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들은 파랗게 떨고 있다’라고 쓸까?
‘별들은 파랗게 떨고 있다’라고 쓸까?
  • 유시연 객원기자(문학 in 편집주간)
  • 승인 2013.04.10 16:0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971년 ‘노벨문학상’ 받은 네루다 시신 발굴… 40년 만에 암살 의혹 풀리려나

평생 산적(山積)된 빚에
나는 불평이 없다.

일생 쌓인 잡동산이들
늘 속을 뒤집던 허약한 귀신,
끊임없는 물질적 조작(操作).

나를 구기던 알지 못할 바람
상처 나는 입맞춤의 찌름, 내 형제들의 굳어 버린 현실.

내게 요구되는 준엄한 눈초리여,
스스로의 기쁨에 못이겨
나이기 위한, 나 자신 홀로이기 위한 충동.

바위 위에 물ㅡ 그 까닭으로 하여
내 인생은 우연과 필연 사이의 노래였다. -네루다 ‘종장’(終章)

1971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탁월한 시인 파블로 네루다(1904~1973). 아이였을 때나 어른이 됐을 때나, 공부나 도서관, 작가들보다 강과 새들에게 더 관심을 보였다는 칠레가 낳은 국민시인 파블로 네루다. 그 시신이 오는 8일(월) 이 세상으로 나온다. 칠레 사법부가 네루다가 이 세상을 떠난 지 40년 만에 암살 의혹을 제대로 조사하기 위해 나섰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장준하 선생처럼 암살 의혹을 받고 있는 칠레시인 네루다. 그는 지난 1973년, 살가운 벗이었던 아옌데 대통령이 피노체트가 이끈 군부 쿠데타로 밀려나 스스로 목숨을 끊자 12일 뒤 갑자기 숨을 거뒀다. 그때 69살이었던 네루다는 군부 쿠데타 때 받은 정신충격으로 이 세상을 떠난 것으로 알려졌지만 군부가 독살했다는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

“가끔 시에 대한 논문을 읽기 시작한 적이 있었지만, 끝까지 읽은 적이 없습니다. 지나치게 유식한 사람들은 스스로 빛을 흐리게 하거나, 빵을 석탄으로 바꾸거나, 말(言)을 나사로 변화시키기도 합니다. 가련한 시인을 형제들과 지상의 벗들로부터 고립시키기 위해서 그들은 온갖 그럴듯한 거짓을 말합니다.”

네루다가 1957년 시집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편의 절망의 노래>에 쓴 머리글 몇 토막이다. 네루다는 이 글에서 시를 신비화하고 신화로 만들어가는 이론에 맞서면서 “나는 이론을 씹기를 거부한다(I refuse to chew theories)”고 적고 있다. 그가 즐겨 다룬 문학 소재는 순수한 인간과 사랑, 자연이었다. 그는 그를 밑거름으로 삼아 “시인이 지닌 영원한 의무는 가난한 사람들, 착취당하는 이들을 보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제 난 그녀를 사랑하지 않아, 사실이야
예를 들면, ‘밤은 별이 많다. 별들은 파랗게
떨고 있다, 멀리서, 파랗게.’라고 쓸까?

밤하늘은 하늘에서 돌며 노래하는데,
나는 이 밤 가장 슬픈 시를 쓸 수 있으리.
난 그녀를 사랑했었지. 때로 그녀도 나를 사랑했었어.

오늘 같은 밤이면 그녀는 내 품에 있었지.
끝없는 하늘 아래서 난 몇 번이고 그녀에게 입맞추었지.

그녀는 나를 사랑했었지. 때로 나도 그녀를 사랑했었어.
그녀의 그 커다랗게 응시하는 눈망울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었으리!

이 밤 나는 가장 슬픈 시를 쓸 수 있으리.
문득 그녀가 없다는 생각. 문득 그녀를 잃었다는 느낌.

황량한 밤을 들으며, 그녀 없이 더욱 황량한 밤.
풀잎에 이슬이 지듯 시구 하나 영혼에 떨어진다.

무슨 상관이랴. 내 사랑이 그녀를 붙잡아 두지 못한 걸!
밤은 별이 많고 그리고 그녀는 내 곁에 없다.

그게 전부다. 멀리서 누군가 노래한다. 멀리서.
내 영혼은 그녀를 잃어버린 것만으로 가만 있지 못하는가.

그녀를 더위잡으려는 듯이 내 눈길이 그녀를 찾는다.
내 마음이 그녀를 찾는다. 그러나 그녀는 내 곁에 없다.

이 많은 나무들을 하얗게 깨어나게 하던 그 밤, 그 똑같은 밤.
우리는, 그 때의 우리는 이제 똑같은 우리가 아니다.

이제 난 그녀를 사랑하지 않아. 사실이지. 하지만, 참 사랑했었지.
내 목소리는 그녀의 귀에 이를 바람을 찾곤 했었지.

남의 사람이 되었겠지. 남의 여자, 내 입맞춤의 이전처럼.
그 목소리. 그 맑은 몸매. 그 끝없는 눈길.

이제 난 그녀를 사랑하지 않아. 사실이야. 하지만, 참 사랑했었지.
사랑은 그토록 짧은데 망각은 이토록 길담…….

오늘 같은 밤에는 그녀가 내 품에 있기 때문이야.
내 마음이 그녀를 잃어버린 것만으로 가만 있지 않기 때문이야.

비록 이것이 그녀가 주는 마지막 고통이라 할지라도,
이것이 그녀에게 바치는 마지막 시라고 할지라도.
-‘네루다-이 밤 나는 가장 슬픈 시를 쓸 수 있으리’-민용태 옮김

파블로 네루다는 칠레 공산당 대통령후보로 나섰다가 인민연합에서 출마한 아옌데와 후보단일화를 통해 ‘칠레의 봄’을 가져오는 데 앞장선다. 1973년 9월 피노체트가 일으킨 군사쿠데타는 시인을 절망케 한다. 이때가 노벨문학상을 받은 지 불과 2년 뒤. 군사쿠데타로 칠레 민주화는 물거품이 됐고, 네루다는 그해 이 세상을 떠난다.

칠레 군사정부가 공식적으로 발표한 사망원인은 암(전립선)으로 인한 심장마비였지만 의혹은 끊이지 않았다. 피노체트 군부에 의한 피살여부가 그 핵심 의혹이었다. 네루다 개인운전기사는 “네루다가 입원하고 있는 병원으로 정부요원이 찾아와 위에 독극물을 투입했다”고 밝히며, 정부가 나서서 진상조사를 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네루다 유해는 그가 살아있을 때 가장 아끼고 사랑했던 칠레 태평양 연안에 있는 해변마을인 이슬라 네그라에 묻혀 있다. “죽은 제갈공명이 산 사마의 중달을 쫓다”라는 삼국지에 나오는 이야기처럼 주검으로 이 세상이 다시 나타날 네루다가 ‘죽음의 진실’을 제대로 밝힐 수 있을지 지구촌에 사는 사람들 눈길이 한꺼번에 쏠리고 있다.

사랑이여, 우리는 이제 집으로 돌아간다
사랑이여, 우리는 이제 집으로 돌아간다.
격자 위로 포도넝쿨이 기어오르는 곳:
당신보다도 앞서 여름이 그
인동넝쿨을 타고 당신 침실에 도착할 것이다.

우리 방랑생활의 키스들은 온 세상을 떠돌았다:
아르메니아, 파낸 꿀 덩어리?:
실론, 초록 비둘기?: 그리고 오랜 참을성으로
낮과 밤을 분리해온 양자강.

그리고 이제 우리는 돌아간다, 내 사랑, 찰싹이는 바다를 건너
담벽을 향해 가는 두 마리 눈먼 새,
머나먼 봄의 둥지로 가는 그 새들처럼:

사랑은 쉼없이 항상 날 수 없으므로
우리의 삶은 담벽으로, 바다의 바위로 돌아간다:
우리의 키스들도 그들의 집으로 돌아간다.
-‘100편의 사랑 소네트’ -정현종 옮김

파블로 네루다는 1904년 칠레 국경에서 철도 노동자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열 살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으며, 열아홉 살 때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를 펴내 라틴아메리카에서 뜨거운 찬사를 받았다. 23살 때부터 미얀마, 스페인, 아르헨티나, 멕시코 등지에서 영사를 지냈으며, 마지막에는 프랑스 주재 칠레대사를 맡았다.

그는 파리에 있을 때 스페인에서 프랑코 파시스트 반란이 일어나자 스페인 사람들이 망명을 할 수 있도록 적극적 도왔다. 고국으로 돌아와서는 칠레 공산당 상원의원으로도 활동했지만 정권에서 탄압을 하자 망명길에 오르기도 했다. 네루다가 지닌 시와 정치사상은 그 시대 라틴아메리카 사람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 그는 1973년 세상을 떠난 지 4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칠레에서 국가 영웅으로 사랑받고 있다.

네루다는 주관이 깃든 서정시에서부터 라틴아메리카가 지닌 역사와 정치를 다룬 서사시, 일상 사물들에 바치는 송시에 이르기까지 이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현상을 제대로 살피며 그 뜻을 시에 담아냈다. 시집으로 <지상의 거처Ⅰ·Ⅱ·Ⅲ> <모두의 노래> <단순한 것들을 기리는 노래> <이슬라 네그라 비망록> <충만한 힘>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