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칼럼] 우리는 세상의 모든 소리를 다 들을 수가 없다.
[음악칼럼] 우리는 세상의 모든 소리를 다 들을 수가 없다.
  • 정현구 남양주심포니오케스트라 음악감독
  • 승인 2013.04.30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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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현구 남양주심포니오케스트라 음악감독 겸 상임지휘자 (노바아르테 음악감독)
우리는 세상의 모든 소리를 다 들을 수가 없다. 시냇물의 흐르는 소리는 들을 수 있지만 커다란 강물이 도도히 흐르는 소리는 들을 수가 없다. 반면 폭풍의 소리는 들을 수 있지만 실바람의 소리는 들을 수가 없다.

이렇듯 우리의 귀가 세상의 모든 소리를 들을 수 없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조건이며 축복인데, 현대인들은 모든 것을 다 들으려 한다. 타인의 영역에 속한 것, 나와는 상관이 없는 것들까지 듣고 일일이 간섭하고 참견하려 한다. 인터넷이라는 공간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과 상관이 없는 일들을 만들어 내며, 호도하는가? 모든 것을 다 듣고자 귀를 세우니 거기에 편승하여 없는 소리까지 들으라고 만들어내는 현실, 반성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조물주가 우리에게 준 최적의 인체조건을 무시하면 안 된다. 들을 수 있는 소리만 들어야 한다. 들을 수 없는 소리까지 들으려 하여 다른 사람들을 힘들게 하거나 고통에 빠지게 해서는 안 된다. 들을 수 없는 것까지 억지로 들으려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또한 우리의 귀는 모든 소리를 들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수학적 물리학적으로 설명된 소리의 원리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특성도 있다. 소리의 크기가 두 배로 되더라도 우리의 귀는 두 배로 듣지 않는다. 약 1.4배 정도로 우리의 귀는 소리의 크기를 듣게 된다. 예를 들면 두 사람의 연주자가 바이올린을 연주하면 한 사람이 연주하는 소리보다 1.4배 정도 밖에 커지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론상으로는 두 배의 크기를 원하면 4명이 연주를 해야 하고, 세 배의 크기를 원하면 9명의 연주자가 연주를 해야 한다. 그러나 음악을 연주함에 있어 연주자의 수가 많아질 때, 한 사람이라도 정확한 음정과 속도가 맞지 않으면 오히려 ‘소리간섭의 원리’에 의해 그 크기는 오히려 더 감소하게 된다. 그래서 오케스트라가 좋은 소리를 내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닌 것이다.

그러면 오케스트라가 좋은 소리를 내어 멋지고 아름다운 연주를 들려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답은 자명하다. 서로 정확하게 음정을 맞추어 연주하고, 소리를 발음할 때(음향학에서는 어택 타임이라 함) 순간적 속도를 동일하게 낼 수 있도록 훈련하고 연습해야 한다. 그러기위해서 지휘자는 정확하게 자신의 의도를 전달하는 지휘를 연주자들에게 해주어야 하며, 연주자는 지휘자의 사인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정신적으로 서로 교통하며 감응해야 한다.

이러한 원리는 이 사회와 국가가 조화롭게 발전하는데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원리라고 생각한다. 좋은 일 발전적인 일에 대해서는 함께 하나의 소리를 내어야 한다. 서로 반목하고 서로의 의견을 반대하는 말을 늘어놓는 것은 자연의 원리에 반하는 것이다. 이끄는 위치에 있는 사람은 자신의 의견을 바로 정립한 후에 정확하고 명료하게 그 의사를 전달해야 하며, 따르는 사람들은 이끄는 사람의 의견이 올바르다면 한 목소리를 내주어야 발전적이고 아름다운 사회가 건설되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과연 이 자연의 원리에 부합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인가? 필자가 보기에는 아닌 것 같다. 다들 너무 똑똑하여 자신의 소리만을 내기에 급급한 것만 같다. 이끄는 사람도 따르는 사람도 ‘소리간섭의 원리’를 모르는 것 같다. 위태로운데도 서로의 교통과 감음이 없이 그저 자기의 소리만을 내고 있다.

오케스트라를 통해 어떻게 내가 살아가야 하는지 배울 수 있으니 나는 오늘도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며 감사의 마음을 갖는다. 그리고 감히 자연이 우리에게 말하는 원리에 맞추어 살자고 말한다. 멋진 교향곡을 들으며 그 안에서 아름다움을 보고, 그 아름다움이 생성되는 원리를 삶에 적용해 보자고 권하고 싶다. 조금 더 아름다운 삶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