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정고암 화백/극동대 환경디자인과 교수] 새김아트, 하늘·땅·사람·자연을 아우른다
[인터뷰-정고암 화백/극동대 환경디자인과 교수] 새김아트, 하늘·땅·사람·자연을 아우른다
  • 윤다함 기자
  • 승인 2013.04.30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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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조형성 심화시켜 세계 속 한글 아름다움 알리겠다”

     “전각을 통해 진정한 예술인으로 거듭나고 싶었다”는 ‘새김아트’ 창시자 정고암 화백.
그는 서예에서의 낙관처럼 글씨보다 하위개념 취급을 받으며 객관적인 평가를 받지 못했던 기존의 전각을 ‘새김아트’라고 명명하고 새로운 미술 장르로 구축했다. 특히 세계 최초로 ‘전각애니메이션’을 만든 세계 유일의 예술가로 꼽히기도 한다.

     전각은 글씨와 그림, 조각이 합일된 동양의 순수 예술이다. 하지만 지금껏 고작해야 인장과 비교되며 예술적 경지에 대해 대중들의 평가를 제대로 받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정 화백은 이러한 상황에서 전각을 직접 ‘새김아트’로 부르기로 하고, 보다 진보된 예술작품으로 승화해 세계에서 주목받고 있다. 특히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 반기문 UN사무총장 등 세계 인사들이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더불어 2010년 MBC방송연예대상에서 그의 작품과 타이포그라피를 오프닝, 폰트 등에 사용하고, 같은 해 그는 서울드라마어워즈 예술감독으로 의뢰 받아 행사 무대 세트 전반에 새김아트가 설치되는 등 방송계의 러브콜도 많이 받고 있다.

     또한 최근 ‘한글시리즈’ 연작에서 직접메시지는 간접이미지로, 간접이미지는 직접메시지로 뒤바꾸는 반전연출을 통해 그만의 재미난 예술세계를 선보이고 있다. ‘직접메시지에 도달하기 위한 간접이미지일 뿐, 그 자체로 목적이 될 수 없다’는 결론을 감상자로 하여금 각자 스스로 깨닫게 하고 나름의 해답을 내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는 새로운 기법과 장르간의 융합, 즉 법고창신法鼓創新의 정신을 지향하는 정 화백의 예술정신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새김아트’는 그의 40여 년간의 고뇌와 실험의 산물로서 검증되어 오고 있으며 앞으로도 더욱 팽창될 것으로 기대된다.

△1948년 전남 나주 출생 △현재 극동대학교 환경디자인 교수 / 한국미술저작권협회 이사 △2006 새김아트 창시 △ 2008 베이징올림픽 타이틀 애니메이션(MBC) / 2010 MBC방송연예대상 예술원작·서울드라마어워즈 예술감독 / 2011 자라섬 국제재즈페스티벌 예술원작 △개인전 35회·단체전 110여 회

-전각은 사실 서예에서의 낙관처럼 글씨보다 하위 개념으로 사용돼 왔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객관적인 판단은 대중의 몫이지만, 서예가, 묵객 등 그들에 의해 쓰인 낙관이기에 객관적인 평가를 받진 못했다고 봐야한다. 편협적인 시각에서 서예 안에서 주종관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전각의 본질에 대한 평가는 서화의 시녀와 같은 정도로 저급하게 취급되는 등 국내에서 제대로 대접받지 못했다. 꼭 글씨를 쓰고 그림을 그리는 이들만이 전각을 한다고 통속적으로 생각돼 와서 그랬던 거다. 하지만 내가 막상 해보니 그런 게 전혀 아니었다. 막상 서예가들은 서예를 다 끝내고 하는 게 전각이라고 보곤 흰머리 돼서는 결국 못하더라. 내가 아무리 전각에 대해 주장해도 누구도 내 소리를 들어주지 않았다. ‘도장쟁이가 어디서 나서냐’는 식이었다. 전각은 서예를 하지 않아도, 그림을 하지 않아도, 조각을 하지 않았더라도 그저 기초만 공부하면 누구도 할 수 있는 거다. 전각뿐만 그런 게 아니라 예술이 그런 거더라. 전각을 확장하려고 노력했고, 그렇게 나아가니 저절로 이론이 정립되더라.”

-전각예술의 개척자로서 어려움이 많았을 것 같다.
“탄압도 많이 받고, 무시도 많이 당했다. 아까도 말했지만 도장쟁이가 나댄다고 손가락질 받곤 했다. 전각도 하나의 예술이라 기술도 있어야하지만 철저한 자기 사유도 필수적이었다. 문학적 소양, 철학적 내공, 경험이 없으면 아이디어도 나올 수 없는 법이다. 늘 양심 있는 작가로서 자리를 지키기 위해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전각에는 어떻게 관심을 갖게 됐는지 궁금하다.
“난 한 가지만 하기에는 성에 차지 않았다. 늘 종합적인 걸 갈구했다. 종합적인 예술을 하고 싶었는데, 그러기 위해선 소스 개발이 핵심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소스는 작으면 작을수록 좋겠다 싶더라. 그러던 중, 전각을 접했다. 크기는 작고 동시에 여러 가지로 다룰 수 있었다. 또한 아이디어 함축이 가능했으며, 정밀한 작업이 이뤄질 수도 있었다. 이러한 모든 점이 내겐 마치 운명과도 같았던 거다. 초기에 전각장인들을 찾아다니며 직접 인터뷰도 하고 조사를 많이 했다. 하지만 그들 대부분은 꿈이 없었다. 그저 도장 잘 새기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게 다였다. 진정한 전각가가 없었다고나 할까. 난 전각을 통해 진정한 예술인으로 거듭나고 싶었다. 결국 나 혼자 개척해나가는 수밖엔 없었다. 처음에는 전통 그대로의 전각을 배웠지만, 나중에는 그걸 뛰어넘기 위해 색깔을 입히기 시작했다. 한 가지 색깔에서 점차 두 가지, 세 가지 색깔로 확장시켰고, 오방색으로까지 나아갔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자칫 촌스러울 수도 있는 오방색을 안정시키기 위한 마지막 조합으로 금색, 은색, 검은색을 추가했다.”

정고암作 <까치호랑이>

-그렇다면 ‘새김아트’는 언제부터 시작된 건가?
“2006년에 ‘새김아트’라고 명명하고 그때부터 전시명을 그렇게 정했다. 이전에 전각이라고 불렀는데, 그건 중국을 따라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순수 우리말로 바꿔야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전각이 새기는 것 아닌가. 단지 물성에 새기는 것뿐만 아니라 사람과 사람이 소통할 때 마음에 새기다, 기억에 새기다 등 여러 의미를 담고 있다. 내가 하나 덧붙이자면 사람과 사귀다할 때 사귀다의 준말 같은 느낌. 사투리처럼.(웃음) 단순히 칼로 새겨서 새김아트가 아니라 보다 더 포괄적이고 넓은 의미를 담고 있는 거다.”

-생각보다 ‘새김아트’의 역사가 그리 오래되진 않았다. 이제껏 작가로서 확신이 든 ‘새김아트’ 전시가 있었나?
“아직은 없다. 명명은 했지만 막상 전시는 거기까지 못 따라왔다. 이렇다할만한 마음에 드는 전시가 없었고, 나 스스로도 아직 마음의 준비가 덜 된 상태 같다. 조만간 확신이 들지 않을까 싶다.”

-작업 과정과 그 안에서 어려움은 없는지 궁금하다.
“칼로 일일이 새길 뿐, 특별한 건 없다. 늘 재밌는 마음으로 임하기에 작업에서의 어려움은 없었지만, 한때 힘들었던 시절은 있었다. 90년대 중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경제적으로 가장 힘들었는데, 또 그때가 작품 개발을 가장 많이 했을 때이기도 하다. 힘들었지만 동시에 가장 치열하던 때다.”

-작품 영감은 어디서 받나?
“주로 산수를 소재로 많이 한다. 특히 어릴 때 보고 자란 월출산과 영산강을 좋아한다. 유년시절부터 좋아했던 풍광이다. 5월 단오제쯤 되면 물놀이를 하는데, 오색 깃발을 돛대에 달고 가는 그런 모습들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 작품에 자주 등장한다. 현재의 생각과 과거 유년시절의 기억이 어우러져 작품에 표출되는 거다.”

-한글을 퍼즐처럼 자음 모음을 분리·해체하고 다시 결합시키며 의미화하고 있다. 한글 작품에 대해 설명 부탁한다.
“현상세계와 가상세계를 한 캔버스에 넣기 위해 해체하고 다시 결합하는 과정을 거쳤다. 예를 들어 종이를 접으면 사람들은 종이의 앞면과 뒷면만을 언급한다. 하지만 그 접혀진 부분 또한 모서리로서 한 면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은 거다. 그렇다면 접힌 종이는 총 3면으로 구분되고, 다시 그 종이를 펼치면 1면으로 된다. 이 모든 걸 한 캔버스 안에서 설명하고 싶었다. 나는 이걸 각각 현실세계, 물질세계, 정신세계로 표현하곤 한다.”

-사실 한글은 조형적인 면에서 다른 문자에 비해 디자인적으로 멋있게 표현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그렇다. 나 역시도 그게 화두였다. 영어는 디지털적으로 디자인돼 세련된 반면, 한글은 기하학적이라 한자씩만 보면 괜찮을지 몰라도 모두 모아서 보면 서로 어울리지 않다. 그래서 난 생각을 뒤집었다. 예를 들어, 어떤 물체가 보일 때 그 물체가 보이는 이유는 실은 배경 때문인데, 배경 색에 따라 물체가 보이느냐 안 보이느냐가 결정된다. 즉, 배경 안에 사물이 들어와 있는 것이기에 배경이 더 큰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개념으로 배경보다는 물체에 집중하던 일반 관념을 뒤집어 그와 반대로 배경에 문양을 넣어 기존 표현 방식을 반전시킨 거다. 배경에 남아있는 공간을 비주얼로 만들어 글씨 자체는 오히려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럼으로써 한글을 작품에 자연스레 녹여낼 수 있었다. 조형성이 떨어지는 한글이었지만, 배경과 주체를 뒤바꿈으로써 그 점을 극복했다. 작위적으로 꾸미거나 억지로 지어낼 필요가 없었다. 그저 있던 걸 뒤집은 것뿐이다.”

-요즘 한글디자인 제품, 한글 작품 등 한글이 예술 소재로 각광받고 있다. 세계 시장에서 한글의 경쟁력을 어떻게 전망하나?
“어떤 학자가 그랬는데, 한글을 전혀 접한 적 없는 외국인이 한글을 읽게 되기까지는 1시간이면 충분하다더라. 그만큼 세계인들을 대상으로 한 디자인 시장에서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한글은 작가에 의해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 무궁함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정고암의 작품 중 <베이징 올림픽 타이틀(MBC)>, <연어는 바다를 꿈꾼다>, <삼족오의 땅 구미> 등

-세계 최초로 전각애니메이션을 만들기도 했다. 이에 대한 소개 부탁한다.
“그간 정적인 것에 집중해 와서 좀 동적인 걸 해 보고 싶은 마음에 2006년 시작했다. 제목은 ‘아날로지털’인데,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합성어이다. 아날로그 정신에 디지털 도구를 융합했단 뜻을 담고 있다. 실은 전각애니메이션을 계기로 ‘새김아트’로 명명하기에 이르게 된다. 애니메이션으로까지 확정되면서 더 이상 전각으로 제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 반기문 UN사무총장 등 세계 인사들이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해외에서 반응이 좋다. 특히 외국인들이 많이들 좋아해준다. 다들 개별적으로 주문이 들어와 제작했다. 국내 미술계나 학계보다는 세계에서 반응이 더 오는 편이다.”

-아들이 둘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새김아트’를 전승한다고 나서진 않는지 궁금하다.
“큰 아들이 현재 새김아트 CEO로서 행정을 담당하고 있다. 둘째가 디자인을 전공하긴 했지만, 음악에 뜻이 있어서 지금은 음악 공부 중이다. 작품 이어 받는다는 놈도 없지만 나 또한 그렇게 할 생각이 없다. 아들이 아무리해도 아버지를 뛰어넘을 순 없는 법이라 생각한다. 차라리 아예 다른 분야를 개척해 내 것과 융합하는 게 성공할 확률이 더 높다고 본다. 자식들이 예술가 부모 밑에서 같은 길 걸으려다가 괜히 흉내만 내고 이도저도 아니게 된 걸 많이 봤다. 부모 그늘에 가리는 거다. 하지만 아예 다른 걸 하면 그 과정에서 뭔가 새로운 게 나올 거라 확신한다.”

-앞으로의 작품이 기대되는데.
“한글을 갖고 계속 이어나갈 생각이다. 아이디어는 항상 넘쳐난다. 심화시켜서 나아가야 하는데, 그건 그때 가봐야 아는 거 아니겠나.(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