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호선의 문화비평] 백남준과 만난 이야기 IX - 세 번째 우주오페라
[천호선의 문화비평] 백남준과 만난 이야기 IX - 세 번째 우주오페라
  • 천호선 컬쳐리더인스티튜트원장/전 쌈지길 대표
  • 승인 2013.03.13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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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호선 컬쳐리더인스티튜트원장/전 쌈지길 대표
1986년 말 캐나다대사관 공보관으로 오타와에 근무하게 되면서 나는 백남준의  우주오페라 3부작 <손에 손잡고, Wrap Around the World>에는 직접 관여할 수 없었다. 다만 캐나다의 캘거리 동계올림픽 동반 문화행사에 백남준의 작품을 전시할 수 있도록 알선하였는데, 백선생 자신은 캘거리 전시에 관심이 없었다. 마침 현대자동차 토론토 지사장이 고등학교 친구라 그에게 부탁해서 백선생 작품 전시 운반비를 후원받아 싫다는 백선생을 끌고 전시를 추진할 수 있었다.

KBS와 미국 PBS가 공동 기획한 <Wrap Around the World>는 1988년 9월11일 0시30분부터 90분간 미국, 일본, 브라질, 이스라엘, 이태리, 중국, 러시아 등 11개국에서 동시 방영되었다. 백남준은 뉴욕 스튜디오에서 한국 전통의상을 입고  갓소각 해프닝을 벌리고, 서울에서는 사물놀이가 <다다익선> 앞에서 공연하였다. 록 스타 데이빗 보위의 노래에 맞춘 캐나다 <라라라휴먼스텝스>의 무용과 미국 <머스커닝햄무용단>, 이스라엘의 <콜데마마무용단> 등이 현대무용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동경에서 류이치 사카모도가 음악을, 아일랜드 자동차경주,  브라질의 리오 카니발, 러시아의 지하음악가 세르게이 쿠료힌, 중국의 가수  퀴유 까지 전 세계를 하나로 감싸는 우주오페라의 마지막 작품이었다.

백남준은 88 서울올림픽에 영상예술로 참여할 것을 구상하면서 그 자신의 생각을 이렇게 정리하고 있다. “세계가 파괴를 향하고 있는 현재 ‘스타 워즈, star wars'가  아닌 ’스타 피스, star peace'를 만들어보고 싶다. 서울을 비롯해 미주, 유럽, 아시아 등 세계 각지를 동시중계로 연결하겠다. 테크놀로지는 지금까지 옛 문화를 파손시켜 왔으나, 최신 테크놀로지인 영상 통신기술은 각지의 고유문화를 교류시켜 대립이 계속되는 지구를 둘러싸 한데 모을 수 있다”

백선생은 현대미술 가을호에 게재된 이어령씨와의 대담에서 “<Wrap Around The World>는 5대양6대주를 보자기로 부드럽게 싼다는 뜻이다. 보자기는 책 한권이나 열권이나 다 쌀 수 있고, 비가 올 때는 우산도 되는 무궁무진한 베리에이션을 갖는다. 이와 같이 용량에 제한 없이 이것저것 융통성있게 넣을 수 있고 처음부터 틀을 정하지 않고 시작하는 예술도 참 재미있다”고 말하였다.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는 “앞으로 더 이상 위성작업을 하지 않겠다”고 말하면서, “그러나 앞으로 통일문제와 관련하여 누군가가 남한과 북한, 미국과 소련, 서독과 동독을 연결하는 작업을 하면 좋겠다”고 부언한 바있다.   그러나, New York Times는 9월12일자 리뷰에서 “백남준은 이번에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갔다. 리틀엔젤스와 같은 지루한 공연 등, 한국 선전이 너무 많았다”고 비난하였다.

- 이야기를 마치며

1996년 백남준씨가 뇌졸중으로 쓰러진 후 나는 97년에 백선생을 뉴욕 스튜디오에서 만났다. 그는 몸을 제대로 쓰지 못하면서도 새롭게 시도하고 있는 레이저  작품 <트라이앵글>을 한없이 바라보면서 “죽을 때가 가까워 지니까 이러한 사색적인 작품이 만들어 진다”고 말하였다. <빅뱅 이후 10억년 동안 비가 나리다>라는 제목을 붙이겠다고 말한 이 작품은 2000년 구겐하임미술관이 21세기를 맞아 첫 번째로 기획한 <The World of Nam June Paik>에 전시되었고, 지금은 삼성 리움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나는 백선생의 초청을 받아 구겐하임미술관 전시 오프닝에 참석할 수 있었는데, 백선생의 우주오페라 <Good Morning, Mr. Orwell>, <Bye Bye Kipling>, <Wrap Around The World>가 전시장 전면에 설치된 대형화면에서 방영되면서, 존 케이지, 요셉 보이스, 머스 커닝햄, 알랜 진스버그, 필립 글래스, 샤롯 무어맨, 로리 앤더슨, 피터 가브리엘, 데이빗 보위, 류이치 사카모도, 이세이 미야케, 황병기, 사물놀이 등 백선생의 정다운 친구들이 관객을 반기고 있었다.
 
2006년 1월29일 백선생이 돌아가시고, 2007년 1주기를 맞아 나는 김금화씨를 불러 쌈지길 마당에서 진혼제를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