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수의 뒷방이야기] 제발 말씀 좀 하시지요
[박정수의 뒷방이야기] 제발 말씀 좀 하시지요
  • 박정수 미술평론가(정수화랑 대표)
  • 승인 2013.03.28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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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수 미술평론가(정수화랑 대표)
은근과 끈기의 역사. 묵묵한 인내의 민족. 참을 인(忍) 셋이면 살인도 면한다는 사람들. 우리나라 민족에 대한 정서적 입장은 온순하지만 끈기 있고, 집요하게 자신의 의지가 꺾이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세상은 변하고 있다. 이미 변했는데 아직도 못 따라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현대사회는 자기 PR 시대고 자기 마케팅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잘 알고 있으면서도 옛날의 정서를 그리워하고 자신의 의지를 조용히 묻어두려는 이들도 많다. 도대체가 말을 하지 않는다. 말을 하지 않으니 무엇을 이야기 하는지 무엇을 주장하는데 알 수가 없다. 미술이야기다.    

시각예술로서 미술은 조형언어 혹은 이미지 언어다. 언어라고 하는 것은 소통을 기본으로 한다. 소통은 일방일 수도 있고 양방일 수도 있고 다방향일 수도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미술가들의 전시장은 도대체가 알 수 없다. 일방도 아니고 양방도 아니다. 그저 묵묵히 가만히 있다. 조선시대 몰락한 양반님네 같은 모양새다. 젊은 미술인들은 제각기 무슨 말인가를 내 뱉는다. 그것이 소통이거나 말거나 상관없이 작품으로 소리친다. 자신의 주장을 펼치기 바쁘다. 하지만 미술계의 어르신들이 문제다. 모든 분들이 그러한 것은 아니지만 너무나 과묵하다. 예술은 말(언어)을 만들고 말은 문자를 만들고, 문자는 문화를 만든다. 문화는 문명의 근본이다. 어떤 종류의 말이건 거기에는 뜻이 있다. 뜻에는 뜻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역사와 문화가 있다. 어떤 나라를 정복하려면 말부터 정복하여야 한다. 그 나라의 말이 사라지면 문화와 역사가 사라지는 것과 같다. 그래서 식민시대 때 창씨개명을 하라고 그렇게 다그쳤다. 이름에는 그 사람의 정신과 역사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세계에 우리나라 미술작품을 선보이려면 우리나라 말을 하여야 한다. 좋은 예술은 국경과 지역을 구분하지 않는다. 거기에는 지구세계가 가진 공통의 언어가 들어있다. 포괄적이다. 시각예술이거나 공연예술이거나 상관없다. 미술은 시각예술이다. 대체적으로 미술이라고 하면 건축, 조각, 사진, 회화, 만화 등과 같은 visual art를 의미한다. 공연예술도 미술이라 할 수 있다. 미술전시도 일종의 공연이다. 미술은 존재하지만 명확하지 않은 개념을 문자화 시키는 전초기지다. 문자와 예술의 경계는 있지만 시각예술과 공연예술의 관계와 비슷하다. 서로 다르면서 서로 연결되어 있다.  

우리나라 단어는 대략 50만개가 넘는다. 거기에서 명사만 추려내면 몇 개가 될까. 명사가 많은 나라가 문화가 발달한 나라다. 시골에서 농사짓는 어른들의 대화에서 명사는 그리 많지 않다. 정신노동자라는 말은 명사를 많이 사용하는 이들을 지칭한다. 예술을 좋아하는 기업인들이 늘어나는 추세도 여기에 있다. 예술작품을 감상하면서 새로운 명사를 찾아낸다. 창의적 사고방식의 시작이다. 명사는 실재 사물이나 정신을 구분하지 않는다. 미술계 어르신들은 명사를 잘 그리지 않는다.

미술가에 있어서 말이란 미술작품이다. 자신의 이야기를 주장할 공간은 참 많다. 개인전은 순전히 자기주장이다. 듣기 싫으면 감상하지 않으면 된다. 아트페어는 공연이다. 자신을 알아 봐 주기를 바라는 공간이 된다. 여기에서는 조용한 자기 이야기를 피력한다. 여기서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다만, 말을 하지 않았음에도 주목을 받고자 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작품이 활동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없다. 아직도 시간은 많다. 시대를 살아오신 미술계 어르신들의 말씀을 듣고 싶다. 묵묵히 가만히 계시는 미술작품보다 당신의 역정이 담긴 이야기를 보고 싶다. 작품발표를 위한 대우만 기대하시지 말고, 미술시장에서 많은 활동을 하셨으면 좋겠다. 어른들의 활약이 필요한 현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