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 books] 내 그림은 목마름이 찾아낸 그리움~
[Book & books] 내 그림은 목마름이 찾아낸 그리움~
  • 이현 객원기자
  • 승인 2013.04.30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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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김환기 자서전··· ‘대립과 상승의 변증법, 한 위대한 예술가의 초상’

한 인간의 삶을 온전히 복원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전기란 문학양식이 갖는 어려움에서도 비롯되거니와 그 인물이 처한 개인적 혹은 시대적으로 얽힌 여러 스펙트럼이 동시에 작용하기에 더 어렵다.

저자가 타인의 삶을 이야기할 때 어떠한 시각에서 그 인물을 그려내고 살려내느냐 하는 문제의 중요함은 그래서 생겨난다. 그런 면에서 이번에 새로 출간된 유리창 출판사의 『김환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이충렬 지음)는 그 취지나 가치적인 측면에서 시사하는 면이 적지 않다.

이 책은 두 개의 축이 맞물리며 새로운 차원의 삶이 생성되는 구도가 반복되어 나타난다. 작가는 안좌도와 일본, 그리고 서울, 파리와 뉴욕으로 연결되는 화가의 삶의 여정을 그 축으로 관통시킨다. 그것은 개인과 사회, 민족과 세계, 현실과 예술, 새로움과 지나간 것 등 표면적 대립가치의 중심을 차지하면서 한 인간이 자신의 정체성을 지켜가며 그것을 어떻게 극복하며 살아나가는가를 진솔하게 표현해 낸 것이다. 그것을 나는 변증적 드라마의 위대한 구성이라고 말하고 싶다.

화가가 된 섬소년··· 목마름과 그리움 시작

이 책의 실질적인 첫째 목차 ‘화가가 된 섬소년’은 ‘목마름과 그리움’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이 두 축은 화가 김환기의 평생 화두이며 그것이 확장되거나 변형되는 과정에 그의 예술적 기법과 정신이 놓인다.

그가 구상, 반추상, 추상의 세계를 넘나든 것도 이러한 선상에서 이해가 가능하거니와 이 전기의 구도에서 일관된 이 원칙은 뉴욕에서의 죽음까지 이어지는 토대이다. 안좌도와 일본 아방가르드라는 전위예술까지의 격차를 상상해보라.

안좌도에서의 유년과 성장의 세월이 그리움으로 남아 있는 원형이라면, 10년 동안의 일본 생활과 파리 뉴욕에서의 삶은 화가로서의 김환기가 끝없이 동경하며 갈망했던 새로운 세계이다. 그 양 축의 긴장 속에서 그의 예술은 상승하며 발전해나간 것이다.

이러한 개인적인 경험의 확대가 ‘민족과 세계’라는 양면이다. 두 딸의 창씨개명을 거부하기 위해 퇴학까지 시켰고, 친일단체의 미참여, 해방 후 이념의 편향마저도 거부했던 김환기. 작가가 그려놓은 이러한 민족적이고 예술적인 자존심은 ‘조선의 특색’ 혹은 ‘조선의 정신’을 끝까지 견지하며 반추상, 신사실주의로 확대시킨 예술 기법의 세계화였다.

조선의 백자, 항아리. 학, 섬 등 소재의 민족적 성격을 반추상과 추상의 세계 언어로 번역해 낸 예술적 성취가 곧 ‘민족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는 예술 정신의 결과물이었던 것이다. 작가는 이 책에서 반복적으로 그 사실을 환기시킨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 책에서 간과되어서는 안 될 것은 이러한 두 세계를 상승시키는 동인(動因)이다. 그것은 ‘순수한’한 예술가의 집념과 고뇌,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한 아내와 동반자로서의 ‘인간적인’ 김향안의 내조이다.

나와 다른 삶 살아낸 글쓰기 꽤 어렵다

김환기는 막대한 재산의 토대가 된 빚문서를 아무 조건 없이 작인들에게 돌려준다. 또한 대학교수라는 안정된 생활 조건마저 미련 없이 포기하기도 한다. 궁핍함을 이겨내 보려는 현실적 선택보다는 예술가로서의 삶이 그에게는 더욱 가치가 있었다.

뉴욕에서 그림 도구가 없어 신문지 위에라도 끝없이 그림을 그려야 했던 사실은 순수한, 그리고 집념어린 한 예술가로서의 삶의 증거이다. 하지만 이러한 삶이 가능하기 위해 아내 김향안은 심적, 물질적 고통을 기꺼이 감수한다.

저자는 종래 평가 절하되거나 감춰진 김향안의 삶이 갖는 가치를 다시 살려냈다. 문학가로서의 자신의 꿈도 삶도 버리고 평생 화가 김환기의 내조와 동행을 지켜낸 아내 김향안. 이 부분 중 일부 사실이 유족들과 마찰을 이루는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김환기에게 있어서 아내 김향안이 삭제된다면 아마도 그의 삶의 전반은 생명 없는 한 화가의 삶에 대한 왜곡된 보고서에 불과했을 것이다.

이 책은 화가 김환기의 생애를 온전히 복원시킨 최초의 책이다. 그 과정에서 출판사와 작가 측과 김환기 재단, 유족들과의 법정 시비도 발생했다. 하지만 전기라는 것이 한 인간의 삶의 진실을 그려내야 한다는 점에서 저자의 노력과 책의 가치를 폄하해서는 안 된다.

유족의 입장을 십분 이해하더라도 작가적 진실과 대상의 진실은 일치해야 작품의 진실성도 높아진다. 저자는 그 진실을 고수했고, 드러냄으로써 김환기라는 위대한 화가의 삶을 살아있는 한 인간으로서 그려낼 수 있었다. 전기란 것이 단순한 사실의 기록을 넘어서는 경계가 거기에 있다.

아울러 자신도 아닌 다른 삶을 살고, 살아내는 글쓰기는 어렵다. 아마도 전기 작가의 어려움은 거기서 비롯될 것이다. 그것은 대상에 대한 사랑과 관심이 없이는 지난(至難)한, 그리고 불가능한 작업이다. 이 책은 그것을 가능케 한 작가 의식의 소산(所産)이다.

작가 이충렬은 1954년 서울에서 태어나 1976년 미국으로 건너갔다. 1994년 <실천문학>을 통해 작품횔동을 시작했고, 여러 신문과 잡지에 소설, 르포, 칼럼 등을 발표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그림애호가로 가는 길>, <간송 전형필>, <그림으로 읽는 한국 근대의 풍경>, <혜곡 최순우 한국미의 순례자>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