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언어로서의 춤, YJK댄스프로젝트의 <완벽한 사랑&울프>
새로운 언어로서의 춤, YJK댄스프로젝트의 <완벽한 사랑&울프>
  • 김인아 기자
  • 승인 2013.03.13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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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독일을 오가며 활동하고 있는 김윤정의 YJK댄스프로젝트가 <완벽한 사랑>이라는 신작과 더불어 2010년 초연한 <울프>를 컴팩트하게 응집, 보완하여 2013년 3월 9~10일 <완벽한 사랑&울프>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무대에 올렸다. YJK댄스프로젝트는 <베케트의 방>, <문워크>, <더 라스트 월> 등을 선보이며 관객과 평단의 고른 호평을 받아온 단체이다.


소설 <파도>에서 착안된 <울프>는 공연의 1부에 올려졌다. <파도>는 20세기 영국의 모더니즘 작가인 버지니아 울프의 1931년작으로 여섯 명의 인물들이 성장기와 노년기를 거쳐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울프 특유의 ‘의식의 흐름’ 소설적 기법으로 서술하여 현대적이고 실험적이라 평가받아온 작품이다. 김윤정은 삶의 덧없음과 영원성이 파도로 상징되는 원작의 내용을 작품 <울프>의 동기로 설정했지만 그 전개를 그대로 쫓아가는 것 대신 새롭게 해체·변형시켜 일부 텍스트를 무용과 결합시키는 방식을 선택했다.

<울프>는 시종일관 창백한 표정으로 차분하고 냉담하게 버지니아 울프의 텍스트를 읊조리며 연극적 안무의 움직임을 해나가는 현지예, 크고 훤칠한 몸으로 무용적 테크닉을 구사하는 다역(多役)의 김윤아, 이렇게 두명의 여자 무용수를 주축으로 텍스트를 이미지화한다. 현지예는 몸과 텍스트가 하나의 사이클로 체화된 밀도있는 연기력을 보여주며 관객을 집중시켰다. 어둠속 핀 조명 아래 망치로 무언가를 두드리거나 푸른빛의 드레스 양쪽 끝자락을 묶거나 꼬기도 하고, “어느 쪽이 슬픔이고 어느 쪽이 기쁨이지?” “너 단단해” “침묵이 떨어져 내려”와 같은 심오하고 파편적인 대사를 끊임없이 독백하며 동작을 섬세히 그려나간다. 김윤아는 무대 위에 걸려 너풀대는 갖가지 옷들 사이를 배회하며 정교하게 춤을 추거나 얼굴에 천을 감싼 뒤 그 끝을 잡아 당겨 마치 죽음을 암시하는 듯한 움직임을 진행해간다. 택배기사 류장현은 빨간 입술모양의 소파를 배달하며 죽음의 몸짓에 도취되어있는 김윤아를 현실로 재빨리 불러들이는 카메오 역할을 맡았다. 두 여자 무용수는 타자인 동시에 또다른 나인 것처럼 따로 또 같이 듀엣을 펼쳐 보이면서 시간의 흐름이나 공간의 경계를 허물어 나간다.

끊임없는 독백과 날카로운 움직임의 교차, 재치있는 카메오의 등장, 회전하는 거울문이나 공중에 매달려 너울대는 옷들의 물결과 같은 효과적인 시각 장치들, 반복적으로 들려오는 헨델의 ‘울게하소서’와 파도소리 등, <울프>에서 유기적으로 조합된 갖가지 요소들이 작품을 빼곡이 차지하고 있다. 문학작품의 감성을 컨템포러리 무용작품으로 이미지화하며 새로운 춤으로 진화시키는데 성공한 안무력 및 연출력이었다.

누구나 완벽한 사랑에 대해 환상과 열망을 품고 살아가지만 과연 그것이 실재하는지, 미디어나 예술작품과 같은 허구 속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닌지 의문일 때가 있다. 브로셔에서 안무자는 “매일매일의 삶에서의 사소한 모든 일들이 우주의 완벽한 조화의 일부부인 것처럼, 이 모든 다양한 사랑의 순간들도 완벽한 사랑의 일부분일 것이다”라고 말하며 신작 <완벽한 사랑>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이 작품은 남녀의 보편적인 사랑의 단상들을 여러 에피소드로 이어내며 다양한 시선으로 사랑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스타카토의 짧은 리듬에 맞춰 남녀무용수 일곱 명이 ‘집’으로 구현된 무대 위에서 똑깍거리는 움직임을 취하며 등장한다. 뒤편의 스크린은 모바일 대화창이 되어 남녀의 사실적인 대화내용이 오가기도 하고, 건물로 가득찬 서울의 도시풍경을 담아내거나 깃털을 접사한 영상을 투사하기도 한다. 남녀 무용수는 서로 부대끼며 듀엣을 선보이면서 대화를 멈추지 않는다. “뭐가 외로운데?” “너는 나에게 단어로 말하고 나는 널 느낌으로 바라보니까... 넌 느낌은 없고 생각뿐이야” 같은 남녀의 일상적인 대화가 칫솔, 넥타이, 베게와 같은 일상의 사물들과 어울려 사랑의 단편들을 조합해 나간다. 사실적이고 통속적인 가사가 돋보였던 통기타의 라이브 음악은 유쾌함을 잃지 않았고, 팝핀 현준의 민첩하고 단련된 몸놀림은 즐겁지만 가볍지 않은 무대로 작품을 이끌어갔다.

움직임과 언어, 오브제와 무대에 설치된 ‘집’의 공간적 변화를 통해 옴니버스 형식으로 이야기를 나열해간 이 작품은 사랑의 여러 단상들을 보고 어떤 답을 내리던지, 무엇을 사유하던지 그것을 관객의 몫으로 남겨놓기에 지극히 컨템포러리다운 작품이었다. 시각 장치와 구성, 무용수들의 움직임 조합 등 쉽게 예상할 수 없는 전개방식이 식상하지 않았다. 더불어 안무가의 독특한 발상과 유머 감각을 바탕으로 무용수들에게 움직임 외에도 제스처와 표정, 대화, 다양한 캐릭터를 추가로 쥐어주며 짜여진 <완벽한 사랑>은 이미 새로운 언어로서의 춤 대열에 선두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