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동 아리랑'의 감동, '무지'의 또다른 이름
'인사동 아리랑'의 감동, '무지'의 또다른 이름
  • 임동현 기자
  • 승인 2013.03.25 00: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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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인이 듣고 싶어하는, 하지만 정작 '아리랑'이 울리지 않는 대한민국

지난 3월 1일 삼일절, 인사동 쌈지길에서는 한 편의 감동적인 연주회가 열렸다. 자발적으로 모인 40여명의 대학생 연주자들이 서울 한복판에서 '아리랑'과 '애국가'를 연주한 것이다. 한 여성이 바이올린으로 '아리랑'을 혼자 연주하고 이에 대여섯명의 연주자들이 화음을 더한다. 그렇게 연주자들이 모이고 마침내 합창단들이 입을 모아 '아리랑'을 부른다. 인사동에 모인 사람들이 감동의 박수를 친 것은 물론이다.

▲지난 1일 3.1절을 맞아 인사동 쌈지골 마당에서 펼쳐진 아리랑 플래시몹의 한 장면
이 플래시몹은 '인사동 아리랑'이라는 제목으로 유튜브에 올려졌고 이 영상 또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멋진 젊은이들이다', '아리랑이 이렇게 좋은 곡인 줄 몰랐다' 등의 댓글이 올라오고 영상에 감동한 이들이 블로그나 SNS를 통해 동영상을 알리고 있다.

이 플래시몹의 시작은 한 외국인의 사연이었다. 지난해 12월 '아리랑'은 유네스코가 정한 세계인류 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중국이 '아리랑'을 자신의 소수민족들의 노래라고 주장하며 문화유산 선정을 방해했지만 우리의 노력으로 '아리랑'은 한국의 노래로 당당히 증명됐고 문화유산에 등재되기에 이르렀다.

이를 들은 그 외국인은 '아리랑'을 듣기 위해 한국의 전통이 보존되어있다는 인사동을 찾는다. 그러나 인사동 그 어느 곳에도 '아리랑'을 들을 수 있는 곳은 없었다. 이 소식을 접한 한 대학생이 친구들에게 오케스트라 연주를 제안했고 곧 여러 학생단체들이 동참하기 시작했다. 연주는 물론이고 홍보, 영상 편집까지 그들이 직접 했다. 그렇게 해서 우리에게 감동을 준 '인사동 아리랑'이 탄생한 것이다.

당시 이 플래시몹을 처음으로 제안한 경희대학교 학생 김신중씨는 어느 인터뷰에서 "한국 전통문화를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다고 여겨지는 인사동에서 사람들에게 아리랑을 들려주고 싶었다"고 이유를 설명하고 "음악적으로 완벽하지 못하지만 함께 아리랑을 부른 시민들과 동영상을 본 사람들이 대한민국을 떠올리면 그것으로 만족한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영상을 보면서 우리는 대학생들의 열정에 감동하고 '아리랑'의 곡조에 또 한 번 감동했다. '아리랑'이 이처럼 아름다운 노래임을 몰랐다는 의견이 폭주했고 대학생들을 칭찬하는 글들이 온라인에 계속 올라왔다. 그야말로 한국인들의 마음 속에 '아리랑'이 울려퍼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간과해선 안되는 부분이 있다. 인사동을 아무리 찾아도 '아리랑'을 들을 수 없었다는 외국인의 사연이다. 과연 우리 스스로는 '아리랑'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우리의 자랑스런 노래를 정작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없다는 이 불편한 진실을 어떻게 설명해야할까?

'아리랑'을 취입하려 했던 냇 킹 콜

지난 2월 18일 MBC FM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듣고 있던 청취자들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팝가수 냇 킹 콜이 부른 '아리랑'을 들려준다는 것이다. 지난 1965년 시민회관(현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내한공연에서 냇 킹 콜은 한국 팬들을 위해 우리의 민요 '아리랑'을 들려줬다.

이 프로의 게스트로 출연한 뮤지션 남궁연씨는 '아리랑'을 주제로 한 멀티미디어 공연을 준비하던 중 아리랑연구소를 통해 냇 킹 콜의 '아리랑'이 담긴 내한공연 실황 LP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는 수소문끝에 그것을 찾게 되고 이를 디지털로 복원해 마침내 청취자들에게 공개한 것이다.

그리고 방송을 통해 공개된 '아리랑'. 냇 킹 콜은 특유의 목소리로 '아리랑'의 가사를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발음한다. 그의 이 노력은 단순히 한국팬들을 위한 립서비스라고 폄하할 수 없게 만들었다. 냇 킹 콜의 목소리에 실린 '아리랑'의 서정적인 멜로디에 관객들의 큰 박수가 이어졌다. 이 노래를 들은 많은 이들은 게시판에 '전율이 느껴졌다'는 내용의 감동의 글을 올렸다.

방송에 따르면 냇 킹 콜은 이 '아리랑'을 자신의 앨범에 넣으려 했지만 공연 7개월 후 폐암으로 사망하면서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세계적인 대가수가 취입을 결정할 정도로 '아리랑'의 서정성이 가수에게 인정받은 것이다. 국내 작곡가들이 '아리랑'에 함부로 손을 대기를 꺼렸을 시절에 바다 건너 미국의 가수는 그 노래를 새롭게 해석해 세계인들에게 들려줄 생각을 했던 것이다. '그 때 음반이 나왔다면 아리랑의 세계화가 훨씬 더 빨라졌을텐데'라고 아쉬워하던 DJ 배철수의 목소리가 생각난다.

'아리랑'의 서정성, 우리가 모르는 사이 해외 아티스트들이 알다

최근 리사 오노 등 여러 해외 아티스트들이 '아리랑'을 자신의 정르로 편곡해 음반에 싣는 일이 많아졌다. 이처럼 '아리랑'은 이제 어느 특정한 나라의 민요가 아니라 세계 유명 아티스트들이 너나없이 부르는 서정적인 곡으로 인식이 됐다. 그리고 지난해 유네스코의 결정은 세계인이 부르는 그 서정적인 노래가 바로 대한민국의 곡이라는 것을 확신시켜준 중요한 사건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아리랑'을 쉽게 듣지 못하고 잘 알지도 못한다. 특정한 날에 젊은이들이 모여 연주를 해야만 겨우 관심이 집중되고 그제야 '아리랑'이 이렇게 감동적인 곡인줄 몰랐다고 털어놓는다. 우리의 노래가 중국에게 뺏길 위기에 놓이자 그제야 '이건 안된다'고 외치고 그제야 '아리랑'을 살려야한다고 외친다.

어쩌면 중국의 억지는 사실 우리가 그저 '아리랑'을 우리의 민요라고 생각하고 아무도 넘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아리랑'을 제대로 노래하고 연주하지 않으며 방심한 사이를 노린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아리랑을 아는 게 세계화보다 급하다 

우리의 기억에 '아리랑'은 초등학교 음악교과서에서 분명히 배웠다. 그러나 그 노래가 어떤 의미인지, 왜 우리의 노래로 사랑받았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배우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아리랑'은 '케케묵은 옛날 노래'중 하나로 인식되면서 교과서에서나 나오는, 낡은 노래로 생각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의 학생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됐다고 하나 정작 우리나라에서는 문화재로 지정되지도 않았고 '아리랑'에 대한 변변한 안내서나 기록도 찾아내지 못했다. '아리랑'을 연구하려해도 자료가 부족해 진도가 지지부진할 수 밖에 없다. '아리랑'을 세계화시킨다고 해도 제대로 할 수가 없다. 외국 가수들이 '영광스럽게도'(?) 노래를 찾아줘서 직접 부르거나 예술인들이 1회성 퍼포먼스를 해야 겨우 우리에게 알려질 정도다.

중국의 억지로부터 우리는 '아리랑'을 지켜냈지만 우리는 아직도 '아리랑'을 모른다. 인사동의 퍼포먼스는 감동적이었다. 하지만 그 감동은 우리가 우리의 노래인 '아리랑'을 너무나 몰랐다는 것을 포장한 것일수도 있다. 이제 정부 차원에서 '아리랑'을 발굴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우리의 '아리랑'을 세계에 알리기 이전에 먼저 우리가 '아리랑'을 제대로 알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게 더 먼저이지 않을까?

언젠가 '아리랑'에 대한 기록들이 등장하고 학교에서 '아리랑'을 제대로 가르쳐 그 노래의 의미를 알게 된 학생들이 스스럼없이 '아리랑'을 애창곡으로 부르고 3.1절에 인사동이 아닌 탑골공원에서 세계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아리랑'이 연주될, 아니 세계 유명 아티스트들이 함께 자신들의 시각에서 만든 '아리랑'을 열창할 그 날을 기다려본다. 우리가 '아리랑'을 알아야한다. 그게 되어야 세계화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