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리뷰] 가깝지만 먼- 일본의 현대미술, 그 역사적인 ‘관계’
[전시리뷰] 가깝지만 먼- 일본의 현대미술, 그 역사적인 ‘관계’
  • 박희진 객원기자(과천시설관리공단)
  • 승인 2013.04.10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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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미술관 ‘리:퀘스트(Re:Quest)'展

하얀 점박이 빨간 풍선들이 서울대미술관 MOA를 밝게 비춘다. 도트예술의 상징, 일본의 설치미술가 구사마 야요이(84)의 작품이 서울대미술관 MOA의 전관을 환대하고 있다. 따뜻한 봄을 맞이해 관악산의 많은 등산객들이 구사마 야요이 작품 앞에서 삼삼오오 카메라 셔터를 연신 눌러댄다. 노란 점박이 호박으로 기억하고 있던 구사마 야오이의 도트작품이 유명세를 타고 우리에게도 친근한 예술로 다가온 것이다.

지난 3월 5일부터 서울 관악구 서울대미술관 MOA에서 일본의 현대미술가 53명의 전시가 열렸다. 일본미술 최근 30년사를 정리하는 전시로 ‘1970년대 이후 일본현대미술’이라는 타이틀과 ‘리:퀘스트(Re:Quest)'라는 제목을 달고 새로운 발상과 콘셉트의 일본미술 110여점이 소개됐다. 70년대 서구 근대주의를 넘어 동양철학을 접목한 이우환(75) 작가를 비롯해 모노하파와 개념미술을 거쳐 모더니즘을 계승한 80년대 성숙기를 거쳐 사회화된 미술, 90년대 서구적으로 대중화된 팝아트와 미디어아트 등 회화부터 설치, 조각, 영상, 사진 등 일본 미술역사를 고스란히 담은 다양한 볼거리가 이번 전시의 가장 큰 매력이다.
 
이번 전시는 무엇보다 서울대학교 MOA 미술관의 장점을 적절히 살린 ‘잘 된 전시 중 하나’가 아닌가 싶어 소개하려 한다. 서울대학교 미술관은 여느 대학 박물관이나 미술관처럼 네모난 박스형의 건축물이 아닌 공간 하나하나가 디자인 되어 미술관 속 작은 갤러리로 연출이 가능한 전시공간이다. 이러한 점은 전시를 기획하는 이에게는 가장 큰 고민이자 전시를 관람하는 이에게는 가장 기대를 갖게 하는 요소가 아닐까 싶다. 작은 공간 하나가 작품의 특징을 살리는 데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곳이기도 하다. 이러한 서울대미술관의 디자인 된 공간과 높은 천장의 공간미는 관람객들이 평소 체험하던 곳과는 다르기 때문에 첫인상부터 시각적으로 작품의 이미지와 연결 지을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전시를 찾은 관람객의 이목을 3초 안에 사로잡을 수 있는 기회의 공간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미로처럼 연결된 공간은 관람객 개개인이 몸소 체험하며 느낄 수 있는 신선함을 자극하기도 한다. 이러한 공간은 올림픽공원의 소마미술관과 서울대미술관 MOA가 대표적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전시공간은 기획자에게 많은 과제를 주지만 그만큼 활용도가 높아 작가와 관람객에게는 특별한 전시로 기억될 수 있다.

작품의 구성도 흥미롭다. 인지도 있는 일본의 현대미술 작가들을 모아서 나열한 것만은 아니다. 노란 검은 점박이 호박으로 유명세를 떨쳤던 구사마 야요이의 도트 설치작품으로 미술관 초입부터 시선을 끌었다면, 지하2층부터 3층까지 6개 주제로 파트를 나눴다. 삼각 거울 조각과 움직이는 디지털 숫자들을 구성한 미야지마 타츠오(54) 작가의 ‘네 안의 다이아몬드 No.17’이라는 작품은 어린아이가 있는 가족에게 유난히 인기가 좋은 작품이다. 이 작품을 보고 있자니 “어디서 많이 본 듯 하다”고 말하는 이가 종종 있다. 미야지마 타츠오의 또다른 작품은 서울 한남동 삼성미술관 리움 전시장 입구 바닥에 설치되어 있다. 또 다른 그의 작품 속 디지털 숫자를 기억한다면 충분히 익숙하게 다가올 수 있는 작품이다.

영상작품 중에  다나카 코키(41) 작가의 ‘Everything is Everything’ 작품은 남녀노소 재미있게 즐기다 가는 작품이다. 작가는 일상의 생활용품과 다양한 행위들을 우스꽝스럽고 아름다운 단편적인 영상으로 만들어냈다. 현대미술이라는 예술장르를 관람하며 마냥 웃고 즐기는 것이 영 어색하다고 평하는 이가 있다. 예술이 어렵지 않음을 몸소 체험하는 것이다. 엉뚱하고 기발해서 더욱 재미있는 작품들이 관람객을 유쾌하게 만든다.

최근 국제교류전시가 한 창인 만큼 시기적으로도 트렌드를 잘 반영한 기획이다. 사실 ‘독도’ 영토분쟁과 역사왜곡 등으로 일본과의 갈등이 지금도 진행형이기에 조심스러울 수 있다. 예민할 수 있는 국가 간 관계 속에서 미술사적 변천사를 전시를 통해 동선으로 그려내고 작품을 예술로 체험하며 두 국가의 작가들을 통해 서로의 관계를 예술로 승화시켜보려는 숨겨진 착한 기획의 의도도 엿볼 수 있다.

이번 전시의 미술사적 시점은 일본의 70년대 모노하를 기점으로 현대로 거슬러 올라온다는 점이다. 사물을 있는 그대로 놓아두는 것을 통해 사물과 공간, 위치, 상황, 관계 등에 접근하는 예술을 모노하라고 한다. 이번 전시에서 모노하의 이우환 작가 작품이 빠질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전시에서 ‘관계’를 설명하는 것이 숨겨진 핵심이라면, 이우환 작가의 전시 영향력은 예상보다 클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과연 일반 관람객들에게 ‘관계’라는 핵심이 얼마나 깊이있게 전달되었을까 싶다.
 
전시는 기획부터 연출, 디자인 전반이 훌륭하다. 단지 아쉬운 점은 전시를 정확히 전달하기 위한 연결고리가 약하다는 점이다. 흔한 작가와의 대화나 도슨트의 작품설명과 같은 추가적인 소통 시스템은 기본으로 갖추고 있으나 이를 통한 전달이 미흡한 것이 사실이다. 관람객이 전시실을 나올 때는 모르고 있었던 사실에 대해 느낌표로 전시를 이해하는 것이 미술관의 가장 큰 역할이자 책임이 아닐까 싶다. 언제나 트렌드에 앞서가는 서울대미술관 MOA의 디테일한 전시의 세심한 교육적 효과까지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