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 좌파 & 보수 우파
진보 좌파 & 보수 우파
  • 권대섭
  • 승인 2009.06.25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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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제일 희망은 평화이며 편안한 삶

 

사회의 개혁과 변화와 개방을 추구하는 세력을 좌파라 하고 현 상태의 유지와 전통을 지키기를 원하는 세력을 우파라 합니다. 정치적으로 보면 좌파들이 진보진영을 형성하며, 우파들은 보수진영을 형성합니다.

따라서 이를 묶어서 표현한 말로 ‘보수 우파’니 ‘진보 좌파’니 하는 말들이 생겨났습니다. 진보 좌파들은 경제 성장의 열매를 골고루 나눠야 한다는 분배에 초점을 맞춘 반면, 보수 우파들은 성장 중심의 경제정책을 추구합니다.

자연스레 진보좌파들은 가난한 자, 약한 자, 서민 등 사회의 비주류 편을 대변하게 도며, 보수우파들은 가진 자, 힘 있는 자, 중 ? 상류층 등 주류 편에 서게 됩니다.

기득권층과 비 기득권층도 이런 식으로 분류되어 진보좌파들이 대변하는 가난한 자, 약한 자, 서민들은 비 기득권층이 되는 것이며 보수우파들이 대변하는 가진 자, 힘 있는 자, 중 ?  상류층은 기득권층이 되는 것입니다.

이에 기득권층은 저절로 자신들이 강자이자 부자이며 주류를 형성한  현 상태를 유지하며 확장하려 드니 또한 보수우파가 되는 것이며, 비 기득권층은 자신들이 약자이자 빈자이며 비주류로 살아야 하는 현 상황을 타개하려 드니 또한 진보좌파 성향을 띠게 되는 것입니다.

잦은 외세의 침략을 받은 경험과 분단상황에 놓인 우리나라를 보면 외세가 들어 올 때 외세를 업거나 타협함으로써 자기들의 기득권과 지배권을 유지,  확장하려는 세력을 보수우파로 볼 수 있으며, 외세를 배격하고 극복해 나라의 자주성과 정체성을 지켜 나가자는 세력을 진보좌파라 할 수 있습니다.

또는 외세를 개방적으로 받아들여 응용함으로써 사회를 변화시키고 국리민복을 취하려는 성향을 진보좌파라 할 수도 있으며, 외세를 받아들여 사회변화와 국리민복을 추구함으로써 자기들의 기득권에 손상이 갈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이를 반대해 현상 유지를 원하는 주류 세력들이 보수우파가 될 수도 있습니다.

분단상황에선 분단의 원인이 되는 이념대결을 지양하며 통일을 추구하는 세력을 진보좌파라 할  수 있으며, 통일을 추구하되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  확장하는 방식의 흡수통일을 꿈꾸거나, 통일로 인해 일어나는 변화가 자신들의 기득권에 손상을 줄 것을 경계해 아예 反통일 정서를 가지게 된 이들을 극우 보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나라전체를 아예 공산주의식으로만 통일해 운영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이들은 극좌 진보로 변질될 수도 있습니다.

세계 패권국가인 미국과의 관계를 놓고 본다면 미국과의 협조 하에 누리는 자신들의 현재 기득권을 계속 유지  확장하고 싶은 이들은 친미 보수우파가 되는 것이며, 이를 지양해 미국과의 새로운 관계설정이란 변화를 통해 나라의 자주성(자존심)과 국익을 제대로 챙기며 위험부담이 없는 비흡수 연방제 통일까지 나아가자는 이들을 진보좌파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보면 우리 역사 속에서도 진보좌파와 보수우파의 구분이 가능해 집니다.  예컨대 고려 인종 13년(1135년)에 난을 일으켜 서경(평양)천도와 문벌 귀족세력의 척결을 요구하며 전통 유교사상 외에 도교와 풍수지리설을 받아들여 고려의 자주성을 지향했던 당시의 비주류 묘청세력은 그 시대의 진보좌파가 되는 것이며, 이를 진압해 중국 중심의 유교적 이념에 안주, 기득권을 지켜냈던 개경(개성) 중심의 주류 문벌세력은 그 시대의 보수우파가 되는 것입니다.

고려 말 원 ? 명 교체기 중국정세 속에 원나라가 약해진 틈을 타 만주 고토를 회복하고자 했던 최영 장군은 그 시대의 군사적 진보좌파가 되는 것이며,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칠 수 없다며 명나라 중심의 세계질서 속에 안주, 자기 왕권을 취했던 이성계는 보수우파가 되는 것입니다.

1636년 병자호란을 전후한 국면에서도 역사 속의 진보좌파와 보수우파의 구분은 가능합니다.

쇠약해진 명나라에 대한 의리와 강성해진 청나라 사이에 실용적 중립외교를 펼치며 전쟁을 막아냈던 광해군을 진보좌파라 할 수 있으며, 지나친 중국중심의 명나라 일변도 세계관에 빠져 병자호란을 자초, 백성의 고통과 인조임금의 ‘삼전도 치욕’을 겪게 한 주류세력들을 보수우파라 할 수 있을 겁니다.
 
 물론 우리 역사나 사회, 세계를 놓고 이처럼 진보좌파니 보수우파니 하며 딱히 이분법적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는 할 수 없겠습니다.

어디서든 어떤 경우든 이분법적 사고는 극단을 낳을 수 있으며, 극단은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편의상 이해 가능한 수준에서 나눠 본 것이며, 그 어느 쪽도 절대적으로 좋다 나쁘다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중요한 건 좌파이념이든 우파이념이든 권도(權道=상황, 중용)에 맞게 운용되느냐 마느냐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예컨대 등소평의 실용주의 개방노선은 사회주의 이념 속에서도 자본주의 시장경제라는 우파이념을 수용해 오늘날의 강성중국을 이루었듯, 이명박의 실용주의도 미국식 신자유주의 가운데 사회주의적 좌파이념을 수용함으로써 화합과 평화가 보장되는 한반도 전체의 경제발전을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이명박 정부는 말로는 실용주의니 녹색성장이니 외치면서 실제는 더욱 맹렬한 이념대립, 남북대결 정책을 드러내며 한반도 평화가 위협받는 지경까지 왔다는 것입니다.

좌파가 됐든 우파가 됐든 국민이 제일로 원하는 것은 평화이며 편안한 삶입니다. 경제도 녹색성장도 심지어 냉전적 남북대결마저도 평화 위에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최근 한미 정상회담 후에 이 대통령이 말한 “북한은 전쟁에 미련을 갖고 있으나 강력한 한미 공조체제가 그것을 억제할 것이다”라고 보도된 발언은 매우 자극적이며, 분단된 한반도의 지도자로서 입에 담을 말이 아니었다고 봅니다.

과거 우리나라가 지나치게 중국 중심 세계관과 이념에 빠져 역사를 그르쳤듯, 오늘날은 지나치게 미국 중심 세계관과 이념에 빠져 있지 않은 지를 돌아 봐야 할 것입니다.    

 

 서울문화투데이 권대섭 대기자 kds@sctoday.co.kr