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칼럼] 표면에서 입체, 공간, 시간으로 - 리시츠키와 비합리적 공간
[건축칼럼] 표면에서 입체, 공간, 시간으로 - 리시츠키와 비합리적 공간
  • 최혜정 국민대 건축학과 교수/건축가
  • 승인 2013.04.10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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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초반, 특히 1920-30년대의 모더니즘이 유럽에서 좀 더 견고해지고 빠른 시간안에 꽃 피울 수 있었던 것은 유럽대륙의 특이한 근접성과 접근성 때문이었다. 어쩌면 이 시기를 전후로 벌어진 두 개의 세계전쟁도 바로 비슷한 이유에서일지도 모르겠다. 짧은 시기동안 서로 근접해 있고, 접근 가능하여, 나라, 문화, 민족, 사회 간의 활발한 교류를 통해 ‘이념’(idealogy)이 공유되고, 이념의 공유는 토론을 가능하게 하고 활발히 하여 그것을 실행할 수 있는 힘을 얻는다. 분명한 점은 우리의 사상과 사고는 바로 이러한 외부적 환경들과 끊임없이 공존공생하며 우리 스스로를 진보(being progressive)시킨다는 사실이고, 유럽의 20세기 모더니즘은 (그 평가자체를 떠나) 이러한 작용으로 인해 인류와 문명에 커다란 자국을 남겼다는 사실이다. 이 시기의 경향 중 러시안 아방가르드(Russian Avant-garde) 운동에 가장 커다란 흔적을 남긴 사람을 꼽으라면 주저않고 엘 리시츠키(El Lissitzky)를 꼽겠다. 리시츠키를 설명하라면 솔직히 잠깐 머뭇거리게 된다. 화가? 디자이너? 건축가? 그는 건축교육을 받았으나, 정작 우리에게 많이 알려진 작품들은 주로 포스터, 잡지, 타이포그래피 등의 그래픽 디자인, 그리고 ‘프라운(PROUN)’ 이라는 회화 시리즈이다.

1917년의 혁명 이후 레닌의 신경제정책(New Economic Policy)은 잠시나마 러시아가 혁명의 상처와 좌절감에서 일말의 희망을 꿈꿀수 있을까하는 분위기를 드러내었다. 레닌의 체제가 집중했던 분야 중 사회주의적 엘리트의 양성, 특히 교육의 개혁은 굉장히 중요한 과제였고, 이 당시에 활동을 하고 있었던 대부분의 예술가 들은 나라의 미래가 가고자 하는 청사진과 함께 동승하고자 하는 동업자적인 정신으로 당시의 불안한 경제와 사회적 상황을 견뎌내었다. 하지만, 이들의 실질적인 러시아안에서의 활동기간은, 레닌의 사망 이후 스탈린이 소비에트 연방을 가혹한 독재로 통치하기 시작하면서 예술집단의 탄압과 해체를 몰고 오기까지다. 재밌는 사실은, 이제 완전히 바뀌어 버린 소비에트 연방은 더 이상 아방가르드의 추구에는 관심이 없어졌지만, 러시아 예술가들의 활동은 그 어디에서인가 지속되었고, 앞서말한 유럽의 지리/문화적 특이한 상황으로 인해 그 여파는 더욱 확산되었고 무르익었다는 점이다.

리시츠키는 그의 멘토격인 러시아 화가 말레비치(K. Malevich)와 타틀린(V. Tatlin)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이 둘은 각각 러시안 아방가르드의 두 줄기인 절대주의(Suprematism)와 구성주의(Constructivism)을 대표하던 인물이었다. 말레비치는 절대적 추상, 순수한 예술정신의 ‘극의 상태’(supreme state)를 추구하였고, 타틀린은 물질, 재료, 구성, 부조, 구축 등에 집중하였던 상반된 경향을 추구하였는데, 리시츠키는 이 둘의 영향을 골고루 받았지만 동시에 그 자신만의 언어를 만들어내었던 점이 흥미롭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작업이 바로 앞서 말한 프라운이다. 프라운 시리즈는 그가 멘토로서 많은 영향을 받은 말레비치의 회화에서 사용되는 기하학적 언어들에서 출발하였지만, 궤적은 상당히 다름을 알아볼 수 있다. 물론 초반의 그림들은 말레비치의 기하학이 그대로 옮겨온 후, 그 형태와 모양이 배열과 구성을 달리하는 듯 한, 캔버스와 배경을 이용한 2차원적 공간의 연장선이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그가 절대주의 언어에 영향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가 탐구하고자 한 궁극적인 관점은 공간이었고, 2차원의 한계를 뛰어넘는 새로운 형태와 관계맺기에 대한 것이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프라운 시리즈는 절대주의가 추구하는 비대상적 관점과 이상향은 공유하되, 그 다음으로 진행되는 새로운 대상관계와 그 경험들의 구축방식에 대한 탐구였으며, 이는 오히려 타틀린의 구성주의가 추구하던 관심사와 가깝다는 것이다.

프라운 시리즈를 자세히 살펴보면 리시츠키의 도법은 주로 액소노메트리의 투사기법(axonometric projection)을 활용한다. 1925년 그가 쓴 글에 의하면, 그는 낡은 것들이 허물어진 혁명적인 시점에서 낡은 재현방식도 사라져야 한다고 믿었다. 그가 지목했던 낡은 것 중의 하나가 바로 투시도 기법이었다. 15세기부터 본격적으로 하나의 엄격한 기법으로 다듬어진 투시도법은 소실점을 기점으로 거리에 따라 작고 커지는 물체의 원근감을 정확히 계산하여 평면에 ‘연출’시키는, ‘엄격한’ 원칙이었다. 리시츠키는 이의 반대지점을 바라본다. 비합리적 공간, 즉, 소실점과 원근법에 의하여 콘트롤되는 합리적 공간이 아닌, 끊임없이 확장되고 연장되는 것이 상상가능한 공간이 비로소 혁명시대에 맞는 예술가들의 진취적 관점의 출발이라고 믿었다. 액소노메트리의 평행투사 - 소실점이 영원히 잡히지 않는 것, 혹은 소실점이 무한으로 연장되는 것은 그가 재현하고자 했던 세로운 세계관과 관점을 구축하는 중요한 도구였던 것이다. 무한으로 연장가능한 기하학적 운동, 형태가 가로지르는 공간에 연상되고 맵핑(mapping) 될 수 있는 궤적, 우리가 익숙한 원근감의 원칙과 논리를 벗어나거나, 서로 다른 시점이 동시에 겹쳐 일어나는 낯설음…등으로 구현된 그의 일련의 탐구작업들은 시공간의 동시적, 복합적 성격들과 그 모호성에 대해 질문들을 던져주었다.

리시츠키의 비합리적 공간에 대한 방대한 작업은 프라운 이외에도 상당하다. 프라운을 통한 그의 고민은 추후에 그의 건축설계 작업들에도 반영되었으며, 그가 디자인했던 수 많은 잡지와 포스터, 출간물들에는 이러한 공간적 감성이 반영된 배열방식, 관점제시, 크기조절 등의 다양한 기법들이 나타나있다. 어쩌면 러시안 아방가르드의 가장 중심을 꿰뚫는 인물로 리시츠키가 거론되는 이유도, 주어진 환경과 영향, 교류들 속에서 그가 스스로 솎아낸 질문들과, 자신이 던지고자 하는 질문에 대한 집요한 실험정신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 1922년에 발간된 ‘두개의 사각형 이야기’(About 2 Sqaures)에 실린 그림 – 검은 사각형과 붉은 사각형이 등장하고, 이들이 마치 캐릭터처럼 관계를 맺어 스토리를 이끌어나간다.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스토리북이다. 말레비치에게 영향을 받은 기하학적 언어가 그대로 간결하게 이야기와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 1923-4년에 제작된 프라운 시리즈 – 간결한 절대주의적 언어에서 기법이 좀 더 복잡다양해짐을 볼 수 있다. 투시도와 평행투사법을 동시에 적용하거나 운동성과 궤적을 연상시키는 곡선의 요소가 등장하여 좀 더 3차원적인 성격과 시간의 경과 등의 잔상들을 드러낸다.

▲ 1923년베를린의 전시장 한 켠의 공간에 설치된 프라운스페이스(Proun Space)– 1923년에 전시가 되었으나, 불행히도 작업은 남아있지 않고, 그 당시의 기록을 토대로 1965년에 재설치되었다. 리시츠키는 방의 벽면에 프라운 회화를 걸지 않고 대신에 조각,건축 모형작업으로 사용되는 부조(relief)모형의 방식으로 프라운을 전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