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경칼럼] 명의를 만난 도쿄의 봄날
[이수경칼럼] 명의를 만난 도쿄의 봄날
  • 이수경 도쿄가쿠게이대학 교수
  • 승인 2013.04.01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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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어가니 그동안 혹사했던 세월 만큼 몸도 연륜 속에 노화를 맞이한다. 최근엔 자신을 추스릴 여유조차 없이 일과 현실에 쫓기다가 쓰러지거나 세상을 달리한 동료들도 점차 늘어나는데다 필자도 소모품을 혹사시킨 탓에 병원을 자주 찾게 된다.

특히 이번 정월에는 제자들 졸업 논문 제출시기에 맞춰서 수정 체크하고, 몇 편의 의뢰 원고를 적느라 거의 보름을 책상 앞에서 하루 한 두시간의 수면으로 컴퓨터 작업 생활만 하였던 터라 마음과는 달리 몸이 과로를 못 이기고 다양한 형태의 부작용으로  앓게 되었다.

도쿄의 봄날

특히 시신경의 과로로 눈이 보이지 않고, 심한 안구건조증과 더불어 눈꺼풀 뒷쪽에 생긴 굵은 염증들로 인해 통증으로 눈을 뜰 수가 없었다. 더구나 올해는 이상기온으로 인한 태풍급의 바람과 꽃가루 알르지, 황사로 인한 요동치는 봄의 잉태가 있었기에 필자의 눈 상태도 심각하였다. 그래서 근처의 현대적인 시설의 병원을 찾았으나 그 의사는 제대로 환자의 증세를 파악하지 못하고 형식적인 치료 밖에 하지 않았다. 의사가 반드시 환자의 통증 혹은 증세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눈꺼풀 속의 두드러진 염증들을 만지면서도 곪지 않고 있으니 그대로 내버려두자는 의견을 말하기에 얼마나 불편한지 이해도 못 하는 그녀가 야속하기도 했다.

참다가 도저히 힘들어서 인근의 큰 역 앞에 있는 화려한 선전의 안과 전문병원에 갔다. 그런데 이 곳은 더 심각한 것이, 의사가 일방적 진단만 내릴 뿐, 환자가 증세에 대해서 발언조차 못하게 하는 것이다. 더구나 옆에서 보조하는 간호사들도 모두 의사 눈치에 절대 복종주의로 환자를 대하는 것이다. 참 이런 병원도 있구나 하는 충격과 더불어 의사의 교만스런 권위적 태도를 보며, 우물안 개구리가 된 권력 구조에  젖어있으면서 눈 옆에 나 온 다래끼만 지적하는 엉터리 의사라는 판단을 해야했고, 지난번 병원보다도 비싼 진료비를 주고 나오면서도 이렇게 제대로 된 의사가 없을까 하는 씁쓰레함으로 가득했다.

아픈 눈으로 수업 준비도, 집필도 못 하고 속 상해 있을 때 한국의 가족들이 보험은 안 들어도 의료선진국으로 거듭나는 한국에 나와서 수술을 받으라는 조언에 그래야겠다고 마음을 굳히던 중이었다. 바람이 심하게 불던 3월 중순, 도저히 눈 뜨고 운전조차 할 수 없기에 급히 인터넷으로 주변의 다른 안과를 찾아서 급히 처방만 받고 다음 주에 한국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병원안에 들어가니 로비의 대기실에 그야말로 남녀노소의 환자들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는 것이 아닌가? 모두가 질서정연히 앉아서 기다리고 있고, 간호사들이 부산하게 환자들을 진찰실로 안내하고 있었다. 필자도 진료 수속을 마치고 1시간 정도 앉아 있자니 이름을 부르기에 진찰실 앞 대기실에서 순서를 기다렸다. 그 때 진찰실 안에서 명확한 진찰 결과를 환자에게 납득하도록 또박또박 일러주는 의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게중에는 젊은 현장 노동자나 중년 여성들, 노인들도 순서대로 진료를 받는데, 환자 누구에게나 한결같이 정중하게 증세에 대해서 성실히 설명을 하는 의사의 목소리가 퍽이나 다정하고 친근감있게 들려왔다.

다른 대학병원 의사들도 몇 사람이 번갈아 진찰을 하지만 필자는 이 병원 원장의 진찰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 곧 필자의 순서가 와서 인사를 하며 들어가 앉았더니 60대 초로의 의사가 인사와 더불어 어떤 증세인지 일단 묻는다. 물론 진찰실에 들어가기 전에 시력이나 기본적인 안압 검사 등은 미리 한 상태라서 필자의 카르테에 정보는 입력된 상태였다.

그래서 필자는 간단히 지난 1월 이후의 상황과 통증에 대해서 설명을 했더니 진찰 기계로 눈검사를 시작하자 마자 필자의 눈꺼풀 뒤의 염증들을 잡아내더니 이건 빨리 제거해야 불편함이나 통증이 없을테니 수술 날짜를서둘러 잡자고 하신다. 이 때는 의사의 의견이라기 보다는 고통 받는 필자의 입장에 서서 함께 어서 아픔을 덜어보자는 입장의 제안이었기에 얼마나 반갑고 기뻤는지 모른다. 역시 마음이 있는 사람은 표현도 다르다고 할까?

더구나 그 전에 갔었던 병원 의사들이 모두 정확한 진단을 못하였고, 이번에도 판단을 못하는 의사라면 휴가를 받아서 한국에서 수술을 하고 올 예정이었기에 시간이 없던 필자로서는 더욱 더 반갑게 느껴졌다. 분명 독자들도 통증을 이해 못해주는 병원을 전전하다가 내 아픔을 마치 내 몸처럼 이해하고 정확히 대처해 주는 의사를 만났던 기억이 있다면 이 마음을 충분히 이해해 주리라. 그래서 담당의의 의견대로 최대한 빠른 수술날을 부탁드리자 3월 22일로 하자고 하신다. 순간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날은 필자의 제자들 졸업식이었고, 더구나 올 해는 아끼던 제자가 졸업생 대표로 답사를 맡기에 반드시 참석하고 싶었던 날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 날 수술을 하면 4월에 통증없이 학기를 맞을 수 있으나 포기하면 4월 이후로 수술이 넘어가게 된다. 게다가 이 분의 바쁜 일정이나 필자의 일정을 생각하면 한시라도 급히 이 분의 시간대에 맞추는게 현안이기에 졸업생들에겐 미안함을 느끼며 그 날을 택했다.

학교에 연락하여 상황을 말한 뒤 병가를 받고, 22일에 수술을 했는데, 세 번의 마취주사의 아픔외엔 없었고, 무엇보다 의사와 간호사와의 수술 중의 대화가 매우 간결하면서도 알기 쉽게 와 닿는 대응이라서 신뢰감으로 가득했다. 환부를 찢어보니 예상보다 굵은 염증 덩어리가 많이 들었으니 이 참에 다 제거하자는 목소리가 들렸고, 이미 의사와 환자 사이엔 신뢰감이 굳혀졌던 상태였기에 [참을테니 나쁜 부분은 다 제거해 주세요]라는 순수한 믿음 뿐이었다. 수술을 받는 동안 이 분은 [안과의 명의]이자 [환자의 아픔을 함께 느끼고 시술하는 진정한 의사]라는 생각으로 마음이 훈훈했다.

수술 뒤에 지혈이 되었어도 당분간은 안정을 해야 한다는 등의 몇 가지 지시 후에 익숙하고 친절한 간호사들의 뒷 처리를 받고 나서 오랜만에 편히 쉬었다. 마취가 풀리고 약간의 출혈은 있었지만 정신적 안도감으로 아픔도 신경쓰이지 않았다. 게다가 [안구 건조증이 심하니 시간이 있을 때 지속적 치료를 받아서 낫도록 하세요]하며 필자를 걱정해 주는 표현은 필자가 지켜 본 모든 환자에게 동등하게 대하는 어투였었다. 그런 믿음 때문일까? 약을 싫어하는 필자도 열심히 치료를 받으며 일벌레가 모든 일을 전폐하고 약 일주일간 음악과 더불어 차분히 안정을 취했고, 지금은 안대를 하고 외출할 정도로 거의 완치상태다. 이토록 고마운 눈 상태로 만들어 준 의술이 있건만 아픔도 몰라주는 의사들도 많으니 세상 어디나 의술의 차이 땜에 고생하는 사람들이 많을거라는 생각도 해 봤다.

필자가 아끼는 제자인 이시다. 졸업식에서 졸업생 대표로 답사를 맡고 재일동포 연구로 우수논문으로 졸업했다.

누워있는 동안 졸업식에 참석했던 제자들 등의 연락이 이어졌고, 대학원 졸업생이 김밥을 말고 한국 음식들을 챙겨다 주기도 해서 결코 외롭지는 않았다. 그리고, 오늘은 졸업생 대표를 맡았던 제자가 4월부터 출근하기에 그 전에 꼭 만나고 싶다고 해서 근처에서 만났다. 이시다(石田)라는 필자가 아끼는 제자는 한국 유학을 포함한 5년 동안을 한결같이 열심히 공부를 해 왔고, 한국어, 한국문화는 물론 중국어, 영어 등을 열심히 하여 필자와는 자연스런 한국말로 메일을 주고 받을 정도이다.

또, 여린 외관과는 달리 검도2단의 소유자로 명랑한 성격에 요즘 보기 드물 정도로 예의도 발라서 동료 교수들에게도 사랑을 받는다. 그녀의 졸업 논문은 [재일 동포 및 동포 학교 관련 연구]가 테마인데, 필자를 지명해서 유학을 온 독일인 제자와 함께 각지의 동포 인터뷰나 민족학교 답사를 통해 세밀하고 포괄적으로 분석한 우수한 내용의 논문을 적어서 주변 평판도 좋았다. 필자의 친구인 재일동포 변호사나 관련 기자들에게도 직접 발로 뛰며 조사 작업을 했기에 그들로 하여금 연구 자세가 올바른 학생이라고 칭찬이 자자할 정도였다. 더욱 나를 놀라게 한 것은,그녀가 졸업 논문을 제출한 뒤, 이번엔 자신의 한국어 능력을 확인하며 공부하는 차원에서 단기간에 몰입하여 일본어 논문을 한국어로 번역하여 보내온 것이 아닌가. 물론 완벽하진 않아도 성실하게 번역한 논문을 보면서 이제 사회인으로 학교를 떠나는 제자 아이 보낼 생각에 눈물이 쏟아지기도 했다. 졸업식날 아침 일찍 아무도 없는 연구실 앞에 가서 사진을 찍어서 보내주며 수술이 성공하길 빈다며 되려 격려해 주던 이 제자 아이에게 어떻게 정이 안 들 수 있단 말인가?

이시다를 비롯한 졸업생들이 필자를 향한 감사와 쾌유를 기원하는 메시지 등을 담은 편지와 선물을 들고 이시다와 함께 기념촬영을 했다.

그래서 안대를 하고 약속한 곳으로 갔더니 다른 졸업생들은 회사 연수 땜에 이미 지방으로 내려갔고, 그들이 적어놓은 편지나 에피소드, 선물 등을 전해 주는 것이 아닌가. 어디서 구했는지 태극기 문양의 머그 컵 속에 일벌레인 지도교수의 힐링을 위한거라고 향긋한 차 팩을 넣은 뒤, 그동안 감사했다며 부디 건강을 챙겨달라는 메시지로 나를 감동시킨다.

필자도 그녀를 위해 사회 생활에 힘 내라고 자그마한 것을 준비했던 터라제자와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조촐한 우리의 졸업식을 보낸 셈이다. 그녀의 고마운 말과 다른 제자들의 메시지로 마음이 따스한 귀로의 거리에는 어느새 화사하게 핀 벚꽃들이 불 빛을 받아서 환상적인 봄날 밤의 향연을 자아내고 있었다.

고통스런 힘든 나날도 있었지만,믿을 수 있는 진정한 의사를 만났고, 사랑하는 제자들의 따스한 마음으로 행복을 느끼는 필자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신학기 준비를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