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서양화가 차규선] “세상 시름 잊게 해주는 그림 그리고 싶어”
[인터뷰-서양화가 차규선] “세상 시름 잊게 해주는 그림 그리고 싶어”
  • 인터뷰 이은영 편집국장 / 글 윤다함 기자
  • 승인 2013.03.28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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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한 봄날 표현한 '매화시리즈'展 4월8일까지 신세계백화점 센텀시티점서 열려

     전통도자 특유의 은근한 맛을 현대회화 캔버스 위로 끌어들여와 만개한 매화를 표현하는 차규선 작가. 유난히도 추웠던 지난 겨울 때문인지 그의 작품이 더욱 더 보는 이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보는 것만으로도 봄의 따스함이 가득한 꽃내음이 느껴지는 것 같은 매화시리즈 외에도 그는 소나무시리즈, 겨울풍경 시리즈 등 실험적인 기법을 통해 탄생된 작품들로 잘 알려져 있다. 안료와 흙을 혼합해 바탕을 칠하고 그 위를 역동성 있는 선묘로 긁어내는 작업으로, 그림의 질감이 전통도자기인 분청사기의 느낌과 유사하다.

     지방인 대구에서 작업을 하고 있지만 국립현대미술관을 비롯해 서울시립미술관, 광주시립미술관 등에서 콜을 받았으며 이화익 갤러리, 포스코 미술관 등 전국 미술관 및 갤러리에서 꾸준히 작품을 전시하고 있고, 소장되고 있다.

     내달 8일까지 부산 센텀시티 신세계백화점 6층 윈도우 갤러리 및 2층 VIP라운지에서 만개한 듯 피어오르는 매화, 산수유 등 봄꽃을 소재로 한 화려한 색채의 작품들 20여 점을 감상할 수 있다.

△계명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학과 동 대학원 회화과 졸업 △개인전 : 2012 이화익 갤러리 / 2010 WITH SPACE, 북경 / 2009 포스코 미술관, 서울 / 2007 광주시립미술관 제7회 하정웅 청년작가 초대전 / 2003 이목화랑 외 다수 △단체전 : 2012 White summer, 신세계갤러리 / 2011 자연이준 선물, 제주 이중섭미술관 / 2010 원더풀 픽쳐스, 일민미술관 / 2009 김기수, 차규선 2인전, 부산 맥화랑 외 다수 △주요 소장처 :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광주시립미술관, 이중섭미술관, 서울대법원, 하나금융그룹 등

-부산에서 개인전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어떻게 지내고 있나?
“전시 직전까지는 그림에만 매달리지만 전시 시작하면 좀 쉴 수 있다. 요즘 그림에만 매여 있지 않으니까 너무 행복하다.(웃음) 프로 화가는 하기 싫어도 해야 한다. 그런 게 난 싫다. 요즘은 작업실에서 음악 틀어놓고, 커피 마시면서 책 읽다가 티비도 보다가 날씨 좋으면 나들이도 가고…. 이렇게 계획 없이 즉흥적으로 하고 싶은 대로 생활하니까 너무나도 좋다.”

-전시가 있으나 없으나 그림은 계속 그려야 하는 것 아닌가?
“발등에 불 떨어져야 그린다.(웃음) 전시날짜가 점점 다가오면 그때부터 긴장하기 시작한다. 물론 자발적으로 작업에 몰두해야하고 당연히 그럴 때도 있지만… 전시가 꾸준히 있다 보니, 또 그게 대부분 상업전시다 보니, 밥 먹고 살기 위해 내가 그림 그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전시까지의 시간이 촉박해지지 않는 한 시작하기가 좀 어렵더라. 돈에 대한 생각은 늘 확고했다. 그저 내가 비를 맞지 않을 만큼만 있으면 좋겠다고. 돈 많이 벌어서 멋진 작업실 짓거나 할 생각은 없다. 그저 주변 사람들 힘들게 하지 않고, 구걸하지 않을 만큼만 있으면 되는 게 돈이다.”

-작업을 오래 중단하면 불안해하는 작가들도 있는데 그렇지는 않은가 보다.
“맞다. 화가는 그림을 그리지 않으면 불안해진다. 그리고 그림 그릴 때 쓰는 근육이 따로 있는데, 너무 놀아버리면 나중에는 그림 그리는 법을 잊어버리더라. 한참 쉬다가 전시 다가오면서 그림 그려야할 때 잘 안 된다. 그럴 땐 무지 당혹스럽고 황당하다. 나의 나태함과 게으름이 이렇게 드러나는구나 하고 새삼스레 깨닫는다. 꾸준히 하려고 노력 중이다.”

차규선作 <매화>

-특이하게 미술관 전시를 많이 한 이력이 눈에 띈다.
“미술관 전시는 다른 상업전시에 비해 동기부여가 된다. 미술관 전시는 작품 판매가 목적이 아니니까. 비록 그림은 팔지 못하더라도 의욕이 솟고 기운이 올라오는 걸 느낄 수 있다. 내 스스로의 자존감을 드러낼 수 있는 장이라고나 할까. 미술관에서는 상업갤러리와 달리 어떻게 그려달라는 주문도 없지 않나. 또한 미술관만의 권위가 내가 힘을 준다. 미술관에서는 아무나 전시할 순 없는 거니까.(웃음)”

-흩날리는 듯한 꽃이 가득한 매화시리즈가 인상적이다. 꽃그림을 그리게 된 계기가 있나?
“꽃그림을 얕보는 이들이 많다. 가볍고 우습게 보는 모양인데, 나는 순수한 동기에서 그리기 시작했을 뿐이다. 나는 꽃그림을 보는 사람들이 아무 생각 없이 평온해지길 바란다. 꽃그림에 빠져 멍해진 그 순간만큼은 잡다한 생각, 속세의 골치 아픈 모든 걸 다 잊었으면 좋겠다. 실제로도 많은 분들이 내 꽃그림을 보고 좋아하더라.”

-주로 매화를 많이 그리고 있다. 특별한 뜻이 있나?
“매화가 지닌 어떤 의미를 말하고 싶은 게 아니다. 그런 건 너무 뻔하지 않나. 그저 난 사람들의 마음을 멍하게 만들고 싶었을 뿐이고, 그 매개체로 환한 봄날을 떠올렸고 매화를 택한 것일 뿐이다. 매화뿐만 아니라 소나무도 그린다.”

-물감을 뿌리고, 긁고, 닦아내는 등 독창적인 작업을 선보이고 있다. 특히 작품 분위기가 분청사기와도 흡사하다.
“분청사기 느낌에서 지금은 보다 진화가 됐다고 말하고 싶다. 오래 전, 분청도자기 전시를 보곤 이걸 평면에 가져오면 그림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부터 작품에 흙을 재료로 써오긴 했었지만, 분청사기 자체를 평면으로 펼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때부터 도자기의 한계를 극복하고 이를 평면으로 가져오기 위해 연구를 많이 했다. 연구해보니 굳이 많은 붓을 대지 않아도 그림이 될 수 있더라. 무엇이든지 표현이 가능했다. 당시에는 그에 빠져서 한 달에 100점을 그린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것만 계속 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변화를 모색해야할 시점이 온 거다. 그래서 물로 빨아보기도 하고, 씻어내 보기도 하고 하다가 지금까지 오게 됐다. 여전히 사람들은 분청사기 기법을 얘기하는데, 진화해서 이제는 회화적인 기법으로 넘어온 단계다.”

-흙을 재료로 이용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단순하다. 흙은 사용하는데 돈이 많이 들지 않았다.(웃음) 대학원에 왔는데 큰 그림을 그려야했다. 탁자보다 큰 크기의 그림을 그리려니 거기에 들어가는 물감을 감당할 수 없었다. 그래서 고민하던 찰나에 흙을 써보면 어떨까 생각이 들었다. 또 캔버스 살 돈도 넉넉지 않아서 이미 완성해 놓은 그림 위에 덮어서 또 그리고, 또 그리고 한 적이 많다. 어떤 소나무 그림에는 그 아래로 사람 7명이 있는 것도 있다.(웃음) 엑스레이로 찍으면 다 나올 거다.”

-2011년 3월 이중섭 미술관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선발됐었다. 당시 이야기가 궁금하다.
“기존 6개월에서 연장 신청해 1년간 있었다. 3월에 입주해 4월에 전시가 있어서 한 달 만에 전시 준비하느라 고생 많았다.(웃음) 그러던 중, 날씨가 정말 좋은 날이었는데, 작업실에서 밖을 보니 바다가 눈부시게 반짝이고 있더라. 이런 날씨에 작업실에 박혀 그림만 그리는 게 마치 신에 대한 모독처럼 느껴져 낮에 신나게 돌아다니고 결국 그날 밤은 꼴딱 새서 작업한 적도 있었다.(웃음) 그때도 지금도 느끼는 거지만 섬에는 이상한 기운이 있는 것 같다. 난 그때 마치 유배를 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선비들 유배 가서 유배문학 하듯이 나도 제주도에서 흡사 그런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거기엔 컴퓨터도 없어서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당시 레지던시에서 받은 영향이 있나?
“제주도의 가장 본질적인 게 무엇일까 생각해봤는데, 바로 돌이더라. 그래서 까만 돌을 생각하며 검은 바탕에 매화나 제주도 바다를 그리기도 했다. 언젠간 돌담이나 돌을 주제로 작품을 해보고 싶다.”

-작가는 일생에 한번 이상은 작품에 변화를 맞는다고 한다. 지금까지의 변화와 앞으로의 변화에 대해서 듣고 싶다.
“원래 난 인물화와 사실풍경화를 많이 그렸다. 그러다가 문득 이걸 계속 하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에 변화를 모색했고 지금에 온 거다. 지금도 다시 변화하고 싶다. 다시 인물화를 그리고 싶은데, 온몸에 전율이 오는 그런 가슴 찡한 인물화를 그리고 싶다. 요즘 가끔씩 내 그림이 지겹기도 하다. 탈바꿈하고 싶지만 그게 마음대로 되는 건 아닌 것 같다. 변화도 시기가 있다고나 할까. 과감히 다 내려놓고 새로 시작할 수 있는 그런 시기 말이다. 그리고 변화한다고 해서 무조건 좋은 것도 아니다. 개성이란 이름으로 함량 떨어지는 작품을 할 순 없지 않나. 자연스럽게 변하는 게 가장 좋다. 잘못 변하면 망하는 거다. 만약 변화를 꾀하지 않는다면 작품의 깊이를 더해야겠다. 그 시기가 언제 올지는 모르겠는데…. 나도 내 그림이 어떻게 바뀔지 감이 안 온다.”

-그렇다면 지금 자신의 작품에 만족하나?
“전시 때마다 매번 그림이 좋을 수는 없다. 서른 점 전시한다고 했을 때 그 중 한 점이라도 좋다면 성공한 거라고 본다. 작가는 작가 스스로 자신의 수준을 알아야 한다. 그림 못 그리는 화가가 단순히 재능이 없어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건 아마 자기 스스로 자신의 그림을 볼 줄 모르기 때문이 아닐까. 자신의 작품을 냉정하게 볼 줄 알아야하며, 때로는 감동할 줄도 알아야 할 것이다. 가끔은 내가 그려놓고도 내 그림이 허접해 보일 때가 있다.(웃음) 냉정한 시각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정말로 아름답거나, 처절한데 아름답거나, 혹은 아주 깊은 사유가 있거나 이 세 가지 중 하나만 충족되더라도 대단한 그림이라고 생각한다.”

-서양화인데도 불구하고 동양적인 느낌이 묻어난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유전자. 그건 유전자 때문 아니겠나. 난 한국 사람이다. 그래서 그런 게 자연스레 드러나는 것 같다.”

-고급 호텔 그룹 만다린오리엔탈 호텔 측에서 당신 그림에 반해 호텔 로비에 대작이 걸릴 거라고 들었다.
“만다린오리엔탈 호텔이 올해 안으로 타이페이에 호텔을 오픈하는데, 거기에 5미터짜리 내 그림이 걸린다. 내 그림을 보게 된 호텔 회장이 아주 마음에 들어 해서 이뤄진 일이다. 호텔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내가 어떤 그림이었으면 좋겠다고 흘러가듯 말하길래 내가 그린대로 받아달라고 솔직하게 말했더니 웃더라.”

-향후 전시계획은 어떻게 되나?
“대구에 있는 대안공간에서 지금껏 보여준 적 없는 작업을 전시해보면 어떻겠냐고 제의가 왔다. 얘기가 오가는 중이다. 가을에는 국립광주박물관에서 대나무를 주제로 한 전시가 있다. 개인전은 아니더라도 전시는 끊이지 않고 계속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