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나온책] 그는 학교에서 낙제, 대학시험 떨어졌다
[새로나온책] 그는 학교에서 낙제, 대학시험 떨어졌다
  • 이소리 논설위원
  • 승인 2013.03.28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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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시인·사회학자 윌리암 헤르만 <아인슈타인에게 묻다-시인과의 대화> 나와

옛날 옛날 아주 먼 옛날, 멀고 먼 나라에 임금님 한 분이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임금님은 심심했던지, 신하들에게 코끼리와 눈먼 장님들을 데리고 오라고 시켰다. 임금님은 장님들에게 코끼리를 만져보게 한 뒤, 물었다. / “그대들이 만져본 코끼리는 무엇과 비슷한가?” / 귀를 만져 본 장님은 코끼리가 부채와 비슷하다고 말했다.

이빨을 만져본 장님은 무와 비슷하다고 했고, 다리를 만져본 장님은 절구와 비슷하다고 했다. 등을 만져본 장님은 침상과 같다 했고, 배를 만져본 장님은 큰 항아리와 같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꼬리를 만져 본 장님은 새끼줄과 같다고 했다. 말이 서로 다르자 그들은 자기 주장에 옳다고 싸우기 시작했다.

그래. 맞다. 그 장님들이 살펴본 것은 모두 거짓이 아니다. 그들이 살펴본 코끼리 모습은 그들이 서 있던 위치에 따라 달랐다. 코끼리가 지닌 참 모습과는 많이 다르긴 했지만. 눈에 보이는 세계가 아닌 머릿속에서 이뤄지는 사고 실험을 통해 상대성이론을 만든 아인슈타인(1879년 독일~1955년 미국).

독일 시인이자 사회학자였던 윌리암 헤르만이 쓴 <아인슈타인에게 묻다-시인과의 대화>(조환·석상인<장석환> 옮김)가 나왔다. 선 출판사에서 펴낸 이 책은 모두 4장, 제1장 ‘첫 번째 대화-아인슈타인과의 만남’, 제2장 ‘두 번째 대화-미국 망명과 새로운 신앙을 만나다’, 제3장 ‘세 번째 대화-아인슈타인의 종교관’, 제4장 ‘최후의 대화-세계평화와 과학자의 책무’ 등 모두 32꼭지에 이르는 대화로 이뤄져 있다.

‘아돌프 히틀러와 나치가 날뛰는 치하에서’, ‘상대성이론은 양날의 칼’, ‘아차 했으면 테러리즘의 제물로’, ‘반 나치 활동의 좌절과 목숨을 건 독일 탈출’, ‘물질은 실재(實在)할까’, ‘우주·신·종교 각각의 두 가지 이론’, ‘히틀러의 반유대주의(anti-Semitism)’, ‘전쟁 전 독일 지도층의 운명’, ‘지성(知性)이여, 안녕’, ‘예언자 아인슈타인’ 등이 그 이야기들.

이 책은 윌리엄 헤르만 박사가 쓴 <아인슈타인과 시인>이라는 책을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이 책에는 20세기 으뜸 과학자로 손꼽히는 아인슈타인 박사가 내놓은 ‘우주적 종교관’을 알기 쉽게 묻고 답하는 형식으로 풀이되어 있다. 종교집단들이 저지른 죄상, 나치 집단 살인만행, 스탈린 집단살인극 등 ‘죽음’에 따른 이야기도 함께 어깨를 걸고 있다.

설명이 필요 없는 지구촌 으뜸 과학자

“아인슈타인은 설명이 필요 없는 세계적인 과학자이다. 상대성이론 하나만으로도 그의 명성은 그대로 입증된다. 그러나 과학자 이외에도 훌륭한 음악가요, 미술애호가이며 또 한편으로 평화주의자였음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는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까닭 없는 배척을 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가 지향한 인류공동의 번영과 인간성에의 영원한 옹호, 과학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참다운 인간을 이야기하는 그의 사상과 이념적 지향은 세대를 띄어 넘어 모든 사람들의 귀감이 되었다. 그의 말의 행간을 따라가다 보면 신과 과학, 인간의 내면에 자리 잡은 고귀한 품성, 역사와 사회에 대한 공동의 책임 등을 총체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의 경험을 누릴 수 있다.” -‘책 앞날개 글’ 모두

1916년 3월 20일 일반 상대성 이론을 발표한 알버트 아인슈타인. 왜 이제 와서 다시 아인슈타인 바람이 부는가? 기원전 2세기에 살았던 아르키메데스는 지렛대가 지닌 원리를 발견하고 이렇게 말했다. “내게 지구 밖의 한 지점과 긴 지렛대를 달라, 그럼 나는 지구를 들어 올리겠다.” 이 말은 아르키메데스가 지구 밖으로 나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한 호언장담이었다.

16세기 이탈리아 과학자 갈릴레오는 “이 우주 어디에도 아르키메데스 지점은 없다”고 주장했다. 왜? 이 “우주 안에 있는 모든 것은 운동하기 때문에 완전히 멈추어진 지점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곧 관찰자가 관찰하는 결과는 그가 운동하는 상태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부딪힌 문제도 이와 비슷했다. 우주를 지배하는 그 어떤 일정한 법칙은 있지만 우리가 바라보는 우주는 우리 입장에 따라 달라지고,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 생각에도 한계가 있다. 우리는 우리가 바라본 것이 유일한 진리라고 우길 수도 없다. 이 때문에 아인슈타인 상대성이론이 다시 떠오르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20세기가 낳은 가장 탁월한 천재 과학자 아인슈타인. 칠십 년 넘게 이어진 그가 겪은 삶은 그가 남긴 탁월한 업적에 비하면 너무나 보잘 것 없었다. 그는 학교에 다닐 때 라틴어, 지리, 역사 과목에서 낙제를 받았고, 대학 입학시험에서도 떨어졌다. 스물네 살 때 부모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했다가 결국 이혼까지 했다.

노벨상으로 받은 상금도 위자료로 모두 털렸다. 그는 알렉산더 대왕처럼 인도 정복에도 나서지 않았다. 나폴레옹처럼 전 유럽을 상대로 전쟁을 선포하지도 않았다. 브르노처럼 지동설을 주장하다가 화형을 당하지도 않았다. 다윈처럼 생명이 나아가는 진화과정을 살피기 위해 남아메리카, 남태평양, 오스트레일리아를 여행하지도 않았다.

그가 아는 중요한 모험들은 실제 세계가 아니라 머릿속에서 이루어졌다. 그는 사고 실험을 통해, 상대성 이론이라는 독특한 논리를 만들어냈다. 그것을 통해, 이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들 눈을 바꾸어 놓았다. 그에게 죽음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모차르트를 듣지 못하는 것이 곧 죽음”이라고 답한 아인슈타인. 우리는 지금 그에게 무엇을 묻고 싶은 것일까.

나는 어떠한 전체주의 체제에도 반대한다

“지금 국가주의가 위험한 것은 러시아보다 미국이라고 보네” / 아인슈타인이 말했다. “미국을 공산주의로부터 방위한다는 구실로 비 미활동위원회는 마녀사냥의 수단에 호소하여, 이전 대전에서 공적이 있는 몇 사람의 장군까지도 해치워 버릴 조짐이네. 이 공산주의에 대한 공포감 조성은 심리적 위장공작인 것으로 여겨지네.

그것은 히틀러가 패거리로부터 자기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서 외부의 위험을 강조한 수법이지. 공산주의든 기독교인이든 나는 어떠한 전체주의 체제에도 반대하네. 나는 인간의 마음 폭이 넓음을 믿고, 그 자유로운 발전을 위해서 신명을 걸고 있어. 마음의 자유로운 발전은 관행에 묶이지 않고 사람이 이성의 통제력을 신뢰했을 때에만 비로소 가능하게 되지.” -270쪽, ‘양심과 윤리관’ 몇 토막

독일 시인·사회학자 윌리암 헤르만 <아인슈타인에게 묻다-시인과의 대화>는 빛과 같은 속도로 달려가고 있는 최첨단사회과학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이 안고 있는 정서 공허와 정신 빈곤을 한꺼번에 채워주는 마음창고다. “기술이 발달할수록 마음이나 정서의 문제, 가장 근본적인 물음이나 인간적인 회의에 대해서는 그 반대로 거리가 상대적으로 멀어지기 마련”인 게 21세기, 우리가 이 책을 다시 읽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윌리암 헤르만(William Hermmanns, 1895-1990)는 독일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이민한 시인이자 사회학자이다. 그는 독일 라인난드 주 코블렌츠에서 태어나 열 살 때 고아가 되어 친척들에게 기대며 살았다. 1차 대전이 일어나자 19살 나이로 군에 입대했다. 그는 100만 명이 넘는 독일군과 프랑스군이 전사한 베르덩대 전투에서 살아남았다.

전쟁이 끝난 뒤에는 베를린대학에서 사회학을 공부한 뒤 국제연맹에서 인권활동을 벌이는 한편 유럽통합운동을 활발하게 펼쳐나갔다. 그는 시인으로서도 이름을 날렸으며 아인슈타인과는 방송에서 반전에 관한 대담을 벌였다. 히틀러가 집권한 뒤부터 반전주의 내용을 담은 시가 탄압을 받자 1934년 독일을 떠나 유럽 각국을 다니다 1937년 미국으로 옮겨가 하버드대학에서 강의했다.

2차 대전 때에는 미군 정보국에서 대위로 일했다. 전쟁이 끝난 뒤 독일에 있는 친척들과 친구들이 모두 나치 수용소에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은 그는 한때 캘리포니아 주로 옮겨 기독교 휴향지에서 은둔생활을 했으나 곧 새너제이대학으로 돌아가 1965년까지 독일문학, 사회학 등을 강의했다.

그는 만년에는 젊은이들과 유대를 통한 세계평화, 유대교와 기독교 사이 화해, 독일 프랑스 사이 화해운동 등을 벌였으며 독일 대통령으로부터 문화훈장을 받는 등 지구촌 곳곳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1990년 4월 새너제이에서 이 세상을 떠났다. 지은 책으로는 <아인슈타인과 시인> 외에도 베르덩대전투에 참가한 체험을 바탕으로 양심회복을 주장한 <대학살> 등과 함께 많은 시를 남겼다.

옮긴이 조 환은 영남대에서 36년 동안 섬유가공 기술을 강의한 섬유공학 교수로 정년퇴직과 함께 지난 99년 3월부터 한국염색기술연구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일본섬유학회 창립 60주년 기념식에서 한국인 섬유기술 전문가로서는 처음으로 아시아 섬유 과학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감사패를 받았다. 한국염색가공학회 회장을 맡았으며 지금 영남대학교 명예교수로 있다.

옮긴이 석상인(장석환)은 2001년부터 2008년 10월까지 일연학연구 원장으로 일연선사가 지는 <삼국유사>에 대한 연구뿐 아니라 <삼국유사>를 독일어로 옮겨 프랑크푸르트 도서박람회에 냈다. 독일 쿠텐베르그 인쇄박물관에 <삼국유사> 영인본과 독일어 영인본을 기증하는 등 우리나라 기록문화를 지구촌 곳곳에 알렸다. 인각사 주지를 맡았으며, 지금 정방사(淨方寺) 주지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