 주석 김구의 유품과 경교장에 돌아온 임시정부 요인들에 대한 정보검색 코너가 소개돼 있다.

이 전시실에서 가장 주목해서 보아야 할 유물은 김구가 경교장 2층 거실(집무실) 복도 책상에서 대한민국 육군 소위이자 주한미군 방첩대(CIC) 요원이었던 안두희에 의해 암살당했을 때 입었던 혈의(血衣)이다. 이 혈의에는 목과 가슴부위에 김구 주석의 혈흔이 남아 있어 당시의 참혹한 상황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또한 1947년 발행된 《백범일지》초간본과 김구의 서명이 들어있는 서명본도 함께 전시돼 있다.

경교장은 매주 화~일요일 오전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무료 개방하며, 월요일은 휴관한다.

한편, 경교장 건물 복원은 마무리됐지만 경교장 서측과 북측은 강북삼성병원과 직접 연결돼 있고, 정원 등은 병원 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어 이번 복원에서는 제외돼, 이 부분에 대한 복원 검토는 향후 과제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