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문화콘텐츠 체험 여행(10) - 젊은 연주가를 통해 되살아난 안기옥의 가야금산조
나의 문화콘텐츠 체험 여행(10) - 젊은 연주가를 통해 되살아난 안기옥의 가야금산조
  • 서연호 고려대명예교수/한국문화관광연구원 이사장
  • 승인 2013.03.28 12:3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서연호 고려대명예교수/한국문화관광연구원 이사장
젊은 연주가를 통해 안기옥의 가야금산조가 되살아났다. 우리 음악사에서 눈에 번적 뜨이는 일대 사건이다. 1894년 전남 나주에서 태어난 안기옥은 광복 이후 평양으로 건너가 활동하다 1974년 혜산에서 81세로 작고한 명인이다. 2013년 3월 8일 저녁, 우면당에서는 이지혜(국립국악원 창작악단 소속)의 가야금 독주회가 열렸고, 1시간 10여 분 동안 안기옥의 산조 전곡이 공개되었다. 전곡이라 함은 초기산조(진양조, 중모리, 중중모리, 자진모리), 허튼가락(살풀이, 동살풀이, 단모리), 후기산조(진양조, 중모리, 중중모리, 엇모리, 자진모리, 휘모리)들을 일컫는다. 그의 후기산조는 2004년 8월에 이미 김해숙(전통원 교수)에 의해 연주되었고, 2011년 프랑스 ‘세계문화의 집’에서 이지혜가 연주해 주목받은 바 있었다.

갑오동학농민운동의 해에 태어난 안기옥은 1904년 가야금산조의 시조라 일컫는 김창조의 제자가 된 것을 계기로 그의 산조인생을 시작했다. 식민지시대에 그는 대표적인 연주가로 산조계를 이끌었다. 1929년의 일츅조션 유성기 음반자료(1993년 서울 음반에서 복각)가 남아 있어, 그의 작품 일부는 알려졌지만, 음악세계 전체는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다. 프랑스 연주를 계기로 이지혜는 산조의 전모를 탐구하고, 재조명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안기옥 명인의 가락들을 채보하면서 그가 가지고 있는 산조에 대한 연주력과 다양한 음악적 표현에 감동했고, 그것이 남한에서의 산조 전승과 어떻게 차이가 있는지를 직접 느껴 보고자 하여, 여러 해를 명인의 음악에 몰입해왔다”고 이지혜는 말했다. 명인의 음악자료를 제공해준 양승희(보유자)와 최상일(MBC PD)에 대한 감사와 더불어, 자신의 채보과정을 소상히 밝혀 놓았다.  

안기옥의 가야금산조에는 우조길, 평조길로 짜여진 대목이 많아서 계면길 위주인 남한 산조와는 다르다. 남한 산조의 바탕에는 계면조 대목이 거의 80, 90% 정도를 차지한다. 산조의 발생을 아직도 시나위에서 끌어대기도 하는데, 안기옥의 우조나 평조 대목은 시나위에 나타날 수 있는 음악어법이 아니다. 그것은 판소리에 가까운 것이다. 시나위보다는 차라리 영산회상이 그 음악어법에 가까워진다. 작고한 명고수 김명환의 말처럼 ‘사설 없는 판소리가 산조’일지언정, 산조의 가락형성에 시나위의 영향을 논할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안기옥의 음악을 통해서 알 수 있다. 또한 그의 음악에는 우조길과 평조길이 분명하게 구분되어 있어, 이 두 음계를 같은 것으로 보고자 하는 편협한 우리의 음계론에 명백한 자료를 제공한다. 이상은 김해숙이 남한산조와 안기옥을 비교연구한 결과이다.

필자는 판소리와 함께 가끔 가야금산조를 즐긴다. 음정이나 박자 정도를 겨우 분별하는 수준에서 산조의 음악구조를 논하는 것은 분에 넘치는 일이다. 그렇지만 소리가 제공하는 이미지를 가슴으로 느끼는 것이야말로 행복한 생활이라고 자족하고 있다. 이번 연주를 통해서 안기옥의 다양하고 빠르게 변하는 리듬을 들으며, 종래의 농현이 많은 산조와 다른,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평소 소문만 무성하던 안기옥의 소리를 듣고나서, 우리 전통음악의 현대화를 실증적으로 체감하게 되었고, 아울러 오늘날 우리 국악계가 처한 매너리즘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이지혜와 같은 젊은 음악가들의 힘찬 도전에 큰 박수를 보내고 싶다. 잊혀진 음원, 버려진 음원, 숨은 음원을 찾아 스스로 채보하고, 그 채보를 통해 음악의 참된 구조를 복원하며, 다시 실제 연주를 통해 관객들과 대화하는 작업이야말로 국악계에서 해야 할 우선 과제이기 때문이다. 안기옥과 같이, 스승 김창조의 세계를 극복하고 새로운 음악을 창출한 일은 더욱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일이다. 관객과 진실한 대화를 나누지 못하는 국악인들이 날로 늘어나는 오늘날, 이 혼탁한 국악계의 현실 가운데서, 이지혜가 연주한 안기옥의 산조는 분명 한 줄기의 시원한 청량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