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in] 나라도 시를 쓰지 말아야지 하다가 ···
[문화in] 나라도 시를 쓰지 말아야지 하다가 ···
  • 이소리 논설위원
  • 승인 2013.03.28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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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윤석산, 일곱 번째 시집 <나는 지금 운전 중>을 읽고

차창 밖 진눈깨비가 질척질척 내리고 있다.
미끄러지지 않게
조심조심 나의 운전 마음에 쓰인다.

훈훈한 히터, 차 안은 이내 노곤해지고
백미러로 보이는 뒷좌석
아내와 딸아이 머릴 맞대고 잠들어 있다.

곤곤히 내리는 세상의 진눈깨비.
백미러 안 머릴 맞댄
아내와 딸아이 달려가는 달디단 꿈

그 길,
그 한 모퉁이

조심조심, 나는 지금 운전 중이다. -83쪽, ‘나는 지금 운전 중’ 모두

시인 윤석산
우리는 누구나 이 모진 세상을 그나마 별 탈 없이 살아가기 위해 “운전 중”인지도 모른다. “진눈깨비가 질척질척 내리”는 이 세상에서 “미끄러지지 않”기 위해서. 내가 진눈깨비에 한순간 미끄러진다는 것은 곧 “백미러 안 머릴 맞댄 / 아내와 딸아이 달려가는 달디단 꿈”을 산산조각 내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이 시에서 말하는 “진눈깨비”는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부딪치거나 부대끼는 모든 걸림돌이다. 그 걸림돌이 내가 싫든 좋든 아무런 상관없이 “곤곤히 내리”는 곳이 이 세상이라는 것이다. “백미러 안”은 “머릴 맞댄 / 아내와 딸아이 달려가는 달디단 꿈”이 영그는 집이다. 그래. 사람들은 누구나 상처받지 않고 살아가길 바라지 않겠는가.

한양대학교 명예교수를 맡고 있는 윤석산 시인이 일곱 번째 시집 <나는 지금 운전 중>(푸른사상)을 펴냈다. 지난 40여 년 동안 학문을 연구하면서 시를 쓰고 있는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시가 곧 우리네 삶이요, 우리네 삶이 곧 시라는 사실을 일깨운다. “바위를 새기고 들어앉아 / 이제는 그만 / 바위가 되어버린 사내”(마애석불)처럼.

오늘을 맞으며, 전철 안 홍해, 서울깍쟁이, 걷는 맛, 일요일, 전철 4호선, 나귀와 노인, 오리정 순두부, 그 사내, 나무를 올려다보며, 신도림 전철역, 지하철 안, 문득 내 생의 연기(緣起)를 만나다, 견인차에 세상은 끌리어가고, 심도 좋으시다, 겨울나기, 산전수전 수로부인, 찬란한 봄, 삼월 한 달, 질그릇 등 모두 4부에 실린 57편과 ‘시화-시를 향유한다는 것’이 그것.

시인 윤석산은 ‘시인의 말’에서 “시를 쓴다는 것 / 이것이 ‘어쩔 수 없이 나가는 일’이 아니기를 / 그렇게 마음으로 바라본다”라고 쓴다. 이 말은 곧 시인이 “또 한 권의 시집 /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외출’마냥 내놓는” 그런 게 아니다. ‘어쩔 수 없이’가 아니라 ‘반드시 나가는 일’이 시 쓰기이자 시집을 펴내는 일이다. “혹한의 겨울, 그저 차디찬 바람뿐”이라도 말이다.

왜 갑자기 이 도시가 우측통행을 고집할까?  
왜 갑자기 이 도시가 우측통행을 고집하는지 알 수가 없다.
사람들은 생각이나 난 듯이 좌측으로 걷다가는 그만 우측으로 발길을 옮겨 걷기 시작하고
무심결에 좌측으로 걷다가는 마주 오는 사람과 맞부딪게 되면 괜 실히 머쓱해 하며 이 도시를 위한, 우측의 우측을 위한, 우리의 보행은 하루하루 숙지되고 있다. -24쪽, ‘우측통행’ 몇 토막

그래. 글쓴이도 어느 날 갑자기 우측통행을 고집하는 이 도시에 고개를 갸웃거린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지하철을 타기 위해 계단을 내려가자면 노오란 선이 그동안 좌측통행에 길들여진 나를 겁나게(?) 째려보지만 나도 모르게 좌측으로 걷고 있었다. 사람들도 우왕좌왕하긴 마찬가지. 비록 지금은 사람들 대부분이 우측통행을 하고 있긴 하지만.

글쓴이도 사실 윤석산 시인처럼 ‘우측통행’이란 시를 쓰고 싶었다. 좌우 이데올로기로 쪼개진 이 나라 슬프고도 아픈 현실과 진보와 보수로 나누어진 깊은 갈등을 ‘우측통행’이란 시에 빗대고 싶었다. 좌측통행에서 우측통행으로 바뀐 까닭도 바로 이러한 슬프고도 아픈 분단과 이상한 이데올로기에 빠져 있기 때문이라는 그런 시 말이다.

윤석산 시인이 쓴 이 시를 읽으며, 글쓴이는 시인이기에 반드시 따져야만 하는 그런 이상한 책무에서 홀가분하게 벗어날 수 있었다. 그는 “인류의 오랜, 다만 왼편이고 싶은 욕망”이 곧 좌측이며, 이는 “우측으로 기운 지구” 때문이라고 가늠한다. 그렇다. 한 곳으로 너무 쏠리지 않기 위해서는 자신도 모르게 그 반대쪽으로 갈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그래. “먼지 풀풀 날리는 시골길 / 타박타박, 그래도 걷는 맛은 있었”(걷는 맛)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어떠한가. 좌측통행을 갑작스레 우측통행으로 바꾼 것처럼 그 시골길은 “4차선 드넓은 신작로 / 쌩쌩이며 달려가는 자동차들 사이 / 겨우 한쪽으로 밀려나, 자칫 떨어질세라 / 차도 변, 흰 선으로 그어 놓은 / 간신히 부쳐진, / 생기다 만 길” 아닌가. “한여름 뙤약볕 징글징글 달아오른, / 막막한 아스콘 신작로길”, 그 답답한 길 말이다.

오빠라고 부르면 바람둥이가 된 듯하고···
아저씨라고 부르면, 기분이 별로 좋지를 않고
오빠라고 부르면 바람둥이가 된 듯하고
아빠라고 부르면 값싼 사이 같고
그러면 그녀는 나를 무어라고 불러야 하나 -82쪽, ‘그녀’ 모두

시인 윤석산이 쓴 시편들을 읽고 있으면 이 세상을 꼭두각시처럼 살아가는 우리들 속내가 그대로 드러난다. 그래. 새파랗게 젊은 너라면 그 쭉쭉 빵빵 몸매 늘씬한 예쁜 여자들이 무어라 불러주길 바라는가. 4~50대 중늙은이 혹은 6~70대 늙은이라면 마네킹처럼 살아가는 성형 여자들이 무어라 불러주길 바라는가.

시인은 이 시집 곳곳에서 사람들 삶을 옭죄는 우리 현실을 느긋하게 한 삽 한 삽 떠내고 있다. “자신의 속살을 벌레에게 내어준 채 과일은 익어가고 있었구나”(과일을 한 입 베어 물다가)라거나 “자동차 기름을 만땅 채운 날은 왠지 마음이 빵빵하다”(빵빵, 꽉꽉, 든든), “오늘도 대낮 환한 꿈속 유유히 거니시는 / 무소불위의 제왕이여”(노숙자),

“나 홀로 마시는 술이 좋다”(독작), “머리가 희끗희끗, 잠시라도 우리는 당당하고 싶을 뿐이다”(건배), “부도 처리된 삼진철강, / 굳게 잠긴 철문··· 봄 / 부도처리 되지 않은, 지금 마악 찬란한 가동 중이다”(찬란한 봄), “지지리도 못난 질그릇 하나 / 세상 한 귀퉁이, / 언제부터인가 그렇게 자리하고 있다”(질그릇) 등이 그러하지 아니한가.

시인 윤석산은 눈이 밝은 시인이다. 눈만 밝은 게 아니라 마음도 밝다. 이 세상 모든 것들이 그에게 다가서면 곧 우리들이 겪는 고된 삶이 되고, 우리들 마음을 다독이는 시가 된다. 그는 시를 위해 시를 쓰지 않는다. 그는 우리들 삶을 위해 우리 사회를 가늠하는 시를 쓰지 않으면 안 되는 천상 타고난 시인이다.

시를 위해 시를 쓰지 말아야겠다 생각하다가···
온통 잡지마다 넘쳐나는 시들을 보며
나라도 시를 쓰지 말아야지 하다가
그래도 시는 써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다가
시를 위해 시를 쓰던 때를 생각하다가
시를 위해 시를 쓰지 말아야겠다고
마음 다지던, 그러한 때를 생각하다가
어슴푸레 밝아오는 새벽 하늘가 제 몸 미처 숨기지 못한
새벽달, 문득 바라보다가
시가 조만치도 진실 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다가
그만 시 한 줄도 쓰지 못한 채
다만 뿌옇게 밝아오는
오늘
맞이하고 마는구나 -13쪽, ‘오늘을 맞으며’ 모두

시인 윤석산 일곱 번째 시집 <나는 지금 운전 중>은 언제 큰 사고가 날지 모르는 우리 사회에서 접촉사고라도 내지 않기 위해 힘겹게 운전을 열심히 하고 있는 나를 찾고, 우리를 찾는다. “어느 생엔가 덤핑인 채 가방에 담겨져 이 역 저 역을 전전했을 나”와 우리들을 되짚으며, “얽히고설킨 세상 한 복판에”(지하철 안, 문득 내 생의 연기를 만나다) 우뚝 서서.

시인 김광규(한양대 교수)는 “윤석산 교수는 지난 40여 년 동안 학문 연구와 서정시 창작을 겸행하여 왔다. <동학교조 수운 최제우>부터 제7시집 <나는 지금 운전 중>에 이르기까지 그의 저술과 시작이 이룩한 자장과 진폭은 참으로 넓다”며 “이번 시집에 수록된 작품들도 그러한 면모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고 말문을 연다.

그는 “넘어지지 않으려고 버티면서 30년을 함께 살아온 마누라의 낙상(낙상), 더운 곳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들이 겪는 한국의 혹독한 겨울(일요일, 전철 4호선), 십 년 넘게 내 삶의 긴 구간을 타고 다닌 승용차가 폐차장으로 끌려가는 모습(그렇게)···” 등에서 “이 시집은 개인의 일상과 사회의 현실 사이를 오고가며 다양하고 폭넓은 시의 형상을 통해 독자로 하여금 잃어버린 자아를 되찾고 존재의 의미를 되새기도록 해준다”고 평했다.

시인 윤석산은 1947년 서울에서 태어나 <중앙일보> 신춘문예에서 동시가, 1974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서 시가 당선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바다 속의 램프> <온달의 꿈> <처용의 노래> <용담 가는 길> <적> <밥 나이, 잠 나이>가 있으며, <용담유사 연구> <동학 교조 수운 최제우> <주해 동경대전> <주해 도원기서> 등을 펴냈다. 지금 천도교 중앙총부 교서편찬위원장과 한양대 명예교수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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