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cc 생맥주잔 들고 지하철 탄 사내
500cc 생맥주잔 들고 지하철 탄 사내
  • 이소리 논설위원
  • 승인 2013.04.10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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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2000년대 문인과 술··· 그 불콰하면서도 들쭉날쭉한 포옹(5)

  이 글은 월간 <신동아>에 실었던 내용으로, 원고분량 문제로 <신동아>에 못다 실은 이야기가 알몸 그대로 들어 있습니다. 문인과 술, 술과 문학··· 이 둘은 떼고 싶어도 뗄 수 없는 부부나 애인 같은 사이가 아닐까요. -편집자주


한국문단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문인들이 벌이는 술판. 그 술판에서 있었던 배꼽을 잡는 이야기 가운데 천승세 소설가와 박몽구 시인 이야기를 빼놓으면 멀쩡한 이가 하나 빠진 것처럼 꽤 서운하다.

술이 거나하게 취하면 ‘뽀뽀로 뽀뽀뽀~ 찌찌리 찌찌찌~’를 기막히게 잘 부르는 시인이자 문학평론가 강형철(숭의여대 교수), 500cc 호프 잔을 들고 길거리와 지하철 안에서 마시며 이야기하는 시인이자 문학평론가 전기철(숭의여대 교수)···

천승세 소설가와 박몽구 시인 이야기부터 입 호미로 슬슬 긁어보자. 그해가 몇 년이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5.18 행사를 마치고 광주에 있는 한 여관에서 문인들이 밤새 술을 나눠 마시며 남북 이야기, 꼴사나운 정치 이야기, 허리 휘게 하는 경제 이야기, 사회 돌아가는 이야기 등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눌 때였을 것이다.

천승세 소설가, 김준태 시인, 곽재구 시인 등 10여 명이 맥주를 나눠 마시며 입에 거품을 물고 세상타령을 하고 있을 때였다. 저만치 조용히 앉아 맥주를 홀짝홀짝 마시던 박몽구 시인이 소변이 마려운지 일어서서 화장실에 갔다. 그 사이 천승세 소설가가 밤새도록 이어지는 술에 은근하게 취하고, 몸이 약간 피곤했던지 여관 방 한 귀퉁이 사람들이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은근슬쩍 드러누웠다.

잠시 후 화장실에서 나와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박몽구 시인이 천승세 소설가가 보이지 않자 한 마디 툭 내뱉었다.

“어이! 승세 자나?”

그때였다. 천승세 소설가가 느긋이 박몽구 시인 말에 안티를 걸었다.

“어이! 승세 안 자고 여기 누워 있네.”

“....... 서... 선생님! 죄송합니다.”

“뭐라? 승세 자냐구? 예끼 이 못된 놈 같으니라구. 당장 내 앞에 와서 무릎 꿇고 싹싹 빌지 못해.”

하동 천승세 소설가는 1939년 목포 출생이었고, 박몽구 시인은 1956년 광주 송정리 출생으로 나이 차가 무려 17살이나 났다. 195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점례와 소’가 당선되면서 문단에 나온 천승세 소설가는 말 그대로 문단에서 어르신에 속했고, 1977년 <대화>지에 시를 발표하면서 문단에 나온 박몽구 시인은 등단에서도 무려 19년이나 차이가 났었다.

박몽구 시인은 그 일로 한동안 천승세 소설가만 보면 주눅이 들어 은근슬쩍 피해야 하는 웃지 못할 일을 겪어야 했다.

‘뽀뽀로 뽀뽀뽀~ 찌찌리 찌찌찌~’를 기막히게 잘 부르는 시인이자 문학평론가 강형철(숭의여대 교수), 500cc 호프 잔을 들고 길거리와 지하철 안에서 마시며 이야기하는 시인이자 문학평론가 전기철(숭의여대 교수)도 빼놓을 수 없다.

‘자유실천문인협의회’가 1987년 9월 ‘민족문학작가회의’로 거듭난 뒤 시인 김명수 초대 사무국장에 이어 사무국장을 맡았고, ‘민족문학작가회의’가 다시 ‘한국작가회의’로 그 이름이 바뀐 뒤 부이사장을 맡았던 강형철 시인. 그가 술이 얼큰하게 오르면 부르는 ‘뽀뽀로 뽀뽀뽀~ 찌찌리 찌찌찌~’는 문단에서 ‘8도 뽀찌타령’으로 인기가 아주 높았다.

8도 뽀찌타령은 그 지역 특징을 살리면서도 풍자와 익살로 문인들 배꼽을 잡게 만드는, 시쳇말로 말하면 ‘잡놈이 부르는 색타령’이라 할 수 있다.

“뽀뽀로 뽀뽀뽀~ 찌찌리 찌찌찌~”로 강원도부터 시작되는 9도 뽀찌타령은 강원도 ‘비탈’ 혹은 ‘감자’, 함경도 ‘아바이 순대’ 혹은 ‘도끼’, 평안도 ‘기생’, 서울 ‘깍쟁이’, 경기도 ‘사이다’ 혹은 ‘성냥’, 충청도 ‘멍청’ 혹은 ‘살랑’, 전라도 ‘개땅쇠’ 혹은 ‘굴비’, 경상도 ‘문디’, 제주도 ‘말’로, 강형철 시인은 타령마다 적당히 추임새와 새로운 이야기를 넣어가며 기가 막히게 잘 불렀다.

제주 출신인 현기영 소설가는 강형철 시인이 ‘팔도 뽀찌타령’을 부르면 은근히 즐기면서도 “그 타령에서 제주도만 빼면 안 되겠느냐?”며 꽤 익살스런 표정을 짓곤 했다. 강원도, 함경도, 평안도, 경기도(서울),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제주도 뽀찌타령 가운데 제주도는 “뽀뽀로 뽀뽀뽀~ 찌찌리 찌찌찌~ 제주도라~ 말 뽀뽀뽀뽀로~ 찌찌찌찌리~”였다.

지금 숭의여대 문창과 교수를 맡고 있는 전기철 시인은 조태일 시인만큼이나 생맥주를 참 좋아했다. 그는 생맥주 집에서 500cc 생맥주를 연거푸 마시다가 술값을 모두 계산하고 술좌석이 파해도 계산대에 서서 잘 나오지 않았다.

“아가씨! 500cc 맥주잔 이거 얼마에 팔아요?”

“아니, 왜 그러세요?”

“이 맥주잔에 생맥주를 가득 채워 집에 가면서 마시려구요.”

“.......”

전기철 시인은 술을 마실 때마다 그렇게 생맥주를 가득 채운 500cc잔을 사서 거리를 걸으면서,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홀짝홀짝 마시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하는 것을 꽤 즐겼다. 그는 길거리에서나, 지하철 안에서 지나치는 사람들이 깔깔거리며 웃거나 ‘저 사람 정신이 약간 나간 사람 아냐?’라는 이상한 눈빛으로 바라보든 말든 전혀 개의치 않고 생맥주를 즐겁게 마시며 마구 떠들었다.

그는 지금도 술을 마시다 취하기 시작하면 나이가 많이 들었든 적게 들었든, 직책이 높고 낮든, 남자든 여자든 가리지 않고, 태어나서 처음 들어보는 별 희한한 쌍욕짓거리를 마구 내뱉기로 아주 유명하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