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한국문화유산을 춤추다 “제27회 한국무용제전”
[공연리뷰] 한국문화유산을 춤추다 “제27회 한국무용제전”
  • 김인아 기자
  • 승인 2013.03.28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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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춤에 대한 좀 더 진지한 고찰이 있어야
한국춤협회가 주최한 제27회 한국무용제전이 3월 13일, 15일, 17일, 20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펼쳐졌다. 한국춤협회의 모태인 한국무용연구회는 1981년 창립 이후 학술지 및 학술심포지엄과 같은 학문적 토대위에서 한국무용제전, 젊은 안무가전, 한국경연대회, 지도자강습회 등의 사업을 다각적으로 펼쳐온 국내 최초의 한국무용 민간단체이다. 올해 32주년을 맞은 한국무용연구회는 한국춤협회로 명패를 갈고 이사장제에서 회장제로 조직개편을 시행하는 등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이번 한국무용제전을 마련하였다.

이번 축제는 지난해에 이어 '유네스코에 등재된 세계 속의 한국문화유산을 춤추다'라는 주제로 총 나흘간 16개의 작품을 선보였다. 강강술래·처용무·강릉단오제·판소리·영산재·남사당놀이 등 유네스코에 등재된 한국의 무형문화재를 소재로 하여 축제의 첫날에는 개막축하공연을, 나머지 사흘동안은 9명의 안무자들이 무형문화재를 오늘의 시각으로 해석하여 한국무용으로 창작한 작품을 무대에 올렸다.

3월 13일 개막축하공연에서는 무형문화재를 최대한 원형에 가까운 모습으로 보여주어 축제기간동안 이어지는 창작 춤 공연에 대한 이해를 도왔다. 축제의 시작은 2001년 유네스코에 등재된 중요무형문화재 제1호 종묘제례악으로, 선왕들의 무공을 칭송하는 정대업지악의 힘찬 노래에 맞춰 무무(武舞)가 추어졌다. 오른손에 나무로 만든 칼을 들고 팔동작을 하거나 하체를 거의 이용하지 않은 채 상체만으로 방향을 바꾸는 등 절도있는 방위예술의 미를 선보였다.

이어 펼쳐진 중요무형문화재 제50호 영산재 무대에서는 영산재보존스님들이 법고춤, 나비춤, 바라춤을 소개하였다. 양손에 든 바라를 한손씩 번갈아 머리위로 들어 올리면서 회전을 거듭하다 바라를 맞대어 큰 울림소리를 퍼뜨렸던 바라춤이 특히 인상적이었던 무대로 한국 고유의 아름다운 불교문화예술을 엿볼 수 있었다. 중요무형문화재 제8호인 강강술래는 국립국악원 무용단의 역동적인 춤사위와 흐트러짐 없는 군무, 다양하게 변화하는 대형이 돋보인 무대였다.

개막공연에서는 창작춤과 전통춤도 무대에 올랐다. 박경리 소설 <토지>와 세계무형유산으로 등재된 아리랑을 모티브로 한 최정임의 <동백꽃 아리랑…>이 창작춤 첫번째. 토지의 주인공인 서희의 한 서린 세월을 동백꽃에 함축한 뒤 구슬픈 아리랑 가락에 맞춰 섬세한 표정연기와 긴 호흡의 춤사위를 독무로 펼쳐보였다. 윤덕경의 <해가 뜨는 날>은 강릉단오제의 주신인 구사성황신의 설화를 상징적으로 무대화한 창작 작품이다. 몽환적이고 신비로운 분위기가 지속되는 가운데 손에 든 장삼, 스팟조명 등의 효과적인 장치를 이용하여 한 여인의 아픔과 성숙, 고뇌를 무거운 춤사위로 그려냈다.

뒤이어 박재희는 절제된 궁중무용과 신명의 민속무용의 미적 형식이 조화롭게 어우러져있는 전통춤 <한영숙류 태평무>를 선보였다. 진중한 호흡의 절도있는 움직임, 세밀한 발놀림으로 흥과 신명을 자아내는 춤사위까지 고루 엿볼 수 있는 무대였다. 두 번째 전통춤 무대였던 한명옥의 소고춤은 남성 무용수와 함께 역동적인 군무로 구성했다. 다양한 가락에 맞추어 소고를 두드리면서 활동적인 발디딤으로 신명을 풀어낸 이번 무대는 개막공연 중 관객의 가장 큰 호응을 이끌어냈다.

축제의 둘째날부터는 유네스코 등재 문화유산을 소재로 한 창작춤을 집중적으로 소개했다. 채향순의 <사당각시>는 중요무형문화재 제3호 남사당놀이를 기반으로 한 창작 작품으로, 남녀 주인공의 비극적 사랑을 중심에 놓고 고난의 세월을 감내하고 예술혼을 지켜낸 남사당패의 이야기를 극적 무용으로 전개했다. 외줄타는 동작의 묘사나 묘기에 가까운 자반돌리기, 극적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군무 등 일부 안무는 인상적이었으나 이야기 전개에 치중한 세련되지 않은 안무구성력, 대미를 남사당패 추모영상으로 장식해 결과적으로 작품의 초점이 추모공연으로 흐려진 점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원무(圓舞)를 비롯한 다채로운 대형 및 역동적인 군무, 신명나는 우리가락, 둥근 달·여성의 상징적 의미 등 강강술래의 제반요소는 춤창작에 훌륭한 동기를 부여한다. 정선혜의 <문지기 문지기 문열어라~>는 여성의 내·외적인 심미안을 구전설화형식으로 풀어낸 작품으로 독일의 재즈앙상블 살타첼로(Saltacello)가 편곡한 ‘Ganggang Sullae’에 맞춰 전통에 현대적 색깔을 입혔다. 작품을 해학적으로 이끌어가는 두명의 여자무용수는 익살스러운 만담을 하는 듯 왁자지껄 웃어재끼거나 바닥을 휘젓고 굴러다니는 등의 제스쳐를 하며 작품의 재미를 더했고, 두명씩 짝을 이뤄 머리감기·빨래하기·방망이질 같은 여인네의 생활상이 안무로 그려진 장면은 마치 살아있는 풍속화를 보는 듯했다. 달과 함께하는 군무에서는 원형을 벗어나 직선의 대열로 조형미를 강조하며 회전과 호흡의 춤사위를 반복하는 등 전반적으로 깔끔하고 세련되었으며 12명 무용수들의 정제된 기량도 엿볼 수 있었다.

강강술래에 아리랑을 더해 창작된 최병규의 <아리랑 수월래>는 둥근 달 아래 기쁨과 애환, 놀이와 제의의 몸짓을 펼쳐낸 작품이다. 달은 극의 전개에 따라 여러 색상으로 변하며 무용수와 교감을 이루는 효과적인 극적 장치로 존재한다. 청어엮기·문지기놀이나 기와밟기 등의 강강술래의 춤사위가 변형없이 연출되면서 현대적으로 재해석·재구성한 흔적이 부족해보였고, 대부분의 군무 장면에서 남자무용수들의 다듬어지지 않은 몸놀림이 눈에 띄어 아쉬웠다.

   
박시종무용단의 '나비꽃 한쌍'의 한 장면
17일 무대에 오른 박시종의 <나비꽃 한쌍>은 영산재 가운데 나비춤의 제의적 요소를 재해석하여 창작된 작품이다. 이승에서 연을 맺지 못한 남녀가 나비꽃 한쌍으로 환생하고자 나비춤이라는 생명 희구의 몸짓을 펼친다는 내용으로 나비꽃으로 연상되는 흰 종이꽃의 극적 장치, 바라를 든 네명의 여성무용수가 그려낸 저승의 장중한 움직임, 남녀 주인공의 애절한 연기와 섬세한 춤사위가 돋보인 무대였다.

김용복 얼몬무용단의 <춘향>은 무형문화재 제32호 판소리 가운데 춘향가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춘향과 이몽룡의 만남과 이별, 옥중 춘향의 사연, 어사가 된 이몽룡과 춘향이 다시 만나 축제의 판을 벌리는 내용이 판소리 춘향가로 전달되며 춤과 한데 어우러진다. 판소리에서 사용되는 몸짓이자 형용동작인 너름새를 끄집어내어 춘향의 내적 감성을 상징화된 춤적 언어로 표현한 점이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너무 산만한 스토리 전개가 재미를 반감시켰다.

17일 마지막 작품이었던 이경호 무용단의 <태조의 꿈>은 종묘제례악의 근원 중 하나인 몽금척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작품으로 태조 이성계가 꿈속에서 금척을 받들고 조선을 건국했다는 내용을 이미지화했다. 30여명에 달하는 육중한 무용수들이 기량적인 면에서 약점을 드러내며 무대를 장악하지 못했고, 한국춤의 기본 정형이 아닌 현대무용의 몸짓으로 한국춤제전이라는 타이틀을 무색하게 했다. 또한 하늘의 뜻 혹은 신(神)적 존재의 여인이 이성계를 조종하는 장면, 많은 수의 기왓장이 무대에 나열돼가는 기나긴 퍼포먼스로 조선의 건국을 암시하는 장면 등은 이미지로 주제를 전달하고자 지나치게 의도적으로 상징성을 부여한 채 춤 구성은 빈약해진 결과를 낳았다.

20일 첫 작품이었던 김남용의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는 일제강점기 강제 소집된 조선여성의 한과 애원을 담은 무용극이다. 애절한 아리랑 선율과 위안부 할머니의 육성 녹음이  무대에 깔리며 처절하고 비통한 역사의 단면을 춤으로 표현했다.

김은희의 <처용(處容)>은 무형문화재 제39호 처용무를 바탕으로 창작된 작품이다. 조명을 시계추처럼 좌우로 흔든다던지 바람소리 효과음 같은 극적 장치들이 신비로운 설화의 분위기를 극대화시켰으며 처용무에서 따온 호방하고 진중한 춤사위가 인상적이었다.

백정희의 <바람아래>는 무형문화재 제71호의 제주 칠머리당영등굿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칠머리당영등굿의 음악 장단과 타악기 반주에 맞춰 관절을 이용한 분절적인 춤사위, 호흡으로 어르거나 정지하는 동작을 선보이며 독특하고 새로운 몸짓과 호흡을 이끌어냈다.

제27회 한국무용제전은 유네스코 등재 한국문화유산을 다각도로 조명하여 고전을 재창조한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의가 있다.

한국춤협회는 “예술적 수준과 대중적 재미에 초점을 맞춰 많은 이들이 즐겁게 감상”할 수 있는 무용제전을 기획한다고 했으나 이번에 선보인 한국창작무용 작품들은 부분부분 긍정적인 요소가 있을지언정 예술성이나 대중성을 갖춘 수작이라 하기는 어렵다. 작품이 끝난 후 객석의 호응이 잇달았으므로 어느 정도 목적을 달성한 것으로 여겨질 법 하겠지만 과연 “많은 이들”이 즐긴 자리였는지, 무용인이 객석 대부분을 차지한 채 그들만의 리그를 펼친 것은 아니었는지 자문할 필요도 있겠다. 역량있는 한국무용가들에게 너른 기회가 주어져 한국의 전통과 창조를 깊게 들여다본 춤 작품들이 다음 한국무용제전 무대에 오르고, 많은 이들이 이를 함께 즐길 수 있기를 희망한다. 한국춤협회가 새롭게 첫발을 내딛은 지금이야말로 한국무용을 위해 새로운 기지개를 켜야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