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수의 뒷방이야기] 미술가들이 사회 가치를 만들어야...
[박정수의 뒷방이야기] 미술가들이 사회 가치를 만들어야...
  • 박정수 미술평론가(정수화랑 대표)
  • 승인 2013.04.10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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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수 미술평론가(정수화랑 대표)
무척 많은 미술인들이 페이스북에 열광한다. 페이스북으로 그림도 판다. 이미지를 활용하는 미술가들에게는 스스로 마케팅의 최선이다. 몇 해 전에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시크릿 가든’에서 원빈이 말하는 ‘이게 최선입니까. 확실해요.’라는 질문이 무색하다. 전시를 하면 그곳을 통해 손님을 초대하고 모르는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나는 잘 못해’라는 말을 하는 순간 이미 뒤처지기 시작한다. 무조건 잘한다고 해야 한다. 페이스북 홍보하려는 것 아니다. 그곳에는 자신을 홍보하는 온갖 포즈의 얼굴과 몸매, 음식과 놀이터, 본인이 방문하는 곳이 게재된다. 모든 사람이 잘생겼고 모든 사람이 우아하고 품위 있다. 싸구려 음식을 먹어도 맛집 방문이며, 촌티 펄펄나는 패션도 그곳에서는 독특한 취미가 된다. 스스로 그러하기 때문에 아무도 믿지 않는다. 얼굴은 절대로 안 믿는다. 20여년전 쯤 전화선 모뎀을 통한 피씨 통신의 열광과 비슷하다. 전화선을 통하던 ‘삐~~갸르르륵’ 소리에 신문물의 이기를 맛보았다. 적당히 야한 사진 한 장 받으려면 족히 20분은 더 걸렸다. 현재 40대 후반의 미술가들은 그때도 그것을 애용했다.

 

세상이 변하면서 가치가 따라 변하고 있다. 가치 변화를 주도하여야 하는 미술가들이 오히려 따라가기 바쁘다. 힘겹다고 말한다. 나이든 미술가들은 여전히 품위와 체면을 지키고 있다. 배가 고파도 호당 30만원을 고수한다. 적당히 나이든 미술가들 또한 품위와 체면을 지키려고 한다. 그런데 품위도 체면도 없다. 그것이 무엇인지를 모른다. 경험이 없다.  

미술은 페이스북처럼 보통의 생활환경을 고급 환경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 예술작품 자체가 사회의 소통이며, 문화를 만드는 페이스북이다. 사물이 아니라 일상의 정신을 고급정신으로 보여주는 방식이다. 일상의 물건조차 정신적인 문제로 접근하여야 한다. 미술가들은 변화무쌍한 세상에 새로운 가치를 제공하여야 한다. 가치체계를 찾고자 한다면 자신을 확장시켜야 한다. 사회와 자신간의 끊임없는 질문과 갈등을 해소하고 싶은 욕망을 표현하는 일이다. 2005년에 개봉한 The Island란 영화가 있다. 사람들은 희망을 땅 아일랜드를 꿈꾼다. 그곳에 대한 환상을 심어둔다. 바깥세상은 살 곳이 못되므로 현재 고립된 이들의 삶이 희망이라 설득한다. 더 나은 미래는 소수의 인원만 갈 수 있는 젖과 꿀이 흐르는 그곳에 가는 일이다. 탈출하고자 하는 욕망조차 없다.

예술의 가치가 무너지고 있다. 말 그대로 가치붕괴다. 가치가 붕괴되는 것은 역사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는 것에 기인한다. 최근 ‘예술을 위한 예술’이 횡횡하고 있다. ‘돈 되면 무조건 좋음‘으로 인식한다. 땅덩이가 좁기 때문에 마케팅이나 비싼 미술품으로 달구기는 무척 쉽게 느껴지기도 했다. 사고방식 또한 어떠한 목적이나 가치관보다는 ‘쾌’ 혹은 ‘흥’에 목숨 걸고 있다. 미술가들은 적당히 충동적으로 슬그머니 비판하거나 적당한 한계선을 유지한다. 사회 치유자 임에도 환자인 척한다. 군중심리다. 이제는 깨어날 때다. 

미술은 시각예술이다. 시각예술은 어떻게 그릴 것인가 하는 것보다는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를 고민하여야 한다. 미술가가 살아가는 세상은 보통사람들이 사는 세상과 다르다. 남들이 자는 시간에 깨어있다. 남들과 노는 시간에도 정신은 일을 한다. 남들이 관상용으로 바라보는 장미꽃이나 화병은 미술가에 있어서 인생을 담는 그릇이 된다. 꽃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꽃에 비유되는 인생을 그린다. 꽃생이 인생이다. 세상은 시간과 상황의 변화에 따라 사물의 개념이 달라진다. 다만 미술가가 사용하는 물건은 애초부터 개념이 없을 뿐이다. 무엇으로도 만들 수 있고, 무엇의 개념이든 적용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이를 창의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