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칼럼] 현대성의 경험, 꼬르뷔지에와 비행기, 전쟁과 테크놀로지
[건축칼럼] 현대성의 경험, 꼬르뷔지에와 비행기, 전쟁과 테크놀로지
  • 최혜정 국민대 건축학과 교수/건축가
  • 승인 2013.03.13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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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적이라 함은 우리 스스로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변혁, 모험, 쾌락, 성장을 약속하지만, 동시에, 우리가 소유하고, 인식하고 있는 모든 것, 우리의 존재를 파괴하려고 위협하는 모든 것들 안에 우리가 있음을 깨닫는 것이다” - 마샬 버만(Marshal Berman)의 ‘현대성의 경험’이라는 책에서 인용된 말이다.

1931년에 출간된 건축가 꼬르뷔지에(Le Corbusier)의 저서 “새로운 건축을 향하여 ? Toward A New Architecture”는 말 그대로 새로운 시대의 건축을 향한 건축가의 간절하고도 절실한 바램과 결연을 담고 있는 책이다. 20세기로 접어들면서 가속도화 되는 산업화와 우리의 도시들, 그리고 기술의 발달 등…당시 꼬르뷔지에가 책을 쓰고 있었던 시간적 시기는 말 그대로 하루하루가 격변기이고 새로운 것에 대한 놀라움과 충격, 혼란의 연속이었을 듯 하다. 모더니즘 운동의 전성기였고, 러시아 아방가르드 운동이 소비에트 체제 이전에 최고조로 꽃 피우던 시기이기도 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그 당시의 흥분, 혼란, 고민, 기대가 고스란히 전해지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현대의 시점에서 우리는 역사를 이미 지나간 하나의 과거로 보게 되는데, 사실 그렇게 흘러간 역사는 그 순간만큼은 현대였다. 역사를 ‘과거에 대한 정보’로 보는가, 혹은 일련의 ‘현대정신’이 진화하는 과정과 지식으로 보는가의 두 질문을 띄운다면, 후자의 시점으로 대하는 것이 우리가 역사를 좀 더 친밀하고 가깝게 이해할 수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이 책에서 꼬르뷔지에도 역시 현재에 집중한다. 과거에 건축가들이 집착했던 양식이나 외관 등에 대한 비판은 물론 있지만, 그가 얘기하고자 하는 가장 중요한 논점은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지금 일어나고 있는 것’들에 대한 고찰을 통해서 묻고자 한다는 것이다. 

Arpanet logical map, march 1977

꼬르뷔지에는 이 책에서 세 가지의 모던 기술에 대한 찬사를 보내며, 새로운 건축이 이 세 ‘첨단’기술의 정신과 과정을 본받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여객선, 자동차, 그리고 비행기, 이 세 업적은 말 그대로 당시의 신재료와 기술을 장착한 공학(engineering)이 일궈낸 위대한 미학이고, 이 미학은 단지 ‘예쁘게 보이는/보이기 위한 미학’이 아닌, 이유와 기능을 가진 그 스스로가 새롭고 독보적인 논리를 만들어내는 ‘어용론’이자 ‘미학’이라는 점을 그는 강조한다.

2010~World War II Aircraft Posters

비행기는 위대한 발명이기도 하지만, 끊임없이 진화되고 혁신되어 왔다는 점이 더 중요하다. 이 혁신의 가장 커다란 공은 바로 ‘전쟁’에 있다. 전쟁이라는 행위와 전쟁에 연결된 군사기술, 국력체제, 경쟁의식들은 비행기가 거침없이 발전되고 진화될 수 밖에 없는 원인과 동기부여를 제공하였다. 실질적으로 1차 대전(1914-1918)과 2차 대전(1939-1945)의 사진을 보면 엄청난 변화를 감지할 수 있다. 무기의 종류부터 시작하여, 군대인원, 전쟁지대의 종류 등이 그 질과 양의 측면 모두 완전한 다른 종류의 전쟁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1차대전이 주로 육지와 해상에서 전면전의 형식으로 부대가 장총, 기관총, 수류탄 등으로 직접 충돌하는 방식으로 주로 진행되었다면, 2차 대전에는 장갑차, 탱크, 전투기,폭격기, 잠수정, 함선, 핵폭탄 등 다양한 공격형태와 방법이 등장하였다. 가깝게, 멀리, 위에서, 밑에서, 움직이면서…등, 다양한 거리감각과 공간을 이용한 ‘공간전’이었던 것이다. 1차 대전의 절망과 충격, 절실함의 교훈들은2차 대전이 발발하기 까지의 20년이라는 시간 동안 서로 앞다투어 경쟁하여 일궈 낸 거침없는 기술의 개발과 진화라는 결과를 만들어내었다.

two women operating eniac

최초의 컴퓨터라고 불리우는 ‘애니악’(ENIAC)

오늘날 우리의 일상에는 이렇게 전쟁과 군사기술에서 비롯된 것들이 존재한다. 최초의 컴퓨터라고 불리우는 ‘애니악’(ENIAC)은 2차 대전당시 빠르게 탄도를 계산하기 위한 미국 육군의 의뢰로 인해 연구되어 나온 결과였고, 인터넷의 개발 또한 미 국방성의 주도로 이루어졌다는 점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요즘 누구나 없으면 아쉬운 자동차의 내비게이션 또한 군용도로 개발되었던 GPS(Global Positioning System)의 민간화된 사용이다. ‘바바리 코트’라고도 하는 트렌치 코트는 1차 대전 당시 춥고 축축한 전장의 참호에 견딜만한 가볍고 방습, 보온이 잘 되는 외투로 보급된 군사용 유니폼이었고, 이 외에도 다양한 합성섬유들이 매우 특정한 요구사항을 지닌 군부대용(옷, 장비, 무기 등)으로 쓰기 위해 개발되었다. 뿐만 아니라, 전쟁을 위해 연구되어 적용된 다양한 전략과 전술, 명령체계 등의 조직을 최적화하는 방법, 기준들은 하나의 기준화/체계화의 모델이 되어, 오늘날의 기업이나 조직체계에서 쉽게 볼 수 있다.

가장 최선의, 최적의, 최초의, 최대의 효율과 결과를 이끌어내어야만 생존이 가능하고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절실함의 세계 - 전쟁은 아마 인류사에서 가장 극적인 것들을 이끌어내는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인 행위이며 양면적으로 처참한 비극을 불러오지만, 우리는 그것으로 인해 풍요로운 삶을 살기도 하는 이이러니가 존재한다. 비행기는 꼬르뷔지에가 얘기하듯이 독보적인 논리와 혁신을 만들어 낸 동시에 우리가 영원히 안고 살아가야 하는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하고, 어려운 것들을 용이하게 해주는 편의를 제공하는 수단이며, 아직도 그 논리의 현재진행이 치열하다. 바로 앞에서 버만의 말을 빌려 얘기한 ‘현대성의 경험’이 절실히 공감되는 순간이다.     

 

* 건축가 최혜정, 미국 렌슬리어 공과 대학과 콜럼비아 건축 대학원을 졸업하고 뉴욕과 서울에서 활동 중이다. 현대 국민대학교 건축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며, 2011 광주 디자인 비엔날레 큐레이터 등의 프로젝트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