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김성녀 국립창극단 예술감독] 창극의 부활… ‘창극르네상스’ 멀지 않아
[인터뷰-김성녀 국립창극단 예술감독] 창극의 부활… ‘창극르네상스’ 멀지 않아
  • 윤다함 기자
  • 승인 2013.04.15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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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 연극 마당놀이 융합해 창극으로 승화시킬 것

     김성녀 국립창극단 예술감독은 부임한지 채 1년도 안 돼 티켓 전석 매진 등 국립창극단 50년 역사상 전무한 기록을 세우며, 바야흐로 창극의 부활을 알렸다.

     지금까지 없었던 ‘스릴러 창극’이란 부제로 올린 ‘장화홍련’은 전석 매진 팡파르와 함께 창극 르네상스의 기반을 다졌으며, 이어서 타령이 유실된 ‘배비장전’에서는 오늘날에 맞게 인물들을 재해석해 선보이며 매진 행렬은 계속 됐다.

     오는 5월, 그리스 비극을 창극화한 ‘메디아’가 다시 한 번 창극의 새 미래를 써나갈 것으로 기대된다. 판소리 다섯 바탕이란 고정적 레퍼토리에서 탈피해 관객에게 새로운 창극을 선보이고자 국립창극단이 야심차게 준비한 작품이다.

     국립창극단 예술감독 실에서 진행된 인터뷰는 얼마전 막을 내린 창극 서편제에 어린 소화로 출연한 권은경 단원도 함께 해 개인적으로 사제지간이기도한 두 사람은 인터뷰 내내 웃음을 자아내게 만들었다. 김 감독은  도중에도 그는 단원들의 연습을 챙기느라 분주했다. 다음은 그와 나눈 일문일답.

△1950년 서울 출생 △현재 국립창극단 예술감독 / 중앙대 국악교육대학원장 겸 국악대 학장 △1986 백상예술대상 연기상 / 1991 서울연극제 여자연기상 / 1996 한국뮤지컬대상 여자주연상 / 2010 제20회 이해랑연극상 외 다수 수상 △연극 ‘한네의 승천’ ‘맥베스’/ 마당놀이 ‘애랑전’, ‘춘향전’, ‘홍길동전’ / TV 드라마 ‘토지’ 등 출연

-국립창극단 예술감독으로서 1년을 보냈다. 소회 한 말씀 부탁한다.
“단원들과 깊은 얘기도 하고, 동시에 레퍼토리도 짜며 상반기를 보냈고 어느덧 지금까지 왔다. 솔직히 내 작업이 외로울 거라 생각했는데, 관객과 언론이 이렇게 관심 가져주시니 너무 감사하다. 처음 부임해서 왔을 때, 기자분들과 얘기를 나누는데 내게 그러시더라. ‘창극 기사는 써도 공연을 보진 않겠다’고. 그게 내겐 너무나도 충격이었다. 그동안 안주하고 정체돼 있던 국립창극단을 바꾸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고, 작품이 연이어 성공하고 있어서 참으로 행복하다. 계속 잘 되기만 해 다음 작품에 대한 부담이 좀 있기도 하다.”

-지난달 ‘서편제’가 성공적으로 막을 내렸다. ‘소리꾼이 만드는 소리꾼의 이야기’로 보다 더 감동적으로 가슴에 와 닿았다는 평이다.
“고생 많이 한 작품이었다. 완벽하게 올리지 못한 마음에 죄송스러웠는데 관객들의 반응이 기대 이상이라 세상에 참 고마웠다. 준비기간이 너무 촉박했던 터라 마치 방송 드라마 마냥 쪽대본으로 연습하고 그랬다. 원래는 레퍼토리 중 가장 먼저 선보일 계획이었으나, 작가 섭외 문제 등 자꾸 차질이 생겨 미뤄지고, 거기다가 윤호진 연출이 대통령 취임식 총감독으로 가는 바람에 취임식 끝나고서야 제대로 된 연습에 돌입할 수 있었다. 4주만에 준비하려니 얼마나 빠듯했겠나. 아슬아슬한 상황에서 계속 조바심이 났던 듯하다. 한편으로는 함께 연습에 임하면서 새삼스레 판소리의 대단함을 느끼기도 했다. 절창을 직접 눈앞에서 보고 들으니 소리에 취해 눈물이 흐르더라. ‘서편제’가 바로 우리 얘기 아닌가. 하나하나 절절하게 와 닿아서 그랬던 것 같다. 연습실에서 그렇게 좋았지만 막상 무대로 갔더니 무대가 그렇게 크게 느껴졌다. 소리의 감동 파장이 짧아서 관객에게 전달이 안 될까봐 걱정이 많았다. 그만큼 무대를 단순화했다. 오히려 현란하고 동작이 많고 복잡하면 관객이 소리에 집중하기 어려웠을 거다.”

창극 <서편제> 한 장면.

-‘서편제’는 신입단원 민은경의 첫 주연작이기도 했다. 관객들 모두 그녀의 소리에 몹시 감탄했다는 후문이다.
“체구가 쪼끄맣지만 소리가 좋고 성격도 당찬 아이다. 꼭 심청이 같은 느낌이다. 중앙대에 국악대가 만들어져서 갔는데, 그때 첫 제자로 들어온 아이다. 학교에서 애들 보면, 1학년 때 참 잘하다가도 해가 갈수록 소리가 확 줄기 마련이다. 하지만 은경이는 4년 내내 소리가 늘고 단단해지더라. 언제는 이런 일도 있었다. 내가 보직을 맡아 학교 교수회관에서 새벽에 잠들려고 하는데 뭔 소리가 들려 밖으로 나가보니 비오는 새벽에 처마 밑에서 연습하고 있더라. 나도 없는 성실함을 갖고 있는 은경이를 보고, 내 제자지만 존경심이 들었다. 단원들끼리 ‘작은 안숙선’이라고 부를 정도로 실력도 대단하고 기대도 크다. 신입단원이지만 극단 들어오기 전에 마당놀이 주연도 맡고, 연극 무대에서도 많이 활동했던지라 완전 신입이라고 할 수도 없고, 중고 신인이다.(웃음)”

-신입단원 뽑았다는 소식은 참으로 오랜만인 것 같은데.


“그렇다. 10년간 안 뽑았으니…. 이번에 신입 6명, 인턴 10명을 뽑았다. 젊은 아이들이 열여섯 명이나 수혈이 됐다. 극장장님도 차세대 명인들이 들어왔다며 좋아하시더라. 물은 고여 있으면 썩는 법 아닌가. 다음 세대에게 기회를 줘야 맥이 이어지고, 인재가 나온다. 로테이션이 되는 순환구조를 가져야 더 오래갈 수 있다는 거다. 진작 들어왔어야 했는데, 이제야 이뤄졌다. 신입단원들과 얘기 나눠보니 ‘장화홍련’ 보고 창극단으로 와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들 하더라. 신입이라고 해도 다들 밖에서 잘나가는 애들인데, 내가 예술감독으로 있을 때 새로운 것에 도전해보고 싶다며, 새로움에 대한 갈망으로 입단했다고 했다. 여건이 된다면 기량 짱짱한 애들 더 끌어들여서 신선한 바람을 몰고 오고 싶다.”

-지난해 공연한 ‘장화홍련’은 창극 요소를 거의 버리다시피 해 파격적인 무대를 선보이며, 창극단 사상 전무한 성과를 이루기도 했다.
“욕 좀 많이 먹었다. 이게 창극이냐 연극이냐 하면서…. 뮤지컬도 우리와 같은 음악극인데, 연극위주, 춤 위주, 음악위주 등으로 구별이 되면서 왜 우리 창극만 고정관념을 갖고 바라보냐고 반문했다. 좀 더 넓은 시야로 해석해달라고 부탁드렸다. 시대에 맞춰 변화하는 걸 두려워하지 말자고 설득에 설득을 거듭했다. 이렇듯 파격 무대를 감행했지만, 판소리의 전통만큼은 훼손하지 않았다. 실제로 전석 매진을 달성하는 등 관객들의 반응도 뜨거웠고, 여기서 힘차게 앞으로 나갈 힘을 얻기도 했다.”

-국립으로서 그런 변화를 단행하기 위해선 용기가 필요했을 것 같은데.
“내가 아니면 누가 이런 변신을 할까 싶었다. 난 여기 창극단원으로 있었고, 학교에서는 창극작업을 꾸준히 해왔고, 또 관객으로서 창극 무대를 계속 지켜봐왔다. 연출을 맡을 수 있을 정도로 달려왔지만, 연극배우로 서던 이가 국립에서 연출을 하는 게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게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안 하는 것뿐이다. 그만큼 난 우리 창극이 나아갈 미래와 방향에 대해서 그 누구보다도 공부를 많이 해놨다고 자신한다. 준비된 사람으로서 자부심이 있는 거다. 그래서 옆에서 누가 뭐라 해도 내 뜻을 밀고 나갈 신념이 있었다. 현재 창극이 이렇게 논란 속 중심인데, 이때 많은 걸 도전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5월, 그리스비극을 창극화한 ‘메디아’가 공개된다. 벌써부터 관객들의 기대가 높다.
“지금까지 작품이 연달아 잘 나가서 ‘메디아’에 대한 부담이 엄청나다. 실은 욕 많이 먹을 각오로 준비하고 있다.(웃음) 오페라처럼 구성될 것 같다. ‘서편제’와는 전혀 다른 느낌일 거다. 흥분도 되고, 우려도 되고 그렇다. 많이 기대해주시라.”

-국립극장레퍼토리시즌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레퍼토리에도 힘쓰겠다고 공언했는데….
“판소리 다섯 바탕 모두 레퍼토리화 돼있긴 한데, 이걸 50년간 했더니 이젠 식상하다고 관객이 오질 않는다. 그래서 기존 레퍼토리를 외국 거장을 통해 재탄생시키면 어떨까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외국 작품을 우리화하기도 하고 말이다. 세계에서 경극과 가부키는 알아도 창극은 모른다. 아힘 프라이어와 함께 ‘수궁가’를 작업한 것도 창극을 알리기 위함이었다. 이번에는 ‘흥부가’를 위해 세계 거장 한 분이 또 합류한다. 다섯 바탕을 세계 거장 손에서 재탄생 시켜 우리 소리를 알려야 한다. 저번에 유럽에서 ‘수궁가’ 공연했을 때 기립박수를 받았다. 경극이나 가부키보다도 훨씬 재밌다고 평가해주셨다. 외국 작품을 우리화 하는 건 오는 5월 공연될 ‘메디아’에서 도전한다 이외에도 ‘배비장전’, ‘장화홍련’ 그리고 ‘서편제’까지 모두 국립극장으로부터 레퍼토리로 인정받았다. 일단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은 연극계 최고 연출가들을 창극단으로 끌어들여 창극식구로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해 기존에 한 번씩은 다 거절당했던 한태숙, 윤호진 연출에게 다시 찾아가 내가 이번에 허락 맡아온 거다. 스텝진들 만큼은 최고로 모셔오겠다고 다짐했다. 작품 성공 여부를 떠나서 검증받은 연출자를 통해 창극르네상스를 일으켜보자는 게 목표다. 창극단을 떠난 후에라도 다음에 오실 분들이 내가 정착시켜놓은 레퍼토리를 계속 운영해주시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전통은 전통 그대로 지켜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요즘은 타 장르와의 접합 등 퓨전공연이 대세이기도 하다. 국립창극단은 국립으로서 비교적 파격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기존 창극 관객들은 더러 김성녀가 와서는 창극 망친다고도 하는데…. 지금껏 창극 지켜온 분들도 중요하지만, 그분들만 계셔서는 창극이 유지가 안 된다는 게 문제다. 젊은이들과 새로운 관객을 끌어들여야 할 때인 거다. 이번에 ‘서편제’에서 1막에 피아노 나왔다고 중간에 나가는 관객도 계셨다. 창극은 원형이 없다. 시대와 같이 가는 게 바로 창극이다. 오히려 지켜야할 게 있다면 그건 바로 판소리의 원형일 거다. 옛날식의 창극을 원한다면 차라리 판소리를 듣는 게 질적인 면에서 훨씬 나을 거다.”

-우리 창극이 브로드웨이에 진출해 서양 뮤지컬과 겨루기를 해보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나?
“갈 수만 있다면 가고 싶다. 준비 중인 ‘흥부가’가 잘되면 한번 노려볼만 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국내에 창극 상설극장이 생겨서 외국인 관광코스로 자리 잡으면 좋겠다. 그럼 안팎으로 참 좋은 시스템이 되지 않을까?”

사제지간이기도 한 김성녀 예술감독과 민은경 국립창극단원.

-예전에는 학생들 사이에서 ‘독사’라는 별명으로 불렸다고 하는데, 학생들에게 엄한 선생님인가 보다.
“아이들에게 항상 양심적으로 대한다는 것이 무섭게 느껴졌나 보다. 내 성격이 실수 하나 없이 딱 떨어지는 걸 추구하다보니, 아이들을 대할 때도 아마추어로 생각하지 않고 프로로 대했다. 중간에 도망가는 애들도 있었다. 오랜 시간이 흐르다 보니 학생들 사이에서는 내 진심이 통했는지...요사이는 ‘성녀 마리아’라 불린다 한다.(웃음),여전히 학생들 가르칠 때 내 수준에 맞춰서 가르치고 있어 재학생들은 어려워 안 찾아오는데 졸업생들은 많이들 찾아온다.”

-부군이 손진책 국립극단 예술감독이다. 서로 많은 도움을 주고받는다고 들었다.
“주변에서 ‘쌍감독’이라고 놀린다.(웃음) 그이는 창극단 부예술감독 같다, 창극단에 너무도 관심이 많아서…. 창극이 우리 공연예술의 중심이 돼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창극단에 좋은 일 있으면 나보다도 더 기뻐해주곤 한다. 그리고 덧붙이자면 극장장님도 창극을 국립극장 대표로 내세워야 한다고 말씀해주시는 분이다. 창극단에 비밀 예술감독들이 많다.(웃웃음) 남편은 예술적으로 많이 도와주고, 극장장님은 기획적으로 많은 뒷받침이 돼 주신다.”

-‘김성녀’라고 하면 혹자들은 연극배우인데 판소리를 하는 사람으로 인식하곤 한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난 두 가지를 동시에 시작했다. 판소리 시작하자마자 창극단에 들어와서 춘향이로 뽑혔다. 그렇게 활동하다가 나는 내가 더 잘할 수 있는 연극으로 간 것뿐이다. 국악은 다섯 바탕 모두 배우고, 지금껏 우리 소리를 계속 공부하고 있기 때문에 국악대 교수로 갈 수 있었던 거고…. 난 지금껏 내 자신이 국악운동가라고 생각하고 살아왔다. 우리 것을 가장 잘 아는 명배우로 남고 싶다.”

[미니인터뷰-국립창극단원 민은경(‘서편제’ 어린 송화 역)]

작은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깊은 소리가 놀라운 국립창극단 신입단원 민은경.

동아콩쿠르 학생부 및 일반부 금상 수상, 임방울국악제 판소리 부문 장원, KBS 국악대경연 판소리 부문 장원을 수상한 실력파로서. 국립창극단 정 단원이 되기 이전, 인턴 및 객원으로서도 국립극장 및 창극단의 공연에서 주역으로 활동해왔다.

‘서편제’에서 어린 송화 역을 맡아 무대를 장악하며 우리 소리의 밝은 미래를 보여준 그녀를 만났다.

-‘서편제’에서 첫 주연을 맡아 ‘어린 송화’를 연기했다. 당시 소감이 어땠나?
“신입단원으로 들어와 첫 주연을 맡아 부담이 엄청났다. 어린 송화라고 해서 분량이 얼마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1막을 다 이끌어가야 해서 깜짝 놀랐다. 연습하면서도 고생 많았지만 그만큼 관객들의 반응이 좋아 뿌듯했다.”

-성황리에 무대가 막을 내렸는데, 아쉬운 점은 없던가?
“아쉬운 점이야 너무 많다. 지금껏 무대에 오르면서 소리에만 치중한 게 많았는데, 예술감독님께서 창극은 종합예술임을 일깨워주셨다. 계속 배워오고 있지만 여전히 극적인 요소가 조금은 부족하지 않나 싶다. 앞으로 뛰어난 연기력도 보여드리고 싶다.”

-김성녀 예술감독과는 일찍이 학교에서부터 인연이 이어져 온 선생과 제자 사이기도 하다. 당시 어떤 분이셨나?
“아주 아름다우시면서도 눈빛이 너무 강렬해 근처에도 잘 가지 못하고 그랬다. 실은 별명이 ‘독사’이셨다.(웃음) 수업할 땐 카리스마가 더 강하셔서 학생들 모두 경직돼 있곤 했다. 부드러울 땐 또 참으로 부드러우시다. 지금은 별명이 ‘성녀마리아’로 바뀌셨다.(웃음) 나도 그랬지만 졸업생들 롤모델이 바로 예술감독님이다.”

-국립창극단 신입단원으로서 앞으로의 포부 한마디 부탁한다.
“지금껏 소리에만 매진했다면 이제는 그 외 요소에 힘을 쏟아 진정한 창극을 하고 싶다. ‘서편제’에서 운이 좋게 주연을 맡았지만, 실은 주연이 아닐 때 배우는 게 더 많은 것 같더라. 나에게 맞는 역할이 있을 거라 생각하고 쉼 없이 공부하고 노력할 거다. 나만의 색깔을 가진 배우가 되고 싶다. 지켜봐 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