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해 한용운’ 65주기 추모 다례의식 거행
‘만해 한용운’ 65주기 추모 다례의식 거행
  • 이소영 기자
  • 승인 2009.06.24 12:12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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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29일, 그의 유택인 성북동 ‘심우장(尋牛莊)’에서


불교사상가이자 민족시인, 만해 ‘한용운(1879-1944)’이 타계한지 올해로 65주기를 맞았다.

▲ 만해 한용훈의 유택인 '심우장'에서 '추모다례의식'을 거행한다.

동방대학원대학교(총장 정상옥)와 성북문화원(원장 조태권)이 만해 한용훈의 65주기를 기리기 위해 오는 29일 오후 2시 성북구 성북동 심우장(尋牛莊)에서 ‘추모 다례의식’을 거행한다.

한용운은 1879년 충남 홍성에서 태어나 1905년 강원도 백담사에서 득도하고 강원도 유점사, 표훈사 등을 거쳐 1915년 조선불교회 회장으로 취임했다.

그 후 전국을 돌며 강연회를 열었으며 1918년에는 월간지 유심(愉心)을 창간하는 등 활발한 문학 창작 활동을 펼쳤다.

독립 운동가이기도 했던 그는 1919년 3.1운동을 주도해 최남선이 작성한 독립선언서에 공약 삼장을 첨가했으며, 이후 투옥됐다가 1921년 가출옥해 1926년 시집 ‘님의 침묵’을 발간했다.

그 후 1931년 ‘불교’지를 인수하고 각종 불교사상서를 발표하면서 소설 작업도 병행했으며, 일제강점기인 1933년 ‘심우장’을 짓고 활동하다 1944년 6월29일 심우장에서 조국의 광복을 보지 못하고 1944년 생애를 마쳤다.

한편 ‘추모 다례제’가 열리는 ‘심우장(尋牛莊)’은 만해 한용훈의 유택으로 조선총독부와 마주보는 것이 싫어 북향으로 그가 직접 지은 집으로 1985년 7월 5일 서울특별시기념물 제7호로 지정됐다.

만해가 죽은 뒤에도 외동딸 한영숙이 살았는데 일본 대사관저가 이 곳 건너편에 자리 잡자 명륜동으로 이사를 하고 심우장은 만해의 사상연구소로 사용했다.

심우장(尋牛莊)이란 명칭은 선종(禪宗)의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는 과정을 잃어버린 소를 찾는 것에 비유한 열 가지 수행 단계중 하나인 ‘자기의 본성인 소를 찾는다’는 심우(尋牛)에서 유래됐다.

정면 4칸, 측면 2칸 규모의 장방형 평면에 팔작지붕을 올린 민도리 소로수장집으로 한용운이 쓰던 방에는 그의 글씨, 연구논문집, 옥중공판기록 등이 그대로 보존돼 있다.

 

서울문화투데이 이소영 기자 syl@s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